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사료적 가치 국보급…충격적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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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형래기자
  • 20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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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성류굴에 ‘신라 진흥왕 행차’ 명문

560년 6월 행차뒤 남겨진 기록

‘태왕→왕’ 왕호변화도 확인돼

郡, 판독·보존대책 논의 회의

“신라史 연구 기폭제되길 기대”

23일 공개된 울진 근남면 성류굴 내 ‘신라 진흥왕 행차’ 관련 명문은 그 학술적·사료적 가치가 국보급에 이른다는 게 역사·문화재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울진군은 지난 22일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 장원섭 경민대 교수, 이영호 경북대 교수,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등 관련 학계 권위자가 참석한 가운데 성류굴 ‘신라 진흥왕 행차’ 명문에 대한 현장 판독 설명과 향후 보존 대책을 논의하는 자문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자문위원들은 성류굴 명문의 문화재 및 학술적 가치에 대해 일제히 ‘충격적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이 명문엔 신라시대 성류굴을 방문한 구체적 인물과 시기가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庚辰六月(경진 육월)’은 방문자가 진흥왕으로 나오므로 그의 재임기간(540~576년) 중 경진년은 진흥왕 21년 서기 560년인 셈이다. 따라서 560년 6월 진흥왕이 울진에 행차한 뒤 남긴 기록임을 알 수 있다.

또 자문위원들은 ‘진흥(眞興)’이라는 글자를 통해 다양한 역사적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진흥왕 호칭의 경우, 기존 확인된 북한산·마운령 진흥왕 순수비(568년)엔 ‘진흥태왕(眞興太王)’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경진년 명문’엔 ‘진흥왕(眞興王)’으로 기록돼 있다. 시기 또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왕호의 변화가 이뤄졌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는 대목이다. 중국 역사서인 북제서엔 ‘신라국왕 김진흥(金眞興)을 사지절 동이교위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삼았다’로 기록돼 있는데, 성류굴에서도 ‘진흥’이라는 이름이 확인된 것이다.

특히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진흥왕조엔 진흥왕 20~22년(559~561)의 기록이 비워져 있어 당시 역사적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이번 명문 판독으로 이를 메울 수 있게 된 것도 성과로 꼽힌다.

노중국·주보돈 교수 등 자문위원들은 “동굴 안에서 신라 명문들이 발견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로 당시 성류굴이 신라의 명승지로서 삼국시대부터 화랑의 수련장소였음이 처음으로 확인됐다”면서 “화랑들이 동굴에서 수련하고 남긴 명문들은 신라시대 정치사·불교사·인명사 등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활용될 수 있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명문만으로도 국보급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전찬걸 울진군수는 “1988년 울진 죽변면 봉평리 신라비(국보 제242호) 발견에 이은 이번 ‘진흥왕 행차’ 명문 발견이 신라사 연구의 큰 기폭제가 되길를 바란다”고 말했다.

울진=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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