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종교라는 이름의 사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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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9   |  발행일 2019-05-29 제31면   |  수정 2019-05-29
[영남시론] 종교라는 이름의 사회문제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유교는 철학인가 종교인가. 불교행사에 참석해서 관불의식은 물론 합장조차 하지 않는 무례함으로 구설에 오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안동 유림 대표들에게는 너부죽이 큰절까지 한 걸 보면 아마 황 대표는 유교를 결코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대권을 넘보는 유력 정치인이 보란 듯이 두 종교를 차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교는 경배의 대상으로 삼는 신(공자 및 조상신)과 경전(사서삼경), 의례(석전대제 및 문중제사)가 있는 종교이며, 그 유형은 불교와 같은 성현종교(Hierophany)로 분류된다. 따라서 유교를 신봉하는 유림은 엄연한 종교단체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7대 종단에도 포함된다.

그런 종교단체의 지도자격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황교안 대표에게 교언영색을 늘어놓다가 망신살이 뻗치고 있다. 황 대표가 희망의 등불인지, 100년에 한 번 나타날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문제인 만큼 시빗거리가 될 일도 아니지만, 종교단체의 지도자급 반열에 있는 사람이 공개된 자리에서 함부로 내뱉을 말은 아니다. 지극히 배타적인 신앙관을 가진 정치인에게 의례적 인사말 수준도 아니고, 유림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듯한 그들의 발언은 아첨 그 자체이며, 유교사상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자괴감이 들게 만든다.

공자의 정치사상 중 핵심을 꼽으라면 ‘정명(正名)’사상이다. 그런데 황 대표의 정치적 발언에는 정명이 없다. 팔도를 유람하며 ‘좌파독재’ 청산을 목이 쉬도록 외쳐대지만 문재인정부가 왜 좌파이며 독재정권인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 적은 없다. 명칭이 바르지 않으니 말이 순리에 어긋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 황 대표의 언설에서 막말이 쏟아지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말이 순리에 맞지 않으니 되는 일이 있을 턱이 있겠는가. 급기야 전방부대 시찰을 가서는 군부대 장병들에게 항명을 선동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공자는 군자란 모름지기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는 가짜뉴스들을 긁어모아 책(문정권 징비록)으로 펴내기도 했다. 군자가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행동이 말에 미치지 못할 것을 저어하기 때문인데, ‘안보폭망’을 주장하는 황 대표는 신체 건장한 청년시절에 두드러기라는 치명적(?) 중병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

안동 유림의 대표들은 황 대표를 “궤멸하는 보수를 구제할 구세주”라 했다. 국민들을 보수와 진보로 편 가르는 짓, 그런 짓을 하는 정치꾼들이야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할 짓인가. 공자는 세력과 이익을 좇아 편을 가르고 당파를 만드는 것은 소인배들이 하는 짓이라고 했다(小人比而不周, 위정). 유교의 경전에 따를 때 안동 유림의 대표들은 자신들이소인배들의 아당(阿黨)에 불과한 존재임을 자백한 꼴이 된다.

근대화 과정에서 종교개혁의 역사가 없었던 탓인지 헌법에 정교분리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단체와 정치권력의 유착은 뿌리가 깊다. 독재자를 위해 조찬기도회를 열어주던 목회자들이 있었던가 하면, 태극기 부대의 선봉에 서 있는 목사도 있고,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전두환이 의장으로 있던 국보위에서 활동한 대가로 골프장 운영권을 따낸 현직 신부도 있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공천과정에 조계종이 깊숙이 개입한 전례까지 있다. 하여 종교지도자의 본분을 잊은 안동 유림들의 아첨성 발언은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종교와, 또 성직자들은 도대체 어떤 역할들을 하고 있는가. 종교학자 정진홍이 쓴 책 ‘경험과 기억’에서 우리나라 종교에 대해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내려놓은 한 구절을 찾을 수 있다.

“이제 종교는 없습니다. 있는 것은 종교라는 이름의 ‘사회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아니면 종교라는 이름의 소비재가 시장에서 시장원리에 의하여 매매되고 있을 뿐입니다. 종교공동체는 이미 공동체가 아닙니다.(중략) 효율적인 소비확대와 조직확대를 목표로 움직이는 업무수행조직입니다.”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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