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스타일 스토리] ‘슬립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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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4   |  발행일 2019-05-24 제40면   |  수정 2019-05-24
속옷·겉옷 경계 해체 ‘란제리 룩’ 의 유혹적 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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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슬립드레스와 블루진의 레이어드. (https://blog.naver.com/crystalhhj/220588626741) ② 걸리시풍 꽃무늬 슬립드레스와 스니커즈. (https://blog.naver.com/debutante831/221209532492) ③ 가볍고 자유로운 슬립드레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419972&memberNo=36301288&vType=VERTICAL)

봄이 온 지 엊그제 같은데 요즘 5월의 거리는 벌써 30℃를 웃도는 햇빛으로 뜨겁다. 여름에는 더위와 땀으로 제대로 옷을 갖춰 입기가 쉽지 않은데, 올여름은 1990년대 란제리룩의 부활로 시원하면서도 편안하고 여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슬립드레스의 매력이 거리에서 빛나고 있다. 한여름 해변이나 리조트에서 반짝 유행하던 슬립드레스의 인기가 이제 도시의 자유로운 스트리트 패션으로 찾아온 것이다.

20세기 말까지 속옷이었던 슬립드레스는 겉옷으로 정착되기 이전까지 퇴폐적이고 문란한 패션으로 비난받았고, 성적으로 개방적인 여성이라는 편견으로 일반인보다 패션에서 자유로운 연예 셀럽을 중심으로 사랑받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슬립드레스가 트렌디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게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슬립드레스는 여성스럽고 섹시하고 생각보다 편하고 가볍고 시원하고, 무엇보다 다른 아이템과 다양한 스타일링의 시도가 쉽다. 요즘 슬립드레스는 속옷인 듯 속옷 아닌 속옷 같은 슬립드레스와, 겉옷인 듯 겉옷 아닌 겉옷 같은 슬립드레스, 또는 속옷과 겉옷으로 처음부터 함께 입도록 디자인된 것이 있다. 현재 슬립드레스는 단독으로 입어도 좋지만 레이어드에 의한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임으로써 속옷과 겉옷의 경계를 해체하고 있다.

속옷에서 트렌디한 패션 아이템 변신
부드럽고 우아한 광택·매끄러운 소재
80년대 속옷의 겉옷화·여성 사회진출
신체 당당히 드러내며 페미니즘 표현
심플한 관능미·무심한 듯 멋진 매력
노출 부담땐 재킷·트렌치 코트 연출

플로랄 롱 슬립드레스·굽낮은 샌들
여름 휴양지 돌체 비타 룩으로 변신

슬립은 ‘미끄러지다’라는 동사 슬립(Slip)에서 유래되었으며 겉옷의 소재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거나 땀으로부터 옷을 보호하고, 드레스를 입고 벗기 쉽게 할 뿐만 아니라 기본 속옷만 입었을 때의 불안정한 실루엣을 잡아주고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목적으로 입는다. 형태는 소매 없는 심플한 원피스형 드레스로, 가슴 부분은 꼭 맞고 웨이스트라인 없이 치마나 원피스 안에 입도록 어깨에 가는 끈이 달린 여성용 속옷이다. 길이는 보통 가슴에서부터 일반적인 치마길이보다 약간 짧은 정도다. 재료는 아르누보의 영향으로 새틴, 실크, 레이온, 폴리에스테르와 같은 부드럽고 우아한 광택과 매끄러운 소재로 만들어지고, 색조는 화이트를 기본으로 페일 핑크, 페일 블루, 핑크 베이지와 같은 페일 파스텔톤 색조가 선호되지만 겉옷에 따라 블루, 와인, 검은색 등도 인기가 있다.

슬립이 여성의 속옷으로 정립된 것은 17세기경으로 추정되며, 이후 오랫동안 여성의 속옷으로 직분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20세기 들어 슬립을 슬립드레스로 겉옷화하려는 모험적 시도는 수많은 디자이너에 의해 끊임없이 이어져왔으며, 1920~30년대 할리우드의 섹시 아이콘으로 ‘금발의 폭탄’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진 할로우가 입고 등장했던 바이어스 드레스를 복고풍으로 재해석하여 만든 스타일이 현대패션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슬립이 슬립드레스로 본격적으로 발전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속옷의 겉옷화 현상’과 1990년대 중반 ‘페미니즘운동’이 활발한 시기의 남녀평등, 여성의 사회 진출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여성들은 슬립드레스를 통해 겉옷 아래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던 신체를 당당히 드러내며 여성의 시각에서 페미니즘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슬립드레스는 어깨가 노출된 끈 형식의 A라인 기본형이 가장 많고, 신체의 숨기기와 드러내기의 중간쯤 되는 노출과 시스루 룩으로 교묘하게 신체를 드러내는 디자인, 미니멀한 슬림라인으로 하늘하늘한 소재 너머 심플한 관능미를 드러내는 디자인으로 여성적 매력을 극대화함으로써 일상과 스트리트에서 로맨틱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직접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1990년대 세기말의 아름다운 퇴폐와 극적 판타지를 대담한 로맨티시즘으로 선보였던 크리스찬 디오르의 존 갈리아노는 슬립드레스의 관능적 낭만을 상업적 가치까지 승화시킨 디자이너로 대중에게 어필하였다. 그의 슬립드레스는 1990년대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공식석상에서 입어 더욱 유명해졌는데, 그는 슬립드레스가 여성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바이어스 컷으로 재단함으로써 보디와 천 사이의 미스터리한 공간과 유혹적 핏을 만들어냈고 그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발전시켰다.

현재 패션계는 여러 디자이너들에 의해 슬립드레스의 겉옷화 실험이 지속되고 있으며, 여성스러운 슬립드레스 외에 캐주얼한 이지 웨어로 제안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입기 쉬운 스트리트 스타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서구적 파티문화, 휴양지 문화, 당당한 젊음과 신체에 대한 가치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과감한 속옷의 에로티시즘적 특징과 맞아떨어져 슬립드레스의 활용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슬립드레스 스타일링의 기본 공식은 속옷 없이 슬립드레스 하나만 입어야 무심한 듯 멋지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노출이 부담스럽다면 슬립드레스를 입고 위에 오버사이즈 재킷이나 트렌치코트를 걸쳐도 시크한 전문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연출해 오피스룩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조금 더 편하게 입으려면 슬립드레스 위에 카디건을 매치하고 부츠를 신으면 도시적이고 내추럴한 멋을 표현할 수 있다.

반면 면, 데님, 체크, 꽃무늬 등의 소재로 만든 짧은 길이의 걸리시한 슬립드레스는 티셔츠나 블라우스 등과 연출하면 사랑스럽고 순진한 이미지로 연출할 수 있다. 슬립드레스에 티셔츠나 블라우스를 입고 청바지나 와이드 팬츠를 레이어드한 후 캔버스운동화를 신으면 중성적이면서도 스트리트적인 멋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슬립드레스의 길이를 아주 짧게 해 블라우스 형식으로 입고 하의도 청바지나 부츠컷 팬츠를 입으면 여성스러우면서도 활동성을 높이는 연출이 될 수 있다. 한여름 휴가철에는 트로피컬 패턴이나 플로랄 패턴의 롱 슬립드레스에 굽이 낮은 샌들을 신고 선글라스를 쓰면 휴양지 돌체 비타 룩으로 바로 변신할 수 있다. 슬립드레스 위에 큼지막한 오버사이즈 니트나 맨투맨을 무심하게 걸치면 의외의 믹스 앤 매치로 세련된 룩이 완성된다.

개인적이고 은밀했던 슬립드레스가 밖으로 뛰쳐나왔던 놀라운 경험에 이어 이 슬립드레스가 겉옷과 어떻게 공존하고 더 나아가 주객전도가 되는지 생생하게 경험하는 시대가 왔다.

영남대 의류패션학과 교수

▨ 참고문헌

△ 김소영(2007), 패션과 신체, 한국학술정보(주)

△ 패션전문자료사전, 패션전문자료편찬위원회. 1997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7765&cid=40942&categoryId=32087

△ http://www.loveject.com/fashionbeauty/312.html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419972&memberNo=36301288&vType=VERTICAL

△ https://blog.naver.com/debutante831/221209532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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