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프레임 전쟁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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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07   |  발행일 2019-06-07 제23면   |  수정 2019-06-07
20190607

민생과 정책은 실종되고 정치는 장외와 막후로 나갔다. 국회 정상화를 바라는 여망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나고 묵살된다. 대통령과 정당 대표 간 회동 형식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이번 회동을 패스트트랙 때와 같은 여야 4당과 자유한국당 사이 4대 1 구도의 프레임에 집어넣으려는 청와대와 ‘패스트트랙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한국당의 셈법이 정면 충돌한다. 급기야 청와대는 한국당을 제외한 4당 대표회담 카드를 들고나올 태세고,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사과·철회를 전제로 한 제1야당 대표와 1대 1 회동으로 배수진을 치고 있다. 피차 물러서기 힘든 극한의 대치다.

바야흐로 프레임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채 1년도 남지 않은 총선이 격발한 싸움이자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건곤일척의 승부다. 총성은 없지만 명분과 실리를 잃지 않으려는 수작과 안간힘은 도처에서 파열음을 낸다. 내년 총선은 문재인정권 3년차 중간평가의 성격을 띤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는 각기 정권 재창출과 탈환 여부를 가늠할 바로미터로 삼는다. ‘제로섬 게임’의 양상이 불가피하다. 총선 정국이 모든 현안과 통치조차 집어삼키며 전례를 찾기 힘든 대격돌을 예고하고 있다. 전초전부터 불을 뿜는 기세가 한마디로 화마의 블랙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당을 연일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당 의원들의 막말을 질타하고,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가 없다’며 5·18 기념사를 통해 통렬하게 비판했다.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 유출에 대해서는 ‘기본과 상식’의 상실을 지적하며 당리당략을 국익과 국가 안보에 앞세우는 정치와는 함께 갈 수 없음을 천명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작심 비판은 국정 운영과 통치의 한 축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사전선거운동 성격의 정치 행위로 읽히기 십상이다. ‘막말 프레임’을 씌우는 일에 대통령이 앞장서고 있다는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전략 또한 청와대와 궤를 같이 한다. 한국당의 막말 논란을 고리로 정국 주도권 잡기에 골몰해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한국당을 제외한 야 3당도 비판을 쏟아내며 우군으로 가세하니 기개 등등하다. 민주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 몇 달째 공전 중인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한국당에 지우며 이러한 압박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한다. 이른바 ‘촛불 개혁 세력’과 ‘막말 정당’의 대결 프레임을 부각하며 중도층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집권 여당이 한국당의 못마땅한 행태에 의지해 반사이익을 보려는 전략은 유효하지만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프레임론은 공허하고 선정적인 정치 과잉의 이면에 으레 정책의 실종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막말 프레임의 덫에 걸려들어 수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민주당의 공세를 갈라치기 분열작업으로 규정하고 ‘원 보이스, 원 팀’으로 위기를 극복하자고 내부결속을 다지는 한편, 입 단속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중적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부 의원들이 황 대표의 노심초사를 정면으로 거스르거나 개인적 홍보 차원의 강성·강경 노이즈 마케팅을 고집하며 적전 분열을 자초한다. 조직의 승리보다는 나부터 살고 보겠다는 이러한 각자도생의 일념과 의지 발현은 정확하게 프레임에 걸려든 모습 아닌가. 황교안 대표는 최근 ‘민생투쟁 대장정’을 마친 자리에서 “(민생) 현장은 지옥과 같았다”고 했다. 절박한 민생 현장을 경험하고도 민주당을 꼼짝달싹 못하게 할 경제 프레임으로 엮어내지 못하는 한국당이 더 절박하다.

홍준표 전 대표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나라야 어찌 되든 말든 자기들 프레임에 빠져 대통령까지 나서서 진영 논리로 서로 삿대질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고 일침했다. 경제가 폭망해 국민들이 도탄에 빠져도 오로지 내년에 국회의원 한번 더 하는 데 목숨을 건 그들만 ‘그들만의 리그’로 정치 게임을 하고 있는 올 여름은 더욱 더 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고 뜨겁게 전망했다. 그의 우려와 걱정처럼 프레임 전쟁에 민생은 파탄나고 서민만 등 터진다면…. 여전히 화이트 칼라 중심의 드넓은 중도의 중원은 프레임에 잘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좌와 우만 모른다면, 우리 모두 정말 큰 일이다.

조정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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