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정환 시조시인

  • 김수영 이지용
  • |
  • 입력 2019-05-24   |  발행일 2019-05-24 제35면   |  수정 2019-05-24
“대구 정음시조문학상 제정, 15년 미만 역량 있는 시조시인 올해 첫 배출”
20190524
이정환 시조시인이 가창에 있는 정음시조연구소의 서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20190524
이정환 시조시인이 펴낸 다양한 시조집.

올해 대구지역에 눈길을 끄는 문학상 하나가 생겨났다. ‘정음시조문학상’이다. 이 문학상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우선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글인 ‘훈민정음’에서 문학상의 이름을 따왔다. 보통 시문학상이 등단 15년 이상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주어지는데 정음시조문학상은 15년 미만의 시인을 대상으로 한다. 일반 시에 비해 약세를 보이는 시조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이 문학상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첫 수상자를 낸 정음시조문학상의 제정에는 정음시조문학상 운영위원장을 맡은 이정환 시인(65)이 큰 역할을 했다. 시조시인으로, 교육자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이 시인을 만나봤다.

42년 교직생활 마무리 북 콘서트 마련
지역문학계 의미있는 일 하고싶은 바람
훈민정음 창제 덕 우리글로 지은 時調
신진 시인 발굴, 주변 십시일반 후원금
창작의지 북돋우고 현대 시조 질적 향상

시 수천편 엄격 심사, 올 첫 수상자 배출
삶 연륜 묻은 만학도…文壇 미래 밝아

韓 3대 시조문학상 등 다양한 수상 경력
초등학교 퇴직 무렵 시조창작지도 행복
국어교과서에 동시조 4편 수록돼 영광
e메일로 소개하는‘이정환의 아침시조’
1978년 등단 후 100편 ‘시조선집’발간


▶지역문학계에 정음시조문학상 제정은 아주 반가운 소식일 듯합니다. 지역문학인은 물론 전국 시조시인들에게 힘을 주는 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8월 42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직을 했습니다. 이를 기념해 북 콘서트를 열었는데 앞으로 지역문학계에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저의 말에 문학평론가인 유성호 교수(한양대 국문과)가 시조문학상을 만들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문학상은 상금 등의 재원마련이 가장 큰 고민거리인데 사업을 하는 지인이 좀 도와주겠다고 해서 덜컥 문학상을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상금 1천만원입니다. 적지 않은 돈입니다. 기타 부대비용까지 합치면 2천만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갈 것이라 했는데 재원 마련에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 시인의 사비도 많이 들어간 것으로 압니다.

“정음문학상 제정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나와 이를 추진했습니다. 기금 마련을 위한 통장을 개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려 2천만 원이 넘는 액수가 조성되었지요. 힘이 나더군요. 특히 사업을 하는 몇몇 시인이 매년 일정액의 기금을 후원해주겠다고 자원해서 용기가 생겼습니다. 십시일반으로 뜻을 모은 여러 후원자 덕분에 정음시조문학상이 제정되었지요. 앞으로 좋은 시인들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문학상의 이름과 수상 대상 시인의 연령 제한도 특성이 있습니다.

“우선 시조가 어떤 것인지부터 알아야 할 듯합니다. 시조는 고려 말기부터 발달해온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입니다. 선조의 호흡과 정서, 사상과 감정 등이 잘 녹아 있지요. 시조는 훈민정음 창제로 비로소 우리글을 통해 표기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그 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시조는 훈민정음 창제의 가장 큰 덕을 본 예술장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정음’의 정신을 받들어 정음시조문학상을 제정했습니다. 대상 시인을 등단 15년 미만의 시인으로 제한해 신진시인들의 창작의지를 북돋우려 했습니다. 이를 통해 현대시조의 질적 향상과 저변확대에 기여하려 합니다.”

▶올해 첫 수상자를 냈습니다.

“제1회 수상자로 김양희 시인이 선정되었습니다. 박기섭, 홍성란, 유성호 등 한국문단의 쟁쟁한 문인들이 심사에 참여해 엄정한 심사과정을 통해 수준 높은 작품을 보여준 김양희 시인의 시조 ‘절망을 뜯어내다’ 외 4편을 수상작으로 뽑았습니다. 지난 1년 동안 편집위원들이 전국을 대상으로 신작들을 샅샅이 훑어 후보작품을 찾았습니다. 실로 방대한 작업이었습니다. 해당 시인이 300명 넘었고 수천 편의 시를 탐독했습니다. 여러 날 동안 면밀한 내부 심의를 거쳐 1차로 36명 180편을 선정했고, 블라인드 상태에서 편집위원들의 개별 독해 후 최종 본심에 9명 45편을 올렸습니다. 이를 본심 심사위원이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했습니다. 아주 까다로운 심사절차였던 만큼 역량 있는 신진 시인이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지요.”

▶시조시인 이정환으로도 지역에서 입지를 탄탄히 굳히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조를 쓰게 되었는지요.

“아마 시인 중에 시조시인은 10분의 1도 안될 것입니다. 자유로운 시에 비해 시조는 엄격한 율격을 갖추고 있어 답답해하고 어려워하는 시인이 많습니다. 저도 어릴 적에는 시를 썼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교과서에 나온 시가 너무 좋아 시를 긁적이다가 고등학교 때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구교육대학 시절 시를 쓰는 데 정신이 팔려 공부는 멀리했지요. 대학 들어와서부터 시와 시조를 병행해서 썼습니다. 1975년 ‘샘터’ 잡지에서 ‘샘터시조’코너를 마련, 시조를 모집했습니다. 여기에 응모해 가작에 당선되면서 시조와 인연이 깊어졌습니다. 이어 고(故) 류제하 시조시인이 계간 ‘시조문학’에 응모해 보라고 권유해 작품을 보냈고, 1978년 추천완료 되어 등단했습니다. 1981년에는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로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인은 그동안 시조집 ‘아침 반감’ ‘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 ‘물소리를 꺾어 그대에게 바치다’ ‘금빛 잉어’ ‘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 ‘원에 관하여’ ‘분홍 물갈퀴’ ‘비가, 디르사에게’ ‘별안간’ ‘휘영청’ ‘에워쌌으니’ ‘오백년 입맞춤’ 등과 시조비평집 ‘현대시조교육론’ ‘중정의 생명시학’ 등을 펴냈다. 이 같은 활동에 힘입어 한국의 3대 시조문학상이라 불리는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을 비롯해 한국시조작품상, 대구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금복문화상과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그는 시조 단체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다. 대구시조시인협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의장 등을 지냈다.

▶초등교사로 오랫동안 근무해서인지 동시조도 많이 선보였습니다.

“1977년 김천 지례초등에 첫 부임해 교사생활을 시작한 뒤 지난해 대구 두산초등에서 퇴직할 때까지 40여년을 어린 학생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초창기에는 시와 산문지도를 병행하다가 퇴직할 무렵에는 시조창작지도를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작문 지도를 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행복하고 보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등단 이후 가끔 동시를 쓰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창작하게 된 것은 1999년입니다. 제자들의 강력한 권유 때문이었지요. 어려운 시조 말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옮겨 보라는 기특한 말에 힘을 얻어서 자연스럽게 시조 형식을 좇아서 쓰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동시조집 ‘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를 시작으로 ‘길도 잠잔단다’ ‘일락일락 라일락’ 등 3권의 동시조집을 펴냈습니다. 특히 첫 동시조집은 1만1천부나 판매되었습니다. 2002년부터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동시조 ‘친구야, 눈빛만 봐도’ ‘혀 밑에 도끼’ ‘공을 차다가’ 등 4편이 수록되었습니다. 시조시인으로 큰 영광입니다. 요즘 동시조 창작 붐이 전국적으로 크게 일어나고 있는데, 아주 고무적인 일입니다.”

▶e메일로 ‘이정환의 아침시조’도 지인들에게 보내는 것으로 압니다. 반응이 상당히 좋다고 들었습니다.

“2004년에 어떤 계기가 있어 e메일로 지인들에게 좋은 시조 소개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정환의 아침시조’라는 이름으로 150회 전송하고, 그 중 100편을 가려서 ‘@로 여는 이정환의 아침시조 100선’이라는 시조해설집을 펴냈습니다. 처음에는 수신자가 100여명이었는데 끝날 무렵 1천명이 넘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여러 해 전부터 40여년 지음인 오승철 시조시인(오늘의시조시인회의 의장)이 시조보내기 운동을 강력하게 권해 왔습니다. 애정 어린 권유도 있었지만 이 일을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내적 요청이 커서 ‘세상의 모든 시조’, 즉 ‘세모시’를 지난해 4월에 출범했는데 반응이 매우 뜨거웠습니다. 인터넷 사이트 여러 곳에 탑재되고, 일간지에 연재 중이어서 더 많은 독자가 즐기게 된 점이 큰 보람입니다. 현재 수요일마다 한 시인의 작품 세 편 정도를 소개하고 있고, 수신자는 1천500명을 상회합니다. 좋은 시조를 널리 알리는 데 ‘세모시’가 조금이라도 이바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퇴직 후 더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듯합니다.

“현재 경주문예대학 연구반, 대구교육대 국어과 강사 및 평생교육원 ‘정음시조창작교실’을 운영 중이고, 정음시조문학상 운영위원장으로 있습니다. 교직에 있다가 나온 이후 여기저기서 부르는 데가 많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입니다. 특히 지난해 9월부터 모교인 대구교육대 평생교육원에 ‘정음시조창작교실’을 개설,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데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미 등단한 분들도 다수 재충전의 기회로 삼고 있고, 멀리 경남에서도 오는 분이 있어서 힘이 납니다. 자처해서 ‘시조 전도사, 시조 선생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하곤 하는데, 마냥 좋습니다. 시조에 늘 미쳐 살기 때문이지요.”

▶얼마 전 40여년의 시인생활을 정리하는 시조선집도 나온 것으로 압니다.

“1978년 등단 이후부터 지난해까지의 시작 활동을 대표하는 100편의 시조를 엮은 ‘말로 다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를 펴냈습니다. 시작 활동의 변환점마다 얻은 대표작과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로 엮었지요. 저의 시조 중 가장 잘 알려지고 2007년 이호우시조문학상의 영광도 안겨준 ‘애월 바다’를 비롯해 ‘에워쌌으니’ ‘자목련산비탈’ ‘새와 수면’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최근 순수예술이 많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시조도 마찬가지인 듯한데 시조시인으로서 여러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시조만이 아니라 시단 전체에 젊은 시인이 드뭅니다. 젊은 층이라 해도 40~50대이지요. 그래서 문학의 노령화에 대한 걱정이 쏟아지는데 젊은 시인의 발굴과 육성에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시조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0~50대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 시나 시조를 쓰는 분이 많은데 이분들은 삶의 연륜이 있어 축적된 내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좋은 글에는 풍부한 경험도 필요하지요. 제주 한림 출신인 올해 정음시조문학상 수상자 김양희 시인도 50대 중반으로 서울 광장시장에서 오랫동안 한복가게를 운영하신 분인데 삶의 내공이 글에서 여실히 묻어나옵니다. 젊은 시인의 발굴과 함께 만학도 시인들의 역량을 서서히 키워나간다면 한국시조문단의 미래는 밝고 창창할 것입니다.”

글 =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