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이름을 내려놓으며

  • 조정래
  • |
  • 입력 2019-06-28   |  발행일 2019-06-28 제23면   |  수정 2019-06-28
20190628

4년 전 기명 칼럼을 시작하면서 쓴 첫 편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서 밥을 먹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식존(食存)’은 신성한 것이고 실존보다 우선한다고도 감히 말재주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밥벌이의 방편만이 아닌 순수한 글쓰기를 지향하겠다는 시건방도 떨었다. 이제 모두 내려놓는다. 지금보다 더 좋은 글쓰기를 할 실력도 전망도 없기에. 목적적 글쓰기를 하겠다는 나의 글쓰기 선언이 족쇄가 된 점도 없지 않겠지만 글을 그만 쓰는 순간을 예고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하다. 절곡(切穀)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밥벌이의 지겨움’은 피해갈 수 없겠지만 밥벌이 방편으로써 글은 이제 안 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칼럼을 쓴다는 건 꽤나 이골이 난 지금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얼키설키 초고(草稿)를 써놨다가 교정을 겸한 재고(再稿)를 출력해 머리맡에 두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퇴고(推敲)를 하면서 경우에 따라선 원고를 거의 다시 쓰다시피하며 ‘이대로 나갔다가는 어쩔 뻔 했냐’는 안도와 함께 등줄기에 식은 땀이 나는 아찔한 경험을 한다는 건 정말 아찔하기도 하다.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이만큼 글쓰기를 이어온 것은 언론계 선배, 동료들의 조언과 도움이 요소요소, 시시각각으로 중첩돼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정래 칼럼’이 나만의 작품이 아니라 공동작(共同作·collaboration)이라는 말이다.

뻔한 깜냥에 주저주저하는 피라미 후배에게 기명 칼럼을 쓰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신 여원연 선배님, 고별 칼럼 초고를 쓰는 도중에 ‘오랜 세월 수고가 많았네’란 격려 문자를 보내줘 울컥하게 하신 문승웅 선배님, 그리고 지난 칼럼에 대해 찬사는 물론 냉엄한 비평을 아끼지 않은 영남일보 선배·동료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최고의 독자이자 최대로 글감을 제시해주신 홍종흠 선배님은 현역을 능가하는 공부와 글쓰기로 전범을 보여주셔서 많이 본받을 수 있는 시간과 행운을 누리게 해주셨다. 대구경북 시사종합지 잇츠(it’s)를 발행하며 후배들의 안계를 넓히고 있는 대구경북 언론인 클럽 우정구 회장님과 회원분들의 관심과 격려 또한 과분하기 그지없다. 독자들은 최고의 지지자이자 칼럼의 존재 이유인 건 두말 할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다.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기자로서 기명 칼럼을 쓰는 언론인은 많이 나올수록 좋고 바람직하다. SNS시대, 1인 미디어가 속출하는 환경에서 뉴스가 속보나 해설보다는 심층적 논평에 더 높은 가치를 두게 되는 건 자연스럽다. 정보의 범람, 가짜뉴스까지 판치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진위를 판별하고 논평하는 역할은 칼럼니스트의 소명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이러한 경향에 부응하는 한편 지방분권시대에 걸맞게 지역의 의제를 생산하고 공론화하자면 수도권 일극의 외눈박이들과는 달리 지역기자의 눈은 더 넓고 깊게 열려야 할 터이다. 지역밀착적 가치와 국가 발전이란 균형감을 함께 갖춘 지역 칼럼니스트들의 역할과 비전 제시가 갈수록 크게 기대되는 시점이다.

지난 4년간 읽고 듣고(마시고) 쓰는 일에 집중한 시간들이 30여년의 기자 생활 중 가장 보람되고 행복했다고 이제 말해야 할 때다. 지족하고 안분하며, 관성처럼 스멀거리며 삐져나오는 아쉬움과 미진함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쓸 수 있을 때 쓰지 않는 것 또한 글쓰기가 지향하는 바 자유의지의 발현이자 자본과 권력의 검열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가치라고 본다. 더 이상 글밥을 먹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하는 것은 더 이상 우물쭈물할 시간조차 많이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의 소산이기도 하다. 그동안 든든한 언덕이 돼준 영남일보에 감사하고 후배 영남인들 사랑한다.

이제 여태껏 덕지덕지 쌓아왔던 허명(虛名)을 내려 놓으며 문사적 유약함과 도회에 속박된 변방적 시간, 기웃거림·조바심 등으로 점철된 가식의 더께와도 결별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쓴 글 중에는 주제 넘음이 없지 않았고, 글쓰기의 원동력을 빙자한 분노의 힘이 넘쳐 본의 아니게 생채기를 내고, 지성과 지혜의 부족함이 낯부끄러운 적도 없지 않았음을 반성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에의 열망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 나갈 것인지 궁구하며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칼럼 쓰기를 홀가분하게 마친다.

조정래 논설실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