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영양 수비면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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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4   |  발행일 2019-05-24 제36면   |  수정 2019-05-24
“나를 안아 주세요∼” 가슴에 쪽지 달고 기다리고 있는 소나무
● 금강소나무 군락. 어린 소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아래 마른 솔잎을 걷어내고, 잡목들을 솎아내어 햇빛이 땅 바닥까지 닿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 숲으로 한 발짝 들어서면 가슴에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이라 새긴 장승들이 맞아준다. ● 금강소나무와 주변의 자생식물들이 함께 온화한 숲을 이루고 있다. ● 발리리의 느티나무 성황당. 이곳을 지나면 수비면 소재지의 번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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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소나무 군락. 어린 소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아래 마른 솔잎을 걷어내고, 잡목들을 솎아내어 햇빛이 땅 바닥까지 닿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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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한 발짝 들어서면 가슴에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이라 새긴 장승들이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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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소나무와 주변의 자생식물들이 함께 온화한 숲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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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리의 느티나무 성황당. 이곳을 지나면 수비면 소재지의 번화가다.

영양읍을 지나며 ‘일월, 현동’ 지명을 본다. 일월은 영양의 북쪽 끝이다. 현동은 봉화 땅이지만 늘 태백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적이 멀리도 떠났다’라며 홀연히 쓸쓸해지는 지명들이다. 일월산을 앞에 두고 휙 핸들을 꺾어 명랑함을 회복한다. “나를 안아 주세요.” 그렇게 용감하고 천진하게 기다리고 있는 나무에게로 가는 길이니까.

봉화금씨 마을 동산 솔숲 ‘금경연화백추모비’
숲으로 한 발짝 들면 맞아주는 장승·출렁 다리
금강소나무·자생식물 함께 숲 이룬 온화한 곳
유아 숲체험·100년 후 이을 후계림 조성 사업
어린 소나무 잘 자라게 바닥 마른 솔잎 걷어내
서어나무·쪽동백나무·산벚나무·참나무 이파리
버들치·새·토끼 생명 고동치는 먹이사슬 복원

◆수비면 발리리를 지나며

지나는 버스정류장마다 지붕에 반딧불이가 올라 앉아있다. 영양읍 남쪽의 것들과는 다르게 반딧불이 얼굴들이 모두 환히 깨끗하다. 첩첩산중의 공기와 바람은 아침마다 세수를 하는 게 틀림없다. 도드라진 동산 위에 소나무들이 우아하게 솟구쳐 있다. 영양의 동북 끝인 수비면에 들어선 것이다. 첫 마을은 발리리 금촌. 봉화금씨(琴氏)들의 마을이다.

동산의 솔숲에 커다란 기념비가 우뚝하다. ‘금경연화백추모비’다. 금촌마을 출신인 금경연은 우리나라 서양화 도입 초기의 화가로 1930년대에 수차례 입상하며 주목받은 인물이다. 고향 수비면의 공립보통학교 교장 재임 중 광복을 맞았지만 폐결핵으로 33세에 요절했다. 마을 안에 기념관이 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추모비 뒤쪽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조선 순조 때의 학자 약천(藥泉) 금희성(琴熙星)의 약천정(藥泉亭)이다. 현판이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李始榮)이 21세 때 쓴 친필이라 한다. 역시 문이 잠겨 있지만 열심히 발돋움하면 현판을 얼핏 볼 수 있다.

동산 아래 냇물을 건너고 느티나무 성황당을 지나면 수비면 소재지의 본격적인 번화가를 관통한다. 파출소, 우체

국, 보건소, 체육공원이 있고 초·중·고등학교까지 있다. 게다가 모던한 외양의 게스트하우스와 응급 환자를 위한 헬기장도 갖추었다. 지나는 차들도 드물지 않아 상당히 활발한 느낌이 든다. 들썩이는 분위기는 번화가를 지나 텅 빈 산길에 들 때까지 내내 지속된다. 수다한 소나무들의 산. 곧게 뻗은 붉은 몸의 소나무들이 점점 무리지어 다가온다.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길가 주차장에는 확성기를 단 트럭 한 대뿐이다. 입구는 막혀 있고, 한 사람이 서있다. “여기는 검마산. 입산금지예요. 검마산 자연휴양림 쪽으로 가는 게 좋아요. 길 건너는 울련산. 저기는 갈 수 있어요.”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

길 가에 아무런 안내가 없지만, 숲으로 한 발짝 들어서면 가슴에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이라 새긴 장승들이 맞아준다. 그 뒤로 너른 평상과 출렁다리가 보이고, 계곡물소리가 홀로 벅적하다. 장승 아래에 숲을 경영한 연유가 새겨져 있다. ‘봄이면 떡갈나무 잎 베어 모내기 논에 묻어넣고, 한 움큼 흙과 섞어 퇴비를 만들던 농부는 어디로 가고, 가을이면 땅위에 내려앉은 마른솔잎(옛말로 갈비) 갈퀴로 긁어 칡 잘라 단 묶어 짊어지고 가던 지게꾼도 언제부턴가 떠나고 없다. 이제 솔밭 밑에는 마른솔잎이 겹겹이 쌓여 땅을 덮고 떡갈나무가 자라 키 자랑을 하니 하늘이 막혔다. 가을 되면 영글어 익어 떨어지는 솔방울에서 튀어나온 솔씨들이 지천이건만 흙과 햇빛을 만날 수 없어 제 힘으로는 씨앗도 못 틔운다. 이를 안타까워하여, 우리 산림인은 100년 후를 이을 다음 세대 금강소나무 숲을 만들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거듭거듭 읽는다. 참으로 순정한 글이다.

약하게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면 울련산 등산로 계단이 가파르다. 검마산과 마찬가지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왼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낮은 가지들을 헤치며 들어가다 다시 나온다. 어린 시절 산을 헤맨 기억이 있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선명하고 환한 숲길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출렁다리에서 상류 쪽에 징검다리가 있고 자그맣게 탐방로 표식이 되어 있다.

징검다리를 건넌다. 오른쪽으로 산책로가 이어진다. 금강소나무와 주변의 자생식물들이 함께 숲을 이룬 온화한 곳이다. 군데군데 유아들을 위한 숲 체험 시설물들이 마련되어 있다. 예전에는 어린 나무가 거의 없고 대부분 40년 이상 된 나무들만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그 나무들이 오래되어 죽으면 금강소나무는 사라질 터였다. ‘100년 후를 이을 다음 세대 금강소나무 숲’을 만드는 일은 1995년경부터 시작했다. 후계림 시험 사업을 실행하고 조성 기법을 개발하여 매뉴얼을 만든 것이 2006년. 이듬해 기본 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어린 소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소나무 아래 마른 솔잎을 거둬내고, 가지를 치고, 잡목들을 솎아내어 햇빛이 땅 바닥까지 닿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후계림 조성과 함께 시행한 것이 계곡을 중심으로 한 먹이사슬 복원이다. ‘피라미, 누치, 버들치 같은 물고기들이 살게 하고, 물을 마시러 계곡을 기웃거리는 새, 토끼, 노루와 같은 작은 생명의 숨소리가 다시 고동치게 만들고 싶었다.’ 계곡에는 물고기 댐과 옛날 농부가 사용하였던 물막이 보가 설치되어 있다. 물고기들을 위해 심은 갯버들도 살랑거린다. 산딸나무, 마가목, 찔레 등 새들의 먹이가 되는 열매나무가 함께 자라고, 토끼풀, 벌개미취 등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는 식물도 잊지 않았다.

무성하고 환한 숲. 서어나무, 쪽동백나무, 산벚나무, 층층나무, 그리고 참나무들의 헤살거리는 이파리들과 노닥거리다 당신을 만난다. ‘나를 안아 주세요’라는 쪽지를 가슴에 달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소나무. 여기저기 기웃대다 이제야 도착했지만 화내지 않는 단단한 나무. 당신을 덥석 안고 용감하고 천진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이 숲을 경영한 이들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땀 흘려 가꾼 이 숲이 머잖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몸과 정신을 추스르는 곳이 되기를 꿈꾸어본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55번 중앙고속도로 안동방향으로 가다 안동분기점에서 30번 당진영덕고속도로 영덕방향으로 간다. 동청송, 영양IC로 나가 좌회전, 월전삼거리에서 우회전해 31번 국도를 타고 일월, 현동 방향으로 간다. 문양삼거리에서 우회전해 88번 국도로 가면 수비면 발리리를 통과해 곧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에 도착한다. 연중무휴며 이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애완동물동반입장은 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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