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방 든 젊은 주인장의 ‘동네책방’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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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31   |  발행일 2019-05-31 제33면   |  수정 2019-05-31
[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경주 황리단길 서점 ‘어서어서’ 양상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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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야구 응원 때마다 들고 다녔던 체 게바라 스티커가 부착된 철가방. 경주 황리단길의 유일한 책방 ‘어서어서’의 양상규 대표가 그 철가방을 들고 서점 앞을 손을 흔들면서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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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시집을 색깔별로 깔아 서점 책 진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 ‘어서어서’.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

난 그걸 줄여 ‘어서어서’란 말을 생각해냈다. 참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고 전국적 핫플레이스로 등극한 경주 황남동 황리단길 복판에서 서점을 차릴 때 그걸 상호로 사용했다. 황남초등네거리에서 1㎞ 남짓 이어지는 이 길은 몇 년 전 서울 경리단길의 특수를 노리는 청년장사꾼들이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같은 포스로 입점하면서 만들어졌다. 바로 동쪽 대릉원 담장길 옆 한옥촌도 재밌는 카페, 식당, 민박집 등으로 변주 중이다.

내 서점 옆에는 배리삼릉공원, 인생사진 대릉원사진관, 소반밥상 카페 ‘어썸’ 등이 이웃하고 있다. 그들을 하나로 묶는 건물 옥상엔 8개의 광목천이 너펄거리며 그늘 구실을 한다. 오전 11시 문을 열기 위해 1시간 정도 일찍 이 거리로 오면 난 1970년대 어느 소읍의 신작로에 온 기분을 느낀다.


직장문화 시스템은 못 버티고 나의 삶 개척
사진에 빠져있다 가슴 속 들어온 세계 문학
70년대 소읍 신작로 같은 곳에서 ‘인생 2막’
혁명가 체 게바라·철가방…수호천사와 만남



나의 고교시절, 이 길은 사망선고를 받은 것 같았다. 세상에서 막차를 탄 어둑한 얼굴의 사람들이 이 길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과 몇백m 안 떨어진 인왕동 첨성대 언저리는 불야성을 이루었다.

난 양상규. 어서어서 서점 대표다. 난 또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일찍 인생 2모작을 시작했다. 황리단길에 생긴 첫 동네책방 하나. 남들에겐 시시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서점은 내 인생 최고의 ‘묘수’다.

선택의 여지없이 조건반사적으로 들어갔던 직장. ‘입에 풀칠한다’는 건 숭고한 지상명령. 하지만 난 그 명령의 동굴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빠져나왔다. 난 직장문화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누구보다 빨리 눈치챘다. 목숨 걸고 하고 싶은 일이 눈앞에 다가섰다. 결국 직장문화 시스템에서는 그렇게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은 사람의 에너지를 하나로 뭉쳐준다. 괴력이 생기게 하고 그 일에 미치게 만든다. 스마트폰이 슈퍼갑이 된 지금. 이 세상은 그런 자의 무대다. 그때는 힘 있는 사람들이 모든 영역을 장악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콘텐츠를 서로 연결만 해줘도 돈이 되는 세상이다. 중국 전자상거래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도 그렇게 해서 억만장자가 됐다.

1984년에 태어났다. 황성초등·경주중·문화고를 나온 토종 경주맨. 학창시절 나는 지인들에게 참 많은 웃음을 퍼주었다. 장기자랑의 전설이었다. ‘웃기는 양상규’였다. 안동대 컴퓨터멀티미디어과에 들어갔다. 과대표에 이어 총학생회 홍보부장이 된다. 졸업사진을 위해 업자들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직접 친구들과 포스터를 제작했다. 학생들이 만든 졸업앨범은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다.

자연 인물사진을 잘 찍게 됐다. 하지만 난 구도가 남들과 다르다. 가령 내성적인 친구가 유쾌하게 웃는 장면과 같은 반전의 미학을 인물을 통해 구현해 보고 싶었다. 졸업작품 때 그 인물을 선보였다. 지도교수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거기서 멈췄다. 복학한 뒤 학교에 와 보니 신축 도서관이 있었다. 사진에 빠져있던 나는 그 도서관을 통해 문학적 지성과 조우하게 된다. 매일 거기서 살았다. 내가 미처 읽지 못했던 어마무시한 세계문학서적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에 사로잡힌다. 읽고 싶은 욕망이 적고 싶다는 욕망을 압도하던 시절이었다. 김수영, 기형도, 이성복, 황지우, 허수경, 나희덕, 김혜순…. 비로소 국내 1급 시인이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어느 날부터 나도 시를 적고 있었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시작법이었다. 나는 일본 하이쿠처럼 촌철살인하는 몇 줄의 단문 아포리즘에 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렇게 책만 읽고 있을 수가 없는 나이가 도래했다. 일단 경주 시내에 있는 한 웨딩숍에서 촬영담당 일을 맡아본다. 유행하는 스타일에서 조금 벗어나 커플만의 사연이 있는 사진을 찍어댔다. 고정프레임은 내게 무의미했다. 재미를 느끼려던 차에 사장이 사업을 접고 중국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기본 밥벌이는 국민의 기본의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마을금고로 들어간다. 거기서 3년간 일하는 방법과 사회가 뭔지를 빡세게 배우게 된다. 그 봉급생활자 시절, 나의 수호천사이자 마스코트인 쿠바 혁명의 대명사 체 게바라와 철가방을 만나게 된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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