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렬의 미·인·만·세] 에곤 실레의 고독한 욕망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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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2   |  발행일 2019-06-12 제30면   |  수정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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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의 자화상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는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다. 예술가의 고독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바로 실레다. 그는 짧은 삶을 살았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화가 중의 한 명이다. 그의 길지 않은 생을 통해 그가 남겨 놓은 그림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건조하고 고독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레는 스승이자 동료화가인 클림트의 화려하고 환상적인 욕망과는 다른 고독한 개인의 욕망을 그린 화가였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깡마른 육체와 불거져 나온 뼈, 퀭한 눈, 비틀린 사지 등으로 건조하고 거친 욕망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매우 노골적인 성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에로틱한 환상보다는 인간의 고독과 불안을 보게 한다. 실레의 이런 시각은 헐벗고 건조한 인간의 고독한 욕망이자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자리한 시대적 자화상이다.

실레는 16세인 1906년 비엔나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에 이 학교에서 히틀러는 입학을 거부당했다고 한다. 이듬해에는 당시 비엔나 화단의 대가이자 빈 분리파의 주역이었던 구스타프 클림트와의 만남도 이루어졌다. 1909년 한 해 동안 제작된 대부분의 작품은 클림트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1910년부터는 클림트의 영향을 벗어난다. 실레는 클림트의 영향을 받은 인물의 장식적 배경 대신 텅 빈 공간에 표류하듯 존재의 불확실성에 대한 인물의 새로운 시각을 표출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독한 욕망은 자화상과 누드묘사를 통해 불붙기 시작했다.

실레는 강한 필력으로 인간이 오랜 세월 두껍게 걸치고 있던 사회 문화적 욕망의 두께를 벗겨낸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깊숙한 내면의 고독을 응시한다. 그곳에는 무의식의 세계에 감춰진 인간의 모습인 불안과 공포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한 고독한 욕망이 자리한다. 바로 여기에 실레의 작품에 담긴 비애가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비엔나는 1900년을 전후로 부르주아의 향락과 빈민층의 비참한 현실이 대조를 이루는 위선에 가득 찬, 퇴락 직전의 상황이었다. 실레가 살았던 당시의 비엔나는 부르주아의 욕망을 채우는 퇴폐적인 사회인 동시에 지식인들의 활동으로 근대 문명의 절정을 경험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히틀러, 스탈린, 트로츠키는 새로운 사회상의 실현을 꿈꾸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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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연구소 소장


특히 사회과학뿐 아니라 인문학에도 영향을 주었던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은 실레에게 인간의 내면세계를 들추는 하나의 열쇠를 제공했을 것이다. 청년화가였던 실레는 당시의 어두운 현실과 위선적인 사회가 씌워놓은 가면을 벗기고자 했다. 삶과 죽음의 투쟁 속에 갇힌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실레는 거울 앞에 선 자아의 모습을 발견했다. 100여 점의 자화상은 거울 앞에 선 뒤틀어진 자아이자 바로 감추어진 인간의 고독한 욕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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