[영남타워] 대구시와 시민단체의 공론화를 대하는 자세

  • 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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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3   |  발행일 2019-05-23 제31면   |  수정 2019-05-23
20190523
변종현 사회부장

어느 순간부터 대구사회는 ‘자치단체’와 ‘시민단체’ 두 바퀴로만 굴러가고 있는 듯하다. 권위주의시대 양심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교수들은 이젠 대학 밖으로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고 있고, 언론의 비판 칼날은 매체환경 변화와 경영난 등에 점차 무디어만 가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상징인 지방의회는 또 어떤가. 일당독점 구도에서 다소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존재의 이유에 비해 여전히 무력하다. 이 때문에 시정(市政)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오롯이 시민단체의 몫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를 통해 지방권력을 획득한 자치단체장이 자신의 시정철학을 바탕으로 각종 정책(공약)을 쏟아내면, 자생적 지역권력으로 급성장한 시민단체가 제동을 거는 모습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4월 말 현재 대구시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는 무려 422개에 이른다. 자치단체장 입장에선 죽을 맛이다. 각종 요구도 요구이지만 선거를 통해 주요 공약들이 정당성을 얻었다 생각했는데 전투력 강한 시민단체가 당최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의 긴장 관계는 긍정적으로 작동되기도 하지만 때론 합리적 결론 도출을 어렵게 만들어 평행선을 달린다. 그것은 아직 지역사회가 이견(異見)을 수렴하는 역량이 부족하고 메커니즘 또한 구축돼 있지 않은 탓이다. 탈권위주의시대 크고 작은 갈등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어떻게 조정하느냐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다른 점은 사회적 갈등을 억압하지 않는 것이며, 갈등을 정치의 틀 안으로 통합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 지적했다.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책에도 어찌 한목소리만 있겠는가. 이견과 갈등을 조정해 지역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숙의(熟議) 혹은 공론(公論)은 여럿이, 공정하게 의논하고 또 그렇게 해서 내린 합의된 의견이라는 점에서 가변적인 여론(輿論)과는 엄밀히 차이가 있다. 갈라진 여론을 공론을 통해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숙의민주주의(혹은 공론민주주의)가 갈등을 조정하는 ‘사회적 합의 메커니즘’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구 역시 시 신청사 건립(후보지)을 위한 공론화위원회가 발족됐고, 시민원탁회의에서는 찬반이 팽팽한 사안을 잇따라 의제로 삼아 숙의하고 있다. 일각에선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날을 세우지만 다양성의 시대, 갈등사회에서 공론화는 사회적 합의 절차로서 매력적인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얼마 전 ‘팔공산 구름다리 건설’(찬성 60%)이라는 결론을 낸 시민원탁회의는 큰 아쉬움을 남겼다. 시민단체가 불참하고 숙의 결과마저 부정하고 있어서다. 이로 인해 구름다리 반대 진영 측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둥, 대구시가 원하는 결론을 얻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였다는 둥 ‘뒷공론’이 많다. 하지만 일각에선 시민단체가 찬성 의견이 더 많이 나올 것을 우려해 불참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숙의와 공론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시민단체의 이런 태도는 결국 자가당착을 부른다. 공론의 의미를 부정하는 자세이고 자기만의 주장이 옳다는 또 다른 독재적 발상이다. 참석도 않고 공정성에 시비 거는 행위는 권위주의시대의 악습이다. 룰이 공정하지 않다면 바로잡은 후 링에 오르면 된다.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이유로 보이콧한 것은 시민사회 권력의 온당한 모습이 아니다.

권영진 시장과 대구시도 차제에 공론에 대한 입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어떤 정책은 공론화로 결정하고, 또 어떤 정책은 지방선거 결과로 이미 결정났다고 편의적으로 해석해선 곤란하다. 시 신청사와 팔공산 구름다리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였으면 대구공항 이전도 사회적 갈등이 존재하는 만큼 공론화 테이블에 올려야 마땅하다. 찬반 입장을 떠나 정작 공론화해야 할 정책은 공론화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시민단체의 원탁회의 불참 이유처럼 결과가 두려운가. 공항문제만큼은 시민의 숙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건가. 선별적 공론화가 또 다른 갈등을 부른다. 시민공론시대에 걸맞은 대구시와 시민단체의 전향적인 자세를 기대한다. 변종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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