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친절하지 않은 행성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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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7 07:48  |  수정 2019-06-17 08:43  |  발행일 2019-06-17 제15면

4주간의 교생실습이 끝났다. 누가 봐도 딱 체육과 교생이었다. 교생 대표 공개수업 발표의 마침종이 울리자 넓은 어깨에 근육질, 검게 탄 얼굴의 건장한 남학생이 흐느끼며 운다. 처음엔 단상의 참관자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고개를 젖혀 들썩이더니 급기야 오른팔 왼팔 번갈아 얼굴을 닦아낸다. 어렸을 적, 여자애들은 얼굴에 양손을 대고 우는 데 비해 남자애들이 팔등으로 얼굴을 닦으며 우는 모습이 좀 우스꽝스러웠다. 딱 그랬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낯선 참관자 때문에 주뼛대다가 순식간에 삥 둘러서 “쌤, 가지 마세요” 하고 눈물바람이다. 심훈의 상록수가 따로 없다. 5월 한 달, 교사인 듯 교사 아닌 교생에게서 관심받고 장난치고 애교 피우던 몇몇 학생들 눈이 빨개졌다.

알고 보니 타 시·도 체육중·고 창던지기 선수 출신이다. 체육특기생으로 들어왔지만 대학시절 내내 엄청난 성실성으로 임용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중·고교 시절 공부와 담을 쌓아 이론 서적의 이해력과 핵심을 파악하는 학습력이 떨어져 몇 배 힘들게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4학년 막바지, 사회로 내몰리는 녹록지 않은 삶을 배운다. 20대 청춘들이 교생실습 동안 이런저런 성장통을 겪는다. 성장에 상처는 불가피하다지만 무너지지 않고 진정한 성장에 이른다는 것,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에너지로 바꾸는 것, 삶의 시야가 넓어지는 경지에 이르는 뜨거운 경험은 험난한 길이다.

20190617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실습 첫 주, 대부분의 교생은 수업참관을 하면서 다음 주 수업준비를 한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엄청 피곤하다. 그러면서도 연신 “선생님, 선생님” 하며 따르는 아이들이 귀엽기만 하다. 둘째 주 실제 수업을 하면서 도무지 마음 같지 않은 뒤죽박죽 수업진행에 정신이 없다. 수업시간 집중하지 못하고 “재미없어요, 모르겠어요”를 연발하는 아이들이 원망스럽다. 담당교사의 수업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다가 셋째 주, 체육대회를 준비하고 함께 뛰면서 아이들의 개성을 조금씩 보게 된다. 이제 아무개가 자신의 수업에 고개를 끄덕이며 옆친구랑 의견을 나눴다는 것이 작은 기적이라는 걸 알게 된다.

촘촘했던 4주차, 마지막 과제를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교직은 자신이 학생 때 보던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 그리고 반복할 수 없던 한 시절이 기어코 끝났다는 사실에 울컥 서러워지는 것이다. 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다. 그러나 교사가 되어야 되는 사람이 교단에 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아프다. 아이들은 마주보며 대화하는 것만으로 힐링되던 5월의 장미 같던 교생을 보내고 ‘내가 너희들 머릿속을 다 꿰뚫고 있어’라며 단 하루 만에 달달한 꿈을 깨는 선생님 덕택(?)에 다시 일상에 복귀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행성은 그리 친절한 곳이 아니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여러 번 그걸 경험했어. 하지만 너를 만나서 이곳은 친절한 곳이 될 수 있었어.” 독일의 성장소설 ‘거인’의 주인공 틸만의 말이다. 그는 뇌하수체 호르몬 이상으로 인해 거인이 된다. 그러면서 평범한 삶을 살고픈 모든 소망이 무너진다. 하루하루 지탱하기 어려운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도 틸만은 마음을 다잡고 상황과 슬픔을 과장하지 않으려 애쓴다. 음악과 독서를 통해 내면을 성찰하며 아름다운 삶의 과정을 밟는다.

오늘의 어려움이 무의미한 좌절이 아닌 성숙의 기제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이 친절하지 못한 행성에서의 삶이 살만 하도록, 우리는 매일 스스로를 다독이고 주변을 챙겨야 한다.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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