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혁신의 길Ⅱ- 독일을 가다 .4] 튀빙겐대학 한국학과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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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1   |  발행일 2019-06-11 제8면   |  수정 2019-07-09
한국학 관련 4개기관 개설 ‘전세계 유일’…동아시아학과 중 최고 인기
20190611
이유재 튀빙겐대 교수(한국학과)는 9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한국학 교육과 연구기반을 탄탄하게 구축했다. 이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한국학과의 성장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교육도시인 튀빙겐시에 있는 에버하르트 카를 튀빙겐대학(Eberhard Karls Universitat Tubingen)은 한국과 관련이 많다. 튀빙겐대가 한국어 강좌를 처음으로 제공한 것은 1964년이다. 시점으로 따지면 유럽 대학 내에서 몇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역사가 깊다. 1970년대 들어선 우리나라의 많은 신학자가 튀빙겐대에서 수학했다. 1979년엔 한국학과 정교수가 부임했고 이후 석사과정이 개설됐다. 유럽 대학 중에선 한국학을 선도적으로 받아들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년엔 마침내 정식으로 독립된 한국학과가 개설됐다.

한국학과 개설은 단지 삼성·LG 등 세계 일류 브랜드의 확산이나 K-pop등 한류 붐으로 한국에 관심을 가진 독일 학생들이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차별화한 교육 커리큘럼 △연구 및 학생교류의 국제화 △학제간·국제간 한국학 연합연구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튀빙겐대는 △독립된 한국학과 운영(교육) △한국학연구소 설립(연구) △세종학당 운영(대중화) △고려대 튀빙겐대 한국센터(학생교류·국제화) 설립 등 한국학과 관련된 4개 기관을 가진 전세계 유일무이한 대학이다.

한국강좌 64년 개설후 명맥만
일본·중국학에 비해 관심 낮아
2010년 한국학 학부과정 신설
이유재박사, 교수 임명후 급성장

학사관리 부담될 만큼 지원 늘어
全학생 1년간 의무적 한국유학
한국의 많은 대학과 학생교류
지난해 중국학과서 완전 독립

지난해엔 신입생 무려 110명
10월 새학기부턴 정원제 시행
근현대 한국을 알리는데 초점
학과 운영·커리큘럼 좋은 평가
세종학당에선 한국 관련 행사도


◆한국학과 개설과 위기

튀빙겐대에서 동아시아 연구가 포괄적으로 확대된 것은 1974년 동아시아 문학 교수로 Tilemann Grimm 교수가 임명되면서다. 앞서 1964년 한국학 분야의 인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한국어강좌가 개설됐지만 일본학과·중국학과에 이어 한국학과 정교수가 부임한 것은 1979년이다. 비록 중국학과 내 한국학과이지만 한국학과 개설은 유럽대학 가운데 손꼽힐 정도로 선도적이었다. 독일 남부지역과 독일어권 스위스지역까지 한국학 전공이 있는 대학은 튀빙겐대가 유일하다. 독립된 학부는 없지만 1981~1982년 겨울학기에 석사 과정이, 그 이후 박사과정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당시 한국학은 일본학·중국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고 학생 수도 매우 적어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에 빠졌다. 1986~1987년 겨울학기를 예로 들면 일본학과 학생 153명, 중국학과 286명인 데 비해 한국학은 21명에 그쳤다. 심지어 2003년 Eikemeier 교수가 은퇴하면서는 한국학 전공이 아예 폐지됐다. 2000년대 들어 독일 대학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한국학이 그 대상이 된 것이다. 다만 한국어 강좌 기능은 유지됐다. 볼로냐협정에 의해 독일 대학에도 학부과정이 만들어지면서 부전공으로 한국학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국학과 화려한 부활

한국학과 폐지는 튀빙겐대 내에서도 자주 문제가 됐다. 특히 2008년 아시아-동양연구소(Asian-Orient-Institute) 설립을 기점으로 환경변화를 맞게 된다. 그해 튀빙겐대 경영진은 동아시아 연구 분야의 지속적인 이니셔티브를 위해 한국학 교수를 재임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인문학부와 아시아-동양연구소에 의해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에 따라 이유재 박사가 2010년 한국학과 교수로 임용됐으며 그해 한국학 학부과정이 신설됐다. 결과는 기대 밖이었다. 신입생 8명이나 입학한 것. 한국학 학부과정을 신설하긴 했지만 학생이 몇명이나 올지 불확실해 당시 대학 측은 정원조차 정하지 않았다. 10년 공백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 시작하는 학과라 섣부르게 정원제를 했다가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학부 운영이 곤경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입생은 학부 부활 이듬해 22명으로 늘고 이후 54명·64명 등 해가 갈수록 학부전공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부전공 20명을 포함해 신입생이 무려 110명에 이르렀다. 신입생 대부분이 독일학생이란 점도 특기할 만하다. 지난해 10월 기준 전체 재학생은 399명으로 일본학과·중국학과 등을 제치고 동아시아학과에서 가장 인기있는 학과로 급부상했다. 2014년에는 석사과정을 개설했다. 결국 한국학과 지망생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학사관리에 부담이 생길 정도라 오는 10월 새학기부터는 정원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전공 50명, 부전공 20명 정도로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앞서 한국학과는 지난해 중국학과에서 완전 독립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튀빙겐대에서 설립한 한국학연구센터 소장직도 맡고 있다. 튀빙겐대에는 아시아학과로 인도학·문화인류학·이슬람학·중국학·일본학·한국학 등 6개 학과가 있다. 이 가운데 교수진으로 따지면 역사가 깊은 일본학과 중국학이 탄탄하다. 하지만 한국학은 학생 수가 가장 많다. 튀빙겐대에서 학과 재개설 후 9년만에 급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한다. 한국학 재개설 당시 교원 1.5명으로 출발했으나 지금 교원은 12명으로 늘어났고, 팀워크가 잘맞아 큰 효과를 봤다고 한다.

◆한국유학 의무적 시행

튀빙겐대 한국학과가 인기를 끄는 배경엔 국제사회에서 달라진 한국의 위상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학과운영 및 커리큘럼이 뛰어난 점이 꼽힌다. 2010년 한국학과가 재개설되기 전까지 한국학과의 주요 관심과 주류는 문화인류학 또는 민속학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당시 한국학 교수는 인류학자로 샤머니즘, 민속학 그리고 한국의 전근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 이유재 박사가 부임하면서 전근대 한국에서 근현대 한국으로 초점이 바뀌었다. 광복 후 한국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고 한국 근현대사가 학문연구의 가치 면에서도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식민지시대, 분단과 냉전, 독일 이주, 산업발전 등 근현대 한국의 역사·사회·문화가 근현대 한국학 교육 및 연구로 실용적이면서도 한국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이 박사는 더 나아가 학부과정 전 학생에게 의무적으로 1년간 한국에서 유학하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학생교류는 일부 우수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데 비해 튀빙겐대 한국학과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해외유학을 추진한 것이다. 독일 학부과정이 6학기(3년)인 점을 고려해 가능하면 4~5학기에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2012년 고려대에 튀빙겐대 한국센터를 설립했다. 튀빙겐대 학생의 한국 유학이 시작된 것이다.

이 같은 한국유학 의무화는 과거 한국학 전공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을 개선하기 위한 차원이기도 하다. 적어도 학부과정을 졸업하면 한국어 읽기, 쓰기, 말하기는 확실히 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구성했다. 학생교류를 시작하면서 당시 튀빙겐대 총장과 본부에서는 한 해 20명이 넘으면 성공적이라고 봤지만 이듬해에 목표치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유학생이 급증하면서 튀빙겐대 한국학과는 현재 고려대·서울대·성균관대·서강대·전북대·충남대·이화여대·숙명여대·한양대 등과 학생교류를 하고 있다. 특히 2014년 학부생 졸업에 맞춰 석사 과정을 개설하면서 서울대와는 이중 석사학위제를 도입했다. 1년은 독일에서, 나머지 1년은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한국어로 서울대에 논문을 제출하도록 했다.

튀빙겐대는 또 2012년에 일반인 교육을 위해 세종학당을 설립했다. 튀빙겐대에서 한국학을 공부하지 않은 다른 전공 학생과 일반인을 위해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다. 운영은 튀빙겐대 한국학과에서 맡고, 학당장은 이유재 교수가 맡았다. 세종학당은 매학기 100명 정도 수강하고 있으며 영화제, 음악회, 설날행사, 한글날 행사, 사진전시, 말하기 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전방위 교류

튀빙겐대 한국학과의 교류 폭은 상당히 넓다. 한국학 관련 연구 분야도 넓지만 교류하는 국가가 유럽, 동아시아, 북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특히 튀빙겐대 한국학연구소(센터)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연구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튀빙겐대 한국학센터는 2016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해외대학 연구소 지원 프로그램인 해외중핵대학에 지원해 선정됐다. 이에 따라 튀빙겐대는 2016년 9월부터 2021년 8월까지 글로벌 코리아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튀빙겐대 내 한국학센터 설립 △학사·석사·박사 과정의 국제 통합 프로그램 확장 △냉전·식민지 및 이주를 중심으로 세계적 관점에서 현대한국에 대한 연구 등을 실행하고 있다.

연구는 기본적으로 한국·독일 관계사에서 출발한다. 1883년 수교한 양국은 곧 외교관계 수립 140주년을 앞두고 있다. 한국에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고, 독일에 한국은 중국·일본에 이은 세 번째 주요한 동아시아 국가다. 튀빙겐대 한국학센터에서는 양국 관계를 재조명하고 연구범위를 유럽 다른 나라까지 포괄해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오는 9월엔 중앙대 독일연구센터와 공동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학센터는 또 일상생활사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한국연구재단과 독일학술교류재단(DAAD)의 지원을 받아 일본 도시샤대, 한국 고려대와 협력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학술적으로는 탈식민연구방법론이나 문화냉전사, 지구사 및 일상사 등을 한국학에 접목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과 서양의 이론과 연구방법론을 같이 토론하여 새로운 연구 접근법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독일과 유럽 등 한국 외 나라와 지역에 산재해 있는 현지 한국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정리해 한국자료와 비교·보완하는 구상도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북한연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특별히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미연구자들과도 교류 폭을 넓히고 있다. 미국 대학에 독립된 한국학과는 별로 없지만 방법론적인 연구가 잘 축적돼 있어 활용가치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동아시아 문명과 문화 등의 일반론 등에 대한 연구축적이 잘 돼 있어 한국, 유럽, 북미자료를 비교 검토하면 한국학의 연구범위를 글로벌하게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한국자료와 보완하면 기존 연구와는 다른 새로운 연구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사진=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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