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LP로드] ‘헤븐’ 현종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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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1   |  발행일 2019-06-21 제41면   |  수정 2019-06-21
LP판처럼 돌고돌아 찾은 행복…중장년 희로애락 음악으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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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주년을 맞는 LP카페 헤븐. 현종문 사장은 학창시절부터 DJ 생활을 했고 거기서 벗어나 한때 이벤트회사 사장, 영업용택시 운전기사, 록카페 등을 굴렸지만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삶이 되지 못함을 절감했다. 늦게 만난 아내의 내조 덕분에 다시 LP라이프를 헤븐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오뉴월 불칼 같은 열기가 지열을 달구고 있는 평일 오후의 동대구대로. 두산오거리 조금 못 미쳐 TBC대구방송국 옆에 있는 LP카페 ‘헤븐(Heaven)’. 그늘에 파묻혀 있다. 음지식물 같다. 행인들에겐 보일 듯 말듯, 조금은 수세적 포스를 가진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블라인드에 염직된 스티비 원더, 벽에 스티커 형식으로 부착해놓은 비틀스, 테이블에 찍어놓은 머라이어 캐리, 벽화톤의 밥 말리 등 사장 현종문씨(49)의 폭넓은 음악적 취향을 엿보게 하는 여러 뮤지션이 실내 곳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디스플레이 돼 있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급 LP맨처럼 한 장르 음악만 죽어라 굴착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둑한 카페. 맛이 좋다. 이 어둠은 분명 알칼리 계열이다. ‘착한 어둠’이다. 동굴의 어둠, 빛이 만든 그림자와도 질감이 사뭇 다르다. 막장에서 갓 뜯겨져 나온 석탄의 표면에 얼비치는 ‘암광(暗光)’ 같은 밝은 계열의 어둠이 내게로 전해져 온다. 밤에 흘려 놓고 간 취객의 우울함이 테이블에 조금 눅진하게 묻어 있다. 절벽 앞에서 서성거리는 절망한 자들에겐 저런 류의 어둠이 하나의 ‘위안’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성공적인 LP카페 주인들은 밝음보다 어둠의 강도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건 권리가 아니라 하나의 의무. 덜 어두워도 더 어두워도 안 된다. 카바레, 극장 등의 어둠은 ‘캄캄함’이다. 캄캄함이 아니라 컴컴해야 된다. 캄캄과 컴컴 사이를 감지하지 못하면 이런 업소를 꾸려나갈 자격이 없는 것이다.

◆착한 어둠의 카페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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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카페에서 가장 임팩트를 가진 오브제는 단연 LP를 한데 모아놓은 LP존. 그밖에 인테리어 소품은 ‘파사드’(건물 정면을 치장하는 시그니처 디자인) 구실을 하는 LP음반을 중심으로 헤쳐모여 해야 된다. 너무 자극적 인테리어를 드문드문 장착해 놓으면 정신만 수란하다. 음악감상을 방해한다. 어두컴컴한 실내 조도, 바텐과 한 몸으로 움직이는 LP수납장을 집중적으로 밝히는 조명, 그걸 메이크업하듯 살짝 강조하면 된다. 조금 허전하면 블루, 혹은 레드톤 상호를 네온사인으로 만들어 적당한 벽면에 부착해 놓으면 균형점이 된다. 그럼 흑백 콘트라스트처럼 분위기의 강약이 조절돼 자연스럽게 굴러간다.

현 사장은 자신의 고난이 표정에 쉽게 묻어나는 걸 싫어한다. 원래 ‘삶이 고난’인데 나는 힘들다고 말하는 걸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믿는다. LP로 회귀하기 위해 굴곡진 숱한 길을 빙 돌아왔다. 조금은 귀공자스러움이 묻어나는 그의 첫인상. 삶의 신산스러움이 거의 감지되지 않았다. 그냥 고만고만한 일상의 연장에서 이런 카페를 열었고, 고만고만한 단골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수순의 나날일 것 같았다.

그가 동쪽으로 난 창문을 조금 열자 동대구로를 핥고 지나가던 조금은 후텁지근한 훈풍이 두 사람 사이를 와락 파고든다. 순식간 그의 귀밑머리털이 거칠게 일렁거렸다. 바람과 머리카락 사이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모르긴 해도 그만이 알고 있는 지난 세월의 무게인 것 같았다.


중2 때부터 빠진 음악, 학업은 추락
지존의 대상 록 듀오 ‘에어서플라이’
쉽지 않은 DJ의 삶…점차 내리막길
이벤트회사·택시운전·록카페 좌절
숱한 굴곡의 길 거친후 회귀한 ‘LP’

LP 4천여장 한데 모아 놓은 ‘LP존’
70∼80년 팝·가요, 트로트까지 접수
신청곡 많을땐 테이블 돌아가며 받아
손님 위주 선곡, 피크타임 공연실황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음악에 빠진다. 현재 동구 신광교회 장로로 활동하는 박정도씨가 KBS대구방송총국의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DJ로 활동할 때 유쾌발랄한 그한테 엄청 매료된다. 현씨의 아버지는 북구 대현동에서 독서실을 경영했다. 거기서 공부할 때 책은 시늉으로만 펼쳐놓는다. 아버지의 시선만 사라지면 이어폰을 꽂았다. 그리고 이 방송 저 방송국 음악프로를 야금야금 먹고다녔다.

그는 퀸도 아니고 비틀스도 아니고 1970~80년대 세계적 인기를 얻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남성 소프트 록 음악 듀오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를 지존으로 모셨다. 미국의 전설적 포크 듀오 사이먼 카펑클과 어떻게 다른 가를 분석하기도 했다. 80년대 초 대구엔 코리아, 행복의섬, 포크니, 올림푸스, 녹향, 하이마트 등 정말 어마무시한 음악감상실과 음악다방이 즐비했다. 하지만 10대 초반이었던 그는 거길 맘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삼촌과 함께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신천지가 따로 없었다. 거기가 천국이었다. 특히 블랙홀 같은 DJ박스는 최고의 유혹이었다. 멀티플레이어였던 DJ는 음악도 소개하고 손님에게 걸려온 전화도 연결해주었다. 그도 자연스럽게 DJ를 흉내내기 시작한다.

◆난생 처음 변두리 다방 DJ

음악이 자기 맘의 주인이 되자 공부는 머슴 수준으로 추락해버린다. 성광고 1학년 때 자퇴수순을 밟는다. 불량스러움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음악이 만든 자작극이랄 수 있다. 음악다방 DJ가 되자고 다짐한다. 자전거를 타고 영진전문대 근처를 지나다가 전주에 붙어 있던 ‘견습DJ구함’이란 문구를 보게 된다. 바로 ‘은행다방’ 을 찾아간다. 국악인이었던 사장은 그에게 디제잉 실력을 보여달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주절주절거려봤다. “다른 데서 일해 봤냐”고 사장이 물었다. 그는 얼떨결에 “그렇다”라는 표정을 짓는다. 싹수가 있어 보였던지 그를 채용하게 된다. 하지만 월급은 없었다. 나이도 속이고 들어갔다. 사실 고교 때 교내 방송경험이 있었다. 그게 조금 먹혀든 건지도 모른다.

음악다방 옆에 초강력 음악다방이 있었다. 바로 당시 DJ들한테는 변두리 중에선 최강으로 불렸던 ‘영빈관’이다. 소문을 듣고 거기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부러 들어가 본다. 최강 파워의 한 DJ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바로 김윤동 DJ다. 둘은 금세 친구가 된다. 현 사장의 맘은 자꾸 은행다방에서 영빈관쪽으로 쏠렸다. 사장이 그걸 눈치챈다. 어느 날 그를 불러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종용했다. 그는 영빈관을 선택한다. 당시 월급은 1만5천원 수준. 커피 한 잔이 500원 하던 시절이다.

영빈관 시절, 그는 아마추어와 프로 DJ의 차이를 절감한다. 그로서는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다. 거기서 알게 된 또 한 명의 DJ가 지역에서는 가요평론가 겸 음악프로 진행자로 유명한 권오성씨다.

검정고시에 합격을 했다. 철학을 하고 싶어 경북대 철학과를 노크했지만 낙방했다. DJ생활로는 생계가 되지 않았다. 화폐가 더 필요했다. 동성로 구 런던제과 자리에 있던 의류가게였던 한국의류TOPS 전속 DJ로 채용된다. 그땐 그 언저리에 블랙파워, 빌리진, 체크포인트 등 10~20대를 겨냥한 트렌디 의류점이 성행했다. 음악과 행인을 가게 안으로 불러 들일 수 있는 자극적 멘트를 하는 DJ한테 러브콜을 해댔다. 당시 월급으로 23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DJ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직종이 레크리에이션 강사였다. 이벤트 쪽으로 가기 위해 DJ를 등졌다. 강사 자격증을 따고나서 ‘차돌이벤트’에 입사해 5년간 지역 대학축제 및 동성로축제 등을 대행했다. 남산동 악기사, 그리고 공연기획사 사이를 파고들었다. 자신이 생겨 수성구 파동에 이벤트회사를 차렸다. IMF 외환위기는 회사를 송두리째 집어삼켜 버렸다. 공부를 통해 그 괴로운 시절을 버텼다. 영남이공대 화공과를 나와 가야대 연극영화과에 편입한다. 그때 영화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생계는 늘 허덕거렸다. 영업용 택시 운전사가 된다. 아침에 택시를 몰고 학교로 와서 수업을 하곤 밤새 차를 몰았다. 10시간 이상 몰았다. 영대병원 주차장에서 새벽 손님을 기다리며 토막잠을 잤고 시험공부도 했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다시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들어가 영화제작론을 공부했다.

2002년 대구로 온다. 남구 대명동 계명대 캠퍼스 돌계단 앞에서 ‘야후 365’란 서울 홍대 앞 버전의 록카페를 오픈한다. 하지만 경험부족으로 완전 망하게 된다. 2013년 아내를 만나면서 결국 LP카페가 대안이란 생각을 한다. 이달이 헤븐 7주년이 되는 때다.

◆헤븐 스토리

JBL4344스피커, 매킨토시 7270 앰프가 4천여장의 LP를 품고 있다. 여긴 중장년을 위한 공간이다. 70~80년대 팝송과 가요를 7대 3 비율로 잡는다. 그는 특히 신촌블루스 1집을 엄청 아낀다. 그리고 비틀스의 ‘Abbey Road’ ,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너바나의 ‘Nevermind’, 쿠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Chan Chan’, 들국화 1집 등은 다른 카페보다 헤븐에서 듣는 게 딱이라는 게 현 사장의 귀띔이다.

신청곡 운영방식은 대충 이렇다. 귀에 익은 LP음악을 우선 선곡한다. 최신곡 등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사용한다. 신청곡이 많을 때는 테이블별로 돌아가며 음악을 전해준다. 물론 손님들의 연령대와 분위기를 고려해서 선곡한다. 헤비메탈부터 트로트까지, 원칙적으로 모든 음악을 튼다. 모든 신청곡에는 손님만의 사연과 희로애락이 있기 때문이다. 헤븐만의 고집을 감추려고 한다. 피크 타임 때 공연실황을 영상으로 쏴준다.

잊을 수 없는 손님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LP 음반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한 손님은 자기 음반 30여장을 헤븐에 키핑해 놓고 올 때마다 틀어달라고 부탁한다. 개업 후 얼마 안 되어서 산책 중 첫걸음을 하게 된 중년의 신사가 있었다. 이선희의 ‘인연’을 좋아하는 그는 “헤븐은 지역에서 꼭 필요하다. 내가 손님들 자주 모시고 올 테니 어려워도 문을 닫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런 격려가 바로 헤븐만의 ‘자존감’ 아니겠는가. 수성구 두산동 207-10 (053) 767-1357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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