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기생충’이 표현한 빈부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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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07   |  발행일 2019-06-07 제22면   |  수정 2019-06-07
부자와 빈자, 철저히 분리돼
거리가 멀수록 혐오가 생겨
서민이 공생의 삶을 못살면
사회 불안은 커진다고 경고
결국은 희망없는 파국 맞아
20190607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이 완전히 한국적이어서 서구인들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과 해외 매체는 격찬했고, 각 나라에서 온 관람객들이 서로 자기들 나라의 이야기 같다며 공감했다고 한다. ‘기생충’에 한국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한국적인 설정들이 들어간 건 맞지만, 가장 핵심적인 설정만큼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바로 빈부격차다.

봉 감독은 ‘설국열차’를 만들면서 ‘기생충’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설국열차’는 계급의 사다리를 수평적으로 그린 것이었는데, 아예 계단을 사이에 두고 수직적으로 계급구조를 그리자는 착상을 한 것이다. 고지대 2층에 사는 부자와 저지대 반지하에 사는 빈자. 자본주의 사회의 수직적 계급구조는 보편적인 것이고, 빈자를 지하생활자로 표현하는 것도 일반적이어서 ‘기생충’은 국제적으로 공감받는 작품이 됐다.

계급 갈등 문제를 다룬 사회적인 작품들은 보통 빈자들을 선(善)으로 그린다. 하지만 ‘기생충’은 그렇지 않다. 이런 새로움이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에게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전적인 사회물에서처럼 자본가가 약자를 착취하지도 않고, 요즘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부자가 폭력적으로 갑질하지도 않는다. ‘기생충’의 부자는 선량하고 상식을 아는 보통 사람일 뿐이다. 오히려 빈자가 더 악하다. 부자를 속여 기생하고, 다른 빈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흉계를 꾸민다. 부자의 집 지하실에서 빈자들은 서로 부자의 집사가 되겠다며 혈투를 벌인다. 이들은 부자를 숙주로 한 기생충, 어둡고 습한 곳에서 살아가는 바퀴벌레 같은 족속으로 그려진다.

부자와 빈자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부자는 분리된 선을 중시한다. 형식적으로는 빈자들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선 너머 있는 ‘것들’에 대한 멸시가 부지불식 간에 튀어나온다. 부자는 빈자가 선을 넘어오는 것을 무엇보다 혐오한다. 그런데 가장의 반지하 냄새가 선을 넘어 부자의 코로 들어갔다. 부자는 혐오감을 드러내고 그것은 결국 극 중에서 가장을 폭주하게 만든다. ‘기생충’은 이러한 분리와 두 집단 사이의 거리감을 다뤘다. 부자와 빈자 사이의 분리가 선명하고 그 거리가 멀수록 혐오, 멸시가 자라나고 사회의 불안이 커진다. 부자가 특별히 갑질하는 악한이 아니어도 분리의 구조 자체가 불안을 초래한다. 외국에도 부자와 빈자의 선명한 분리로 인한 사회적 긴장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더 공감이 나타났을 것이다.

‘기생충’은 기존 봉준호 감독 영화에 비해 절망적인 느낌이 강하다. ‘설국열차’만 해도 마지막에 작은 희망을 제시하는 것 같았지만, ‘기생충’에서 가장은 결국 지하 기생충이 될 뿐이다. 이 영화에서 빈자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는 허망한 꿈일 뿐이다. 빈자가 아무리 계획해도 신분상승을 이룰 수 없는 세상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결국 닥치는 것은 파국이다.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세상. 이게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그린 현실이다. 서민이 공생이 아닌 기생하는 삶을 사는 한 우리는 불안 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경고. 서구에서도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위나 폭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기생충’의 파국이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에게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높은 평가를 받는 사극 ‘녹두꽃’도 빈부격차를 그린다. 작가의 전작인 ‘정도전’에선, 고려가 빈부격차로 망하고 중소지주 신진사대부가 조선을 개창했다. 그 사대부들이 권세를 잡아 다시 고려 귀족처럼 부를 독식하게 된 조선말이 ‘녹두꽃’의 배경이다. 여기서도 결국 세상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와 드라마로 빈부격차를 그려 찬사를 받는 두 작품의 결말이 모두 희망 없는 파국이다. 이런 작품들이 등장하는 건 그만큼 현실에서의 절망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2012년 대선 때부터 양극화 해소가 화두였지만 서울 강남 집값만 올랐을 뿐 크게 개선된 건 없다. 우리는 더 확실한 분리의 사회로 가고 있다. ‘기생충’은 바로 이런 현실을 그려 관객의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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