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이구아수(Iguazu) 폭포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9-06-21   |  발행일 2019-06-21 제37면   |  수정 2019-06-21
인간 너머의 존재감 ‘악마의 목구멍’
마주하자 영혼까지 빨려 들어가는 듯
20190621
전망 엘리베이터 위에서 조망한 ‘악마의 목구멍’ 전망대.

자연을 대할 때마다 인간이 나누는 구역이 불편하다. 미국과 캐나다에 걸친 나이아가라 폭포, 잠비아와 짐바브웨에 걸친 빅토리아 폭포처럼 이구아수 폭포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국경에 걸쳐 있다. 원래 이곳은 파라과이의 영토였지만 지금은 주요 지역 대부분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영토다. 인간들끼리 싸운 결과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이구아수는 의구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구아수로 가는 길은 멀었다. 오후 2시15분 버스를 탔다. 18시간 거리이니 다음 날 오전 8시가 넘어야 도착할 것이다. 그래도 영화 ‘미션’과 ‘해피 투게더’의 이구아수를 떠올리며 즐거웠다. 이구아수 폭포에서 살아가는 과라니족과 그곳을 지키려는 가브리엘 신부와 멘도자가 떠올랐고, 아휘와 보영이 함께했던 이구아수 여행길과 아휘 홀로 다시 찾아가는 장면이 가슴 아프게 교차되었다. 이러한 생각들이 페이드 아웃될 때쯤 버스 기내식이 나왔다. 정갈한 식판에 와인까지 곁들인 기대 이상의 만찬이었다. 버스에서 밥은 수면제다.

270여개 크고 작은 폭포, 총길이 4㎞
웅장함에 압도되는 아르헨티나 루트
경외감 드는 전경 브라질 루트로 양분

폭포마다 걸린 무지개 비현실적 세상
시속 7㎞ 열차 타고 가로지르는 정글
검은숲 배경 병풍처럼 늘어선 물줄기
강위 이어진 철제다리 걷자 평화로움
자욱한 물보라 피어오르며 거대한 울림
폭포속 세상 경험 보트투어 탄성 절로


20190621
아르헨티나 루트에서 본 ‘악마의 목구멍’.
20190621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아르헨티나 루트의 철제 다리.
20190621
보트 투어.


그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었으면 아침까지 푹 잤을 것이다. 흰머리의 백인 할머니 한 분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옆에서 승무원이 난감한 듯이 달래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그 할머니가 모두 잠든 버스 안에서 계속 큰 소리로 통화를 했단다. 일행 중 한 명이 참다 못하여 소리 좀 줄여달라고 했더니, “내 나라에서 내가 떠드는데, 네가 왜 참견이냐. 너희들이나 빨리 비행기 타고 이 나라를 떠나라”며 저렇게 성질을 부리고 있단다. 남미 여행 36일째 처음 겪는 불쾌함이었다. 적반하장 아닌가. 이곳이 원래 저 할머니의 나라였단 말인가. 이곳 원주민들을 죽이고 자기 땅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원래 자기네것인 양 이구아수를 나눠 가진 그들의 전쟁이 자꾸 되씹힌다. 젊은 나를 감동시켰던 아름다운 영화 ‘미션’이 제국주의 침탈의 슬픈 역사 영화로 다시 읽혔다. 분에 못 이겨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그래도 푸에르토 이구아수의 아침 햇살은 화사했다.

푸에르토 이구아수는 브라질의 포스 두 이구아수와 함께 이구아수 폭포 관광의 거점 도시다. 과라니어로 ‘큰 물’이라는 뜻을 가진 이구아수 폭포는 이구아수 강을 따라 2.7㎞에 걸쳐 270여 개의 크고 작은 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총 길이는 4㎞에 이르며, 우기에는 초당 1만3천t의 물이 쏟아진다. 혹자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를 합친 것보다 더 크다고 하며, 조용한 밤이면 20㎞ 밖까지 폭포의 굉음이 들린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이구아수 폭포를 마주한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 “Poor Niagara!(불쌍하다, 나이아가라여)”라고 했을까. 두 나라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1984년과 1986년에 각각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록되었고, 2011년에는 제주도와 함께 ‘세계7대자연경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구아수 폭포 관광은 브라질 루트와 아르헨티나 루트로 양분된다. 전자는 폭포의 전경을, 후자는 폭포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니, 이틀을 할애하여 두 곳 모두 둘러볼 생각이었다. 나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곧장 이구아수 폭포를 만날 준비를 했다. 물벼락을 맞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여벌의 옷도 챙겼다. 첫날 일정은 브라질 루트이므로 여권도 챙겼다. 터미널에서 노선버스를 탔다. 금방 국경이 나타났다. 다리 난간에 그려 놓은 아르헨티나 국기 문양이 중간부터는 브라질 국기 문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이내 출입국사무소가 나타났다. 남미 여행에서 경험한 가장 짧은 거리의 출입국 수속이었다.

브라질 루트에서 이구아수 폭포를 만나는 방법은 셔틀버스와 산책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호텔 앞에서 내리니 이구아수를 조망할 수 있는 산책로가 펼쳐져 있었다. 산책로로 들어서자 울창한 밀림의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졌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폭포들과 곳곳에 걸린 무지개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날 하루 평생 본 것보다 더 많은 무지개를 보았던 것 같다.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이구아수 폭포는 용암이 분출하여 굳은 바위 위로 흘러내리는 2단 폭포였다. 매년 암석이 깎여 나가서 조금씩 폭포 모습도 변하고 있다니 사람처럼 자연도 늙어가는 것 같았다. 인간이 그 노화를 촉진하는 것이 분명할 게다.

그렇게 1.5㎞쯤 가자 전망대 산책로가 ‘악마의 목구멍’ 앞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이구아수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가까이 갈수록 더욱 거센 바람과 물보라가 나를 밀어내었다. 꾸역꾸역 앞까지 전진하자 화를 내듯이 내 페도라 모자를 휙 하고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물벼락을 안긴다. 예상은 했다. 그러나 내 예상을 뛰어넘는 당혹감과 경외감이 동시에 스쳤다. 나만이 아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제물을 바치고, 세례를 받는다. 인간 너머의 존재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종교적 퍼포먼스 같았다. 모두의 얼굴에는 희열이 넘치고 있었다.

옛날 이곳의 원주민들은 이 폭포의 수호 사신(蛇神) 음보이(M’Boy)에게 매년 마을에서 가장 예쁜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어느 해 제물로 선정된 추장의 딸 나이피와 그녀를 사랑했던 전사 타로바는 이 의식을 거부하고 함께 카누를 타고 도망을 쳤다. 화가 난 사신 음보이가 몸을 비틀며 포효하자 두 사람이 탄 카누는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충격에 땅이 흔들리며 이구아수강 하류의 지면이 갈라져 거대한 골짜기가 형성되었으니, 그것이 이구아수 폭포란다. 그래도 사신은 화가 삭지 않았다. 나이피를 폭포의 낙수를 견뎌야 하는 큰 바위로, 타로바를 그 가장자리에 사는 팔메이라 라는 나무로 만들어 평생 서로 그리워하도록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악마의 목구멍을 향해 애처롭게 가지를 뻗은 저 야자수가 사랑하는 여인을 영원히 바라만 보아야 하는 타로바의 화신이지 싶다. 실제 악마의 목구멍 아래에 거대한 암반이 있다고 하니 그럴듯한 전설이다. 종교가 있든 없든 악마의 목구멍 앞에 서면 인간 너머의 존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다음 날, 아르헨티나 이구아수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졌다. 아르헨티나 루트는 크고 넓을 뿐 아니라 악마의 목구멍을 바로 위에서 볼 수 있다. 이곳은 브라질 루트와 달리 열차로 연결되어 있었다. 시속 7㎞의 느린 속도로 정글을 가로지르는 열차를 타고 첫 폭포 역에 내리면 ‘높은 산책로’와 ‘낮은 산책로’로 이어지는 길이 시작된다. 나는 어제의 감흥 때문에 먼저 악마의 목구멍을 찾았다. 강 위로 길게 이어진 철제다리를 따라 20분 정도 걸었다.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섬뜩한 이름과는 달리 한적하고 여유로운 길이었다. 강물은 유유히 햇살을 튕겨내고 있었고, 아름다운 나무들과 지저귀는 새 소리는 평화로웠다.

어디에 악마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멀리서 자욱한 물보라가 피어올랐다. 가까이 갈수록 꼭 집어 표현하기 어려운 거대한 울림이 높아져갔다. 내가 걸어왔던 길이 사라졌고, 내가 건너왔던 강의 물들도 사라져버렸다. 악마의 목구멍 전망대였다. 벌써 빼곡히 자리를 잡은 관광객들이 저마다의 포즈로 사진을 찍고,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나는 멈칫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소리를 압도하는 상상 밖의 장면에 나의 의식은 형용할 단어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리고 빨려들 듯이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퍼뜩 정신이 든 것은 내 옷자락을 잡는 아내의 손길 때문이었다. 매년 10명이 뛰어든다고 하는데, 이것을 자살이라고 해야 하나? 악마의 목구멍이 저지른 타살일 것이다. 자살하려고 여행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 구멍 속에서 울려나오는 악마의 속삭임이 불러들인 것이 분명할 게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채 다시 ‘높은 산책로’로 이동했다. 총 1.75㎞의 이 산책로는 울창한 숲과 작은 강을 가로질러 만든 철제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곳에서 살토 보세티, 살토 베르나베 멘데스, 살토 비구아 등의 폭포를 만날 수 있었다. 검푸른 숲을 배경으로 하얀 물줄기가 병풍처럼 늘어선 것이 마치 악마의 목구멍을 경배하는 듯했다. 폭포마다 걸린 크고 작은 무지개들이 환영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낮은 산책로’는 이들 폭포를 아래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위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하나하나 나름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계곡을 누비듯이 바위 길을 따라 오르내리노라면 폭포의 전체 모습이 차례로 드러났다. 이곳의 최고 풍경은 바로 옆에서 물보라를 맞으며 올려다보는 살토 보세티의 모습이었다.

20190621

보트 투어를 위해 길게 이어진 나무 계단을 내려갔다. 소지품과 신발을 방수 가방에 집어넣고, 비옷 위에 구명조끼를 걸쳤다. 모두 전투에 나가는 전사처럼 비장하다. 방금 보았던 그 악마의 목구멍 속으로 직접 들어간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속도를 높였다 줄였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보트가 일순 폭포 안으로 돌진했다. 압사시킬 듯한 물줄기가 온몸을 때렸다. 비명인지 웃음인지 모를 괴성이 함께 울려 퍼졌다. 그렇게 몇 번을 폭포 밑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자 우리는 모두 흠뻑 젖었다. 이구아수를 경배하는 마지막 의식은 이렇게 온몸을 적신 후에야 끝이 났다.

영혼을 가져가버리는 폭포라더니, “Do not try to describe it in your voice.(당신의 언어로 묘사하려 애쓰지 마시오)” 폭포 입구에 걸려 있었던 이 문구가 그제야 가슴을 친다.

대구대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