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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녹슬고…방치된 이원대 의사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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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시용기자
  •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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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 지원 안내판 설치외 전무

市 “전수조사벌여 관련예산 확보”

영천 화북면 이원대 의사 생가의 지붕 일부가 훼손돼 있고 대문도 녹이 슬어 있다.
[영천] 영천지역 독립운동가인 이원대 의사(1911~1943)의 생가(영천 화북면 오산리 139)가 당국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이 의사는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은 인물이다.

방문객에 따르면 현재 이 의사 생가 앞엔 안내판만 외롭게 세워져 있을 뿐이다. 게양돼 있는 태극기는 낡았고, 대문은 녹이 슨 채 굳게 잠겨 있다. 가옥 두 채 가운데 한 채는 지붕 기와 일부가 떨어져 있는 상태다. 최근 생가 마을에서 만난 이 의사 육촌동생인 이원경씨(88)는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이 부족해 관리를 안하는지, 방치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당국이 생가 보수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의사 생가는 그가 태어난 뒤 중국으로 망명하기까지 살았던 곳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 의사 생가에 대한 영천시 지원은 안내판 설치 외엔 전무하다. 지난해 이원대 의사 기념사업회 추모사업(생가·경북도독립기념관 관람)에 고작 100만원을 지원한 게 전부다.

이 의사는 자천초등·영천농업보습학교(영천중 전신)을 졸업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중국에서 그는 김원봉이 주도한 조선의용군 창군 멤버로 참여했다. 중국 호남·강서·산서성 등에서 수십차례의 항일 전투에 참전했다. 1942년 조선의용대 분대장에 임명된 뒤 석가장 일대를 중심으로 대일 무장투쟁과 대원 모집활동을 벌이다 일본군에 체포돼 군사정탐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43년 6월17일 북경 일본 헌병군 헌병대본부에서 총살형에 의해 순국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77년 정부는 이 의사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어 1998년 6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천시 관계자는 “올해 1억5천만원의 예산을 투입, 현충 시설인 백학학원의 일부 시설에 대한 복원공사를 실시할 계획”이라며 “이 의사 생가를 포함해 전수조사를 벌여 관련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유시용기자 ys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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