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쓰리 세컨즈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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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1   |  발행일 2019-06-21 제42면   |  수정 2019-06-21
불가능에 도전장…모두가 숨죽인 ‘3초의 기적’
20190621

“뮌헨 올림픽에서 미국을 꺾겠다.”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소련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가란진(블라디미르 마시코프)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야심찬 목표를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미·소 냉전 시대, 소련 정치권은 그의 폭탄발언에 적잖이 당황한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공개석상에서 선언했으니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할 경우, 소련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은 물론 전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났다.

뮌헨 올림픽 남자 농구 챔피언 일원인 세르게이 벨로프의 책 ‘고잉 버티컬(Going Vertical)’이 원작인 영화 ‘쓰리 세컨즈’는 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손꼽히는 당시 남자 농구 결승전을 다룬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 언젠가 미국도 꺾이는 날이 있을 텐데, 그게 우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들 수술비 마련을 위해 소련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가란진은 당 고위층의 우려와 질책에 이렇게 피력한다. 그는 타국팀과의 경기 경험이 전무한 현 농구팀은 우물안 개구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냉전시대 세계 최강 美 농구팀에 선언한 폭탄발언
미국 아닌 소련팀 응원하게 만드는 색다른 통쾌함


선수 선발과 훈련 과정에서 전임 감독과는 다른 노선을 택한 가란진 감독은 미국 방식을 수용해야만 미국을 이길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소련 농구 대표팀 최초로 미국 전지훈련을 감행한다. 주로 미 고등학교 농구팀을 상대로 박빙의 승부를 펼치지만, 아마추어 길거리 농구팀에 32점차로 패하는 치욕도 맛본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은 모두가 한 팀이라는 동료애가 싹트며 오합지졸에서 최고의 국가대표팀으로 성장한다.

실화를 다룬 이야기지만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순 없다. 정공법에 가까운 스포츠 영화 문법에 충실한 ‘쓰리 세컨즈’는 진부하고 새롭지 않은 이야기 구도지만 묘하게 관객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다. 농구에 관한 한 ‘듣보잡’에 가까웠던 당시 소련 팀이 36년간 우승을 차지한 최강자 미국 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과정이 시종 흥미를 유발하고, 그 안에 담긴 휴머니즘은 이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사실적으로 재현된 경기장과 스크린을 압도하는 스피디하고 감각적인 농구 경기 장면들도 완성도에 힘을 보탰다.

실제 농구 선수를 주요 캐릭터로 캐스팅한 영화는 차별화된 촬영 기법이 더해져 농구 경기가 선사하는 긴장감과 스피디함을 극대화했다. 방점은 심판의 오심으로 인해 다시 얻어낸 기적의 3초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장면이다. 경기 내내 열세를 보인 미국 팀이 의도적으로 반칙을 일삼고 거칠게 경기에 임하는 모습에 관객은 절로 소련 팀을 응원하게 된다. 러닝타임 내내 색다른 통쾌함과 감동이 전해진다.(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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