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게임 체인지’는 시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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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2


중국과 미국의 갈등 내면엔

동아시아와 서구 문명 충돌

이러한 게임체인지 속에서

우린 어떠한 길 걸어야하나…

‘국회 체인지’부터 해야할 듯

윤재석 경북대 사학과 교수
무역전쟁으로 시작된 미중 간의 충돌이 정치·군사적 이슈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지난 6월1일 미국 국방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 지역을 재편성하려 하고, 이를 위해 군사 현대화와 영향력 행사, 약탈적 경제 등을 동원해 다른 나라에 강요한다”고 비난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화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싱가포르·대만·뉴질랜드·몽골 등 네 국가 모두(All four countries) 전 세계에서 미국이 수행하는 임무에 기여하고, 자유롭고 공개된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면서 대만을 ‘country’로 표현하였다. 미국이 이 단어를 정식 ‘국가’의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 1979년 중국과 수교한 이래 지금까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면서 대만을 공식적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최초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가장 민감한 역린(逆鱗)’을 건드리기에 충분하였다. 중국에 있어서 대만은 본토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자국 영토이다. 최근 중국 국방부장 웨이펑허가 “만약 누구라도 감히 중국으로부터 대만을 쪼개려 한다면 중국군은 국가의 통일을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고 천명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표방하며 대만해협에 함대를 파견하거나, 대만에 2조원 이상의 무기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는 최근 미국 측 발표와 더불어 볼 때, 미국이 대만을 ‘country’로 표현한 것은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한 외교적 수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랜달 슈라이버 미국 국방부차관보가 “우리는 대만에 대한 위협이 커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으며, 대만관계법에 따라 우리의 의무를 매우 진지하게 수행할 것”이라고 한 지적은 경제 부문의 압박에 더하여 대만을 지렛대로 삼아 정치·군사적으로 중국을 압박함으로써 미국이 장악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패권을 견지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기도 하다.

주목할 것은 최근 격화되고 있는 미국의 대중국 강경 언사와 행동을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적 이득 챙기기의 일환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중국위협론’은 1990년대 중반부터 노골화되기 시작하였고, 지금 그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의 중국위협론이 1995년 7월과 1996년 3월 중국이 대만을 겨냥한 미사일 훈련의 실시로부터 시작되었으며, 20여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그 한복판에 대만이 있다는 유사점이다. 그때와의 차이라면 오늘날 중국은 미국의 눈치를 살펴야 할 만큼 약소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덩샤오핑과 장쩌민 시절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아편전쟁 이래 서구제국주의로부터 겪은 모욕을 와신상담(臥薪嘗膽)하였고, 후진타오에 이르러 대외적으로 힘의 외교를 본격화할 만큼의 실력을 갖추기 시작하였으며, 급기야 현재의 시진핑에 이르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표방한 ‘중국몽(中國夢)’을 꿈꾸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세계패권의 향배를 둘러싸고 벌어져온 미국의 전면적 제재와 중국의 전면적 대항이라는 복잡한 전선이 하루아침에 정리된다는 것은 지극히 난망한 일인 것이다.

오늘날 미중의 대결은 새뮤얼 헌팅턴의 주장처럼 “21세기 새로운 세계정치의 가장 핵심적 변수로서 상이한 문명 집단간 갈등”의 일환인지도 모른다. 미소 냉전 이후 서구의 정치적 가치관과 제도의 확산에 먼저 이슬람권이 반기를 들었고, 이제 사해일가(四海一家)의 유교적 중화질서의 세계화를 꿈꾸는 중국의 서구문명에 대한 위험한 도전이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문명과 서구문명의 소위 ‘게임 체인지’가 시작되었다면 우리는 어떠한 길을 찾을 것인가. 명분 없이 ‘정권 체인지’에만 골몰하고 있는 문 닫힌 국회에 ‘문명 체인지’를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는 그들을 제외한 누구라도 다 알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더 시급한 체인지의 대상이 ‘국회’일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은 필자만 느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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