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거창 갈계리 갈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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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8   |  발행일 2019-06-28 제36면   |  수정 2019-06-28
대단한 기상으로 빼어남 자랑하는 소나무…그 맑은 기운 속 세 개의 정자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거창 갈계리 갈계숲
갈계숲. 소정천의 퇴적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진 하중도에 자연적으로 조성된 숲이다.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명 관광지의 면모를 드러내는 수승대 입구를 지나 한적한 도로를 매끄럽게 오른다. 간간이 스쳐 보이는 계곡의 깊이로 길의 고도를 겉잡는다. 한동안 눈앞은 짙푸른 초록으로 꽁꽁 동여맨 산이다. 그러다 셔츠의 단추를 두엇 풀 듯 면사무소가 나타나고, 치안센터와 마트와 식당들이 깨끗하게 씻긴 듯한 단정한 얼굴을 드러낸다. 북상면 갈계리(葛溪里)다. 은행나무 가로수 뒤로 육중한 맞배지붕을 올린 정려각이 보인다. 그 옆에는 ‘은진임씨(恩津林氏) 세거지’라 새긴 표석이 있다.

골짜기 천변 600년 은진임씨 세거지
학식·효행 뛰어나 자랑…열녀도 많아
초등 벽면 아이들이 그린 마을이야기
대지 가장자리 계류, 타원형 숲은 섬
문인 즐겨 찾아 詩 짓고 풍류 즐긴 곳

숲 들어서자 신선이 노니는 ‘가선정’
아우 기리며 같은해 건립한 ‘도계정’
너른 터 화려한 내부 천장의 ‘병암정’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거창 갈계리 갈계숲
병암 임여남을 기려 지은 병암정. 정자 앞에 첨모당 임운의 추모비가 서 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거창 갈계리 갈계숲
갈계숲을 감싸 흐르는 소정천 혹은 갈천과 천을 가로지르는 청학교.

◆갈계리 은진임씨 세거지

갈계리는 600년간 이어져온 은진임씨 세거지다. 입향조는 의령현감을 지낸 임천년(林千年)으로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더 이상 벼슬에 마음을 두지 않고 이곳으로 들어와 마을을 열었다. 남덕유산에서 북쪽으로 산줄기가 이어져 솟은 무룡산(舞龍山) 중턱이다. 동쪽으로는 930m의 호음산(虎音山)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산줄기가 뻗었다. 서쪽으로는 863m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역시 남북으로 산줄기가 이어진다. 그 두 개의 산줄기 사이로 소정천(蘇井川)이 흐른다. 마을은 골짜기의 천변 땅이다.

임천년의 손자는 임득번(林得蕃)이다. 여러 번 향시(鄕試)에 급제했으나 관직에는 뜻이 없었고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고 전한다. 그의 아들들은 모두 학식과 효행이 뛰어나 마을의 자랑이었는데, 갈천(葛川) 임훈(林薰), 도계(道溪) 임영(林英), 첨모당(瞻慕堂) 임운(林芸)이 그들이다. 마을의 이름 갈계는 임훈의 호인 갈천에서 왔다. 사람들은 마을 서쪽에 솟은 세 봉우리를 갈천, 도계, 첨모당의 봉우리라 했다. 정려각에는 효자비와 열녀비 6기가 나란히 서 있다. 갈천과 첨모당이 생전에 받은 효자비가 2기, 나머지는 후손들의 것이다.

정려각 맞은편에 문방구를 겸하는 대구슈퍼가 있다. 마을 사람들 몇몇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곧 파란 트럭을 몰고 온 사내가 대화에 합류한다. 두런두런 사이가 좋은 마을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슈퍼 앞을 지나 조금 들어가면 북상초등 정문이 나타난다. 꽤 규모가 있는 학교다. 정문 옆 축대 벽에 학교 아이들의 솜씨로 마을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효자를 그린 그림도 있고, 북상면의 여러 문화재를 담은 그림도 있다. 덕분에 이 고장의 개략적인 역사를 한눈에 파악한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거창 갈계리 갈계숲
북상초등. 정문 옆 축벽에 마을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거창 갈계리 갈계숲
갈계리 은진임씨 정려각. 왼쪽에는 세거지 표석이 있고, 오른쪽에는 문중 사료관이 자리한다.

◆산골짜기의 섬

학교의 서쪽 담벼락 아래로 계류가 흐른다. 물길 너머는 숲이다. 청학교(聽鶴橋)를 건너 숲으로 들어간다. 갈계숲이다. 청학교가 세워진 뒤에는 청학림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소나무들이 대단한 기상으로 솟구쳐 있다. 평균 키가 22m, 수령은 200년에서 300년에 이른다. 그 외에도 물오리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9월, 10월에는 붉은 꽃무릇이 땅을 뒤덮는다고 한다.

숲을 이루는 대지는 타원형이다. 폭이 100m, 길이는 300m 정도 된다. 대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계류가 흐르니, 숲은 곧 섬이다. 옛날 골짜기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던 소정천이 갈계리에 이르러 동서로 갈라졌다. 그때 유속이 느려지면서 하천이 품고 있던 암설이 퇴적되어 하중도가 만들어졌다. 갈계숲은 하중도가 육지화되는 단계에서 자연적으로 조성되었다. 갈계리의 소정천은 갈천이라고도 불리며 숲은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갈계숲은 임훈의 형제들과 여러 문인들이 즐겨 찾아와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는 곳이다. 나무들은 각자 편안한 거리를 두고 자라나 저마다의 빼어남을 온전히 드러내는 동시에 밝은 햇살이 숲 구석구석까지 닿게 하고 있다. 그러한 빛 밝음과 수목의 맑은 기운 속에 세 개의 정자가 자리한다. 가선정(駕仙亭), 도계정(道溪亭), 병암정(屛巖亭)이다.

◆은사의 정원

숲에 들어 가장 먼저 보이는 정자가 ‘신선이 노니는 정자’, 가선정이다. 임훈을 기려 후손들이 1934년에 건립했다. 정면 2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올린 누각으로 웅장한 멋이 있다. 임훈의 ‘갈천집’에 가선정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생존 당시에도 정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훈은 조선 명종 때 6현신(六賢臣)의 한 사람이다. 온 나라의 선비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현인 여섯 사람 중 하나였다는 얘기다. 효성이 지극했으며 관직에 몸담은 시간보다 관직을 거절한 횟수가 더 많았다. 사람들은 그를 은일의 선비, 갈천 선생이라 일컬었다.

가선정 옆에 도계정이 있다. 임훈의 아우인 도계 임영을 기리는 것으로 가선정과 같은 해에 건립했다. 임영은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효가 깊었고 해동의 안자라 할 정도로 학식이 뛰어났으나 31세 요절했다. 정자 뒤쪽에 임영의 재실인 경모재(敬慕齋)가 딸려 있다. 병암정은 도계정에서 조금 떨어진 북쪽에 위치한다. 빛 잘 드는 너른 터다. 병암정은 임운의 증손인 병암(屛巖) 임여남(林汝枏)을 기려 지은 정자다. 임여남은 일찍이 자연에 뜻을 두고 마을 서쪽 시냇가의 병풍 같은 바위를 병암이라 이름 짓고 노닐다가 자신의 호도 병암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유허지에 후손들이 병암정사를 짓고 강학처로 삼았으나 1868년에 불타 없어졌다. 이후 1909년 갈계숲에 ‘병암정’이라 이름하고 중창했다. 정면 1칸·측면 1칸의 작은 정자지만 내부 천장의 화려함은 깜짝 놀랄 정도다. 병암정 앞에 2017년에 세운 엄청나게 큰 첨모당추모비가 있다. 첨모당 임운은 정여창(鄭汝昌)과 퇴계의 문하에서 수학한 학자로 대제학을 거쳐 가선대부를 지냈다.

병암정 중건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산이 돌고 구불구불 구부러져 신선과 신령이 아껴서 감추어 둔 비경을 감쌌으니 참으로 덕 있는 사람이 허용할 곳이요, 은거한 선비가 노닐만 한 곳이다.’ 갈계숲의 본래 이름은 ‘은사(隱士)의 정원’을 이르는 ‘임정(林停)’이었다고 한다. 은사란 갈천을 이르는 이름이었지만, 이 섬과 마음으로부터의 조화를 찾은 모든 이들이 곧 은사였을 것이다. 어떤 땅, 어떤 공간의 준동이 자신의 맥박과 조화를 이루는 어떤 장소를 만나는 것, 한 사람의 얼마 안 되는 일생에 있어서 얼마나 행운인 일인가. 이 먼 타인의 섬을 거니는 동안 내 머리는 분주히 ‘나의 정원’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여행정보

12번 광주대구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거창IC로 나간다. 갈계숲에 대한 이정표는 친절하지 않으니 수승대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거창읍내에서 거함대로를 타고 함양방향으로 가다 지동삼거리에서 마리면으로 빠져나가 37번 지방도를 타고 북향, 장풍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수승대로 가면 된다. 수승대 정문 지나 계속 직진하면 북상면 갈계마을이다. 정려각과 대구슈퍼 앞에서 좌회전해 들어가 북상초등 앞에 주차하면 된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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