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학의 문화읽기] 산책길에도 문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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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4   |  발행일 2019-06-14 제22면   |  수정 2019-06-14
산책길에 좋은 사람 만나면
발걸음은 한결 더 가벼워져
자연을 아끼고 타인을 배려
문화가 있는 산책길이 돼야
작은 것부터 새롭게 실천을
[문무학의 문화읽기] 산책길에도 문화가 있어야 한다

‘생활 문화’란 말을 자주 듣는다. ‘생활이 곧 문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문화가 또 생활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체육계에선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으로 나뉘어져 있던 체육단체를 통합하여 생활 체육 단체를 해체하기도 했는데, 문화에서는 더 많이 쓰이고 있는 듯하다. 사전에서는 ‘생활문화’를 “생활을 소박하고 알뜰하게 문화적, 위생적으로 꾸리는 일”이라고 풀고 있다. 결국 문화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우리 생활 전반에 문화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정치 쪽을 바라보면 언제나 절망뿐이지만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들어서서 그런지 생활 주변에도 문화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중에서도 제주도에서 시작된 올레길이 전국 곳곳마다 조금씩 이름을 달리하여 잘 정비되어 있다. 걸을 만한 곳, 걷고 싶은 길들이 많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길을 이용하는 문화가 아직 그 길만큼 세련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크긴 하지만….

필자는 동구에 살면서 팔공산 둘레길, 단산지, 동화천, 북지장사 동편 계곡을 그날그날 내 사정에 따라 걷는다. 어느 곳이 특별히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 좋다. 서당 마을에서 바람고개까지의 둘레길을 걸어보면 팔공산 공원관리사무소가 참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내리막 심한 길에는 계단을 만들고, 미끄러지기 쉬운 곳엔 멍석을 깔아놓기도 했다. 적당한 거리로 의자를 배치하여 걷다가 숨을 고르며 맑은 공기를 마실 수도 있다.

단산지 역시 잘 정비되어 있다. 단산지를 도는 날엔 미안함을 갖게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주차 관리하는 분이 아주 친절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 좋게 산책길에 들어서면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든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산책길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우면서 걷는 분이다. 자연과 착한 사람의 향기가 어우러져 아름답다. 그런데 최근 단산지 둑에 대형 화분을 쭈욱 늘어놓은 건 이해가 잘 안 된다.

지난 7일 오전에는 동화천을 걸었다. 전날 밤 약간의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려서 도로에 쓰레기들이 많이 널렸다. 그런데 붉은 상의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다리 아래를 지나가면서 보니 얼굴을 아는 동장(洞長)이 함께 쓰레기를 줍고, 비바람에 쓰러진 천변의 풀들을 치우고 있었다. 밤에 비가 와서 출근하자마자 쓰레기봉투 들고 나와 동네 청소하는 모양이었다. 저런 동장도 있는데 공무원 복지부동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되겠다 싶다.

북지장사 동편 계곡엔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데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은 계곡에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으러 거기로 간다. 그 물소리는 귀를 맑혀준다. 시끄러운 물소리가 귀를 씻어주는 특이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산이고, 내고, 저수지고, 계곡이니 좋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산과 내와 저수지와 계곡이 그 주변을 걷는 사람들만큼이나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좋은 길을 좋은 마음으로 걷고 있으면 행복하다.

이런 사람들 만나는 산책길은 흐뭇하다.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호흡이 신선해진다. 자연이 주는 공기도 신선하지만 사람이 일구는 공기도 그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책길에서 이렇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책길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대중음악을 휴대폰에 저장하여 음량을 한껏 높여 들으면서 걷는 사람이다. 자연 속에서까지 저래야 하나 싶지만 취향이니까 어쩔 수 없고, 이어폰이라도 꽂아 들었으면 좋겠다 싶다.

공연장과 전시장에서만 지켜야 할 예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듣고 보는 산책길에도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어쩌면 더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안 지키면 자연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문화가 있는 산책길은 자연을 아끼는 마음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산책길 문화, 작은 것부터 바르게 세워갔으면 좋겠다.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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