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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미학 .8] 일본 사찰 가레산스이(枯山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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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봉규기자
  •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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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모래·이끼로 꾸며놓은 ‘石庭’…500년전 파격 설치미술 보는 듯

일본의 가장 대표적 가레산스이 정원인 교토 료안지 석정. 료안지 방장 건물 앞에 있으며, 서양 사람들로부터‘선(禪) 정원(Zen Garden)’으로 불린다.
일본 사찰을 둘러볼 때 매우 낯설고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 중 하나가 가레산스이(枯山水)라고 하는 정원이다. 석정(石庭)이라고도 한다. 흰 모래(굵은 모래)와 크고 작은 돌, 이끼로 만든 정원이다. 물이나 수목을 사용하지 않고 산수나 바다와 섬 등의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사에는 없는, 일본 사찰에만 있는 가레산스이 정원은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미(美)’를 상징하는 대표적 예로 떠올린다. 특히 일본 선종 사찰에서 많이 만들어지고 발달했다. 중국 선불교와 수묵산수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정원의 양식으로, 일본 정원 문화의 정수로 꼽힌다. 일본 선종 사찰의 이 새로운 정원양식은 무로마치(室町) 시대(1338~1573) 초기에 시작돼 중기에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돌과 모래, 이끼로 자연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석정은 일본의 유명 산사 대부분에서 만날 수 있다. 교토의 유명 고찰인 료안지(龍安寺), 다이토쿠지(大德寺), 닌나지(仁和寺), 난젠지(南禪寺), 도후쿠지(東福寺), 겐닌지(建仁寺), 긴카쿠지(銀閣寺) 등에도 석정이 있다.

일본 선종 사찰은 삼문(三門), 법당, 방장(方丈: 주지 처소 겸 접견실), 고리(庫裏: 종무소), 선당(禪堂), 동사(東司: 화장실), 욕실을 기본 건물로 하는 7당(七堂) 체제를 갖추고 있다. 가레산스이는 방장과 그 비슷한 성격의 건물에 조성돼 있다.

교토 도후쿠지 석정.
中 선불교·수묵산수화 영향받아
물·수목 사용않고 자연풍경 표현
선종사찰 방장 건물 뜰에 조성돼
15세기경 완성 日 정원문화 정수
대부분의 유명산사서 볼 수 있어
료안지 석정 서양에 널리 알려져


◆‘선(禪) 정원(Zen Garden)’으로 불리는 료안지 석정

선종인 임제종 사찰 료안지의 석정이 특히 유명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가레산스이 정원이다. 역사도 매우 오래됐다. 료안지는 1994년에 세계문화유산이 된 사찰이다.

료안지 자리는 원래 귀족 도쿠다이지(德大寺) 가문의 별장이 있었으나, 무로마치 시대에 장군을 보좌하는 관령(管領) 직을 맡은 호소카와 가츠모토(細川勝元, 1430~1473)가 이 땅을 양도받아 1450년에 선사(禪寺)를 창건했다. 가츠모토는 료안지 개산조(開山祖)인 기텐겐쇼(義天玄承, 1393~1462) 선사에 깊이 귀의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치 북송(北宋)의 용안산(龍安山) 도설사(兜率寺)의 종열(從悅) 선사와 재상(宰相) 장상영(張商英)의 깊은 관계와 비슷하다고 해서 사찰 이름이 료안지가 되었다.

료안지는 오닌(應仁)의 난(일본 무로마치 시대 당시 1467년부터 1477년까지 계속된 내란)으로 불탔으나 1499년에 다시 건립되었다. 석정은 그 당시(1500년경) 도쿠호오 젠게츠를 중심으로 한, 뛰어난 선승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석정은 료안지의 방장(方丈) 건물 남쪽 툇마루 앞에 조성돼 있다. 일본 선종 사찰의 방장은 사찰의 조실(祖室) 또는 주지가 거주하는 곳이면서, 회의를 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건물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주지나 방장이 머무는 곳과는 달리 매우 규모가 크고, 주변에는 정원이 조성돼 있다.

료안지 석정은 동서 25m, 남북 10m 넓이의 평평한 장방형 마당에 흰 모래가 깔려 있고, 그 위 곳곳에 크고 작은 돌 15개가 몇 개씩(5개, 2개, 3개, 2개, 3개) 무리지어 놓여 있다. 돌 무리는 이끼 위에 놓여 있다. 흰 모래는 갈퀴 자국으로 돌 무리 주위는 둥글게, 그 외에는 직선으로 가지런히 손질되어 있다. 잔잔한 바다에 떠있는 섬들을 연상시킨다. 15개의 돌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하나는 보이지 않는데, 심안이 열려야 보인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모래와 돌로 만든 500여년 전의 파격적 설치미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절묘한 배치가 매력적이라는 이 돌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료안지 석정은 석정을 둘러싸고 있는 흙담이 또한 유명하다. 이 흙담은 유채 기름을 섞어 반죽한 흙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든 것은 그 강도가 더욱 높아지고 방수성도 향상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담장은 갈색을 기본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기름이 배어 나와 생겨난 것으로 보이는, 자연스러운 얼룩이 곳곳에 있다. 이런 담이 하얀 석정과 어우러져 특별한 맛을 내고 있다.

료안지 석정은 오래 전부터 개성적인 정원으로 알려져 왔지만, 일반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세기 중반부터다. 서양의 작가나 철학자 등이 료안지 석정을 방문해 칭찬한 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대표적 일본 정원이 되었다. 특히 1975년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료안지 석정을 방문해 칭찬하면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료안지 석정을 ‘선(禪) 정원(Zen Garden)’으로 부르며 선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방장 툇마루는 사람들이 편안히 앉아 석정을 바라보며 감상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선종 사찰의 다양한 가레산스이

일본 선종 사찰의 방장 뜰에 왜 이런, 돌과 모래로 만든 산수화 같은 석정을 조성했을까. 우리나라 산사로 치자면 대나무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어놓은 주지실이나 요사채의 마당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석정은 명상을 유도하는, 삼매에 드는데 도움이 되도록 만든 정원이라고 하고, 선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료안지의 석정은 돌과 모래, 이끼로만 조성되었지만, 석정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찰별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타난다. 긴카쿠지의 가레산스이는 돌은 사용하지 않고, 모래로만 산과 물결을 표현하고 있다. 달빛을 감상하기 위한 ‘향월대(向月臺)’라는 이름을 붙인 원추형 산은 후지산을 본뜬 것이라 한다. 다양한 수목들이 있는 주변의 정원과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형태다. 겐닌지나 닌나지, 덴류지, 도후쿠지의 가레산스이처럼 나무를 함께 활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찰의 석정은 보통 방장 건물의 중심 뜰에 조성돼 있다. 방장 건물 주위에는 석정뿐만 아니라 연못을 중심으로 한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 이끼정원 등 다양한 형태의 정원이 조성돼 있다.

일본 특유의 정원 형식인 석정은 들어가지 않고 마루나 방에 앉아서 바라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전각 주위에는 바로 숲이 있는 산과 계곡이 펼쳐지는데, 우리와 달리 굳이 담장 안에 모래와 돌 등으로 정원을 꾸미고 감상할 마루를 따로 만드는 것은 민족성의 차이, 문화의 차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을 초월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 수행 도장인 사찰이어도 그 문화를 벗어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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