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방사 월인석보木板 道 태무심 때문에 소실”

  • 김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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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3 07:32  |  수정 2019-06-13 07:32  |  발행일 2019-06-13 제8면
민영규 前교수 기록 확인

영주 희방사에 보관됐던 ‘월인석보(月印釋譜) 목판’이 과거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은 당시 공직자들의 무사안일주의가 한몫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연세대박물관이 오는 7월30일까지 여는 기획전 ‘서여 민영규의 1952년 10월, 전쟁 피해 문화재 30일의 기록’에 나온 자료에 당시 희방사 화재의 전말을 가늠케 하는 내용이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거 연세대 교수를 지낸 민영규(1915~2005)는 1952년 10월 경북지역을 돌며 문화재 피해 상황을 조사하던 중 영주군수가 1950년 1월20일 무렵 보낸 월인석보 판본 이관경비 신청 관련 공문을 발견했다. 이 공문에 따르면 영주군수는 풍기면 일대에 소개령이 떨어지자 월인석보를 영주군청으로 이관하겠다면서 경북도에 경비로 10만원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후 희방사는 1951년 1월13일 전쟁 와중에 건물 5동을 소실하고 각종 목판도 불길에 사라졌다고 알려지고 있다. 특히 전시자료 중엔 당시 풍기 영전사 주지가 1952년 당시 임병진 문교사회국장에게 희방사와 순흥면 숙수사지 당간지주 상태가 어떻게 됐느냐고 묻자 “모르겠다” “가보지 않았다”고 한 답변도 있다.

민영규는 “영주군수가 보낸 공문이 물위에 뜨는 부초처럼 경북도청 내를 두루두루 돌아다니다가 결국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다. 그때 비용 10만원이면 당시 시가로 백미 7~8가마 값밖에 되지 않는 돈인데, 그 금액만 있었다면 충분히 안전지대로 옮길 수 있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당시 모 신문 기사를 통해 토로했다고 한다.

향토사학자인 박석홍 전 소수서원 관장은 “당시 소실된 문화재는 월인석보뿐만 아니라 훈민정음 언해본 목판도 있었다”며 “공직자들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소중한 문화재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주=김제덕기자 jedeo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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