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문화에 경계선은 없다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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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4   |  발행일 2019-06-24 제30면   |  수정 2019-06-24
[하프타임] 문화에 경계선은 없다
최미애 문화부 기자

지난달 영국 BBC Radio 6의 한 프로그램에서 허스키한 목소리의 한 남자가 약간 어설픈 발음으로 ‘대구’라는 단어를 말했다. Radio 6는 BBC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라디오 방송국으로, 음악이 중심이 되는 채널이다. 난데없이 왜 영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대구가 등장한 걸까.

이 프로그램에서 대구가 언급된 건 대구를 기반으로 한 스케이트 펑크 밴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의 노래 ‘National Police Shit’이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역 밴드의 노래가 영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도 놀랍지만, 이 노래를 소개해준 사람이 더욱 놀랍다. 아까 언급한 허스키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기 팝(Iggy pop)이다. 미국 록밴드 스투지스의 보컬 출신인 이기 팝은 ‘펑크 록의 대부’로 불린다. 그는 방송에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을 ‘한국의 대구 출신 스케이트 펑크 3인조(Skatepunk trio from Daegu city, Korea)’라고 소개하고,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장면을 설명하면서 ‘멋진 비디오(nice video)’라고 했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은 영국의 레이블 댐나블리로부터 받은 한 통의 e메일을 계기로 이 레이블과 계약했고, 해외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북미 최대의 음악축제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4월말부터는 영국 투어 공연도 진행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인도네시아에서 투어 공연을 했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지역 밴드가 있다. 부산을 기반으로 한 밴드 세이수미다. 바다 냄새 물씬 나는 서프 록(Surf rock)을 들려주는 밴드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보다 앞서 댐나블리와 계약했다. 이들은 지난해 영국과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를 도는 5주간의 유럽 투어를 진행했다. 이 같은 투어는 지역 밴드로도 드문 사례지만, 전국적으로 봐도 흔한 일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음악은 빌보드, 피치포크 등 해외 음악 매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엘튼 존이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음악을 집중 소개한 사실도 화제가 됐다.

방탄소년단만 한류의 열풍을 이끄는 건 아니다. 이처럼 지역 뮤지션들도 서울 무대, 전국적인 록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해외 공연까지 하고 있다. 지역 뮤지션이라서 지역에만 머무는 건 옛날 이야기다. 이들에게 소위 ‘성공’하기 위해서 서울로 가는 건 필수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밴드, 대구 밴드를 나누는 건 거의 무의미해졌다.

정치·행정 등의 분야에서는 중앙 집중 현상이 여전하다. 오히려 문화에서는 이 같은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역 뮤지션들이 대구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최근 한 인터뷰 과정에서 전국구가 된 대구 뮤지션들을 보면 ‘대구’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구’라는 딱지표를 인위적으로 붙일 필요는 없다. 이들의 이야기와 노래에서 대구가 느껴지고, 듣는 사람들이 대구를 떠올리면 좋겠다.
최미애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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