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뮤직톡톡] 우연히 만들어진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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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31   |  발행일 2019-05-31 제39면   |  수정 201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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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가 백인을 위한 춤곡으로 추락하는 걸 거부하면서 흑인 본연의 영감을 퓨전재즈식으로 잘 표현해 낸 트럼페터 마일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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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음악 장르는 숱한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다. 그러나 오늘은 우연에 의해 탄생된 음악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하나의 장르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는 지난한 역사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인간의 관습적 행위도 찬찬히 살펴보면 그 속에 경험의 역사가 스며들어가 있다. 전 세계가 공유하는 록뮤직과 R&B, 소울, 그리고 재즈까지. 거의 모든 장르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그 뿌리를 이루는 ‘블루스(Blues)’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겠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 중심의 가치관이 인간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자급자족하던 중세 봉건주의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인도와 중국의 사치품들을 수입하며 무역거래는 활기를 띠었고 그중 비단과 도자기, 후추 등은 귀족 누구라도 즐기고 싶은 귀한 물건이었다. 그렇게 활기를 띠던 무역의 중심에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똬리를 틀고 있으니 무역을 하던 이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육로로 거래하기가 힘들어진 무역상들은 뱃길을 품는다. 운하가 없던 시기라서 아프리카를 크게 돌아 인도로 중국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가다가 1488년 희망봉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부터 서아프리카에 수많은 흑인들이 노예로 팔려 나가기 시작한다. 또 그즈음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는데 지금껏 가보지 못한 새로운 항로인 인도를 찾을 것이라며 귀족들의 후원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건너 지금의 남북 아메리카의 중간 지점에 도착한다. 그곳이 서쪽의 인도라 생각하며 ‘서인도제도’라 이름 짓고 유럽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아메리카를, 영국과 프랑스는 북아메리카를 점령하였다. 다시 북아메리카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주도한 독립전쟁으로 1776년 독립을 하고 비옥하고 광활한 대지에서 미국을 건국하게 된다. 미국은 넓고 비옥했으나 노동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서아프리카에 있는 원주민들 수백만 명을 강제이주시켜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강제로 이주당한 그들은 목화밭의 노동도 고되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그들끼리 서로 말을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농장주 입장에서는 그들의 언어를 모르니 무슨 얘기를 하는지, 무슨 작당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서로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다. 고향으로 돌아갈 길도 모른다. 갑갑한데 고향에서 쓰는 말도 못하게 하다니…. 그러니 어떻게 고된 노동과 백인들의 학대를 견딜 수가 있었겠는가.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하늘을 보며 소리쳤고 그 소리는 음악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노랫소리는 노동을 원활케 하는 활력소가 된다. 말 대신 소리로, 음악으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소리는 청교도가 가져온 개신교의 찬송가와 만나면서 ‘가스펠’이 된다. 가스펠이라는 단어는 신을 의미하는 ‘God’ 과 ‘부른다’는 의미의 ‘Spell’의 합성어다. 그들이 이역만리 떠나와 고된 삶을 살며 자유롭게 부를 수 있는 대상은 ‘하늘’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살다보면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화가 날 때 허공을 향해 소리 지를 때가 있지 않는가. 그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두려움과 분노,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절망감이 공존했을 것이다. 그 만신창이가 된 자기 마음을 허공에 대고 소리친 것이다. 현재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나라들은 그때 약탈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거창한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며 지금 자신의 국가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하나의 우연에서 시작된 일인 것 같다. 블루스, 그건 슬픈 근대사에서 우연히 건져낸 멋진 인류문화유산이 아닐까.

재즈드러머 sorikong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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