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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커피 로스터 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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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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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3대 커피명인에 터득한 ‘과학의 산물’…정밀하고 기품있는 ‘핸드드립’

건축사에서 커피 로스터로 변신한 이병규 ‘커피클럽’ 대표. 일본 1세대 커피명인의 족적을 좇으면서 자기만의 커피과학을 터득한 그는 2009년부터 게이샤 커피나무를 키우고 있으며 매년 꽃과 열매를 수확해 단골과 나누고 있다. 4년전 포항에서 대구 중구 남산동으로 이전을 했다.
이병규 대표는 일본 커피명인 중 한 명인 고(故) 모리미투 무네오의 인생이 담긴 커피이야기를 ‘차와 문화’라는 차 전문 잡지에 소개했다. 이 대표는 다음해 그를 방문해 이 잡지를 전달하면서 기념촬영을 했다.
대구 중구 남산동 언덕배기 골목, 거기에 숨은 듯 피어 있는 ‘커피클럽’ 이병규 대표(63). 그의 가게 앞에 뜻밖의 커피나무 하나가 귀태(貴態)를 발산하고 있다. 이 대표는 문익점이 목화 씨앗을 품고 귀국한 것처럼 2008년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게이샤’ 씨앗을 갖고 들어왔다. 2009년부터 키우기 시작했고 4년 만에 첫 꽃을 보게 된다. 4년 전까지 그는 포항에서 핸드드립 커피전문점을 운영했다. 그 때 온실에서 30여종의 커피나무를 키웠다. 15년간의 커피나무 키우기, 그 내공 덕분에 국내에서는 드물게 게이샤에서 꽃과 씨앗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혼자만 갖고 놀면 무슨 낙인가. 그는 그걸 기꺼이 단골과 나누었다. 게이샤 꽃은 건조해 냉동보관하며 단골에게 꽃차로 낸다. 커피와 차를 동시에 만끽하는 셈이다.

세계 커피 인프라 포진 日 전역 여행
71년째 카페 지키는 이치로씨와 만남

건축사서 남산동 뒷골목 로스터 변신
분위기 맞는 찻잔 단골에게 내밀어
세계 최고 명예 등극 ‘게이샤’만 판매
한잔 제대로 먹으면 2만∼3만원 가격
콩 10g 갈고 드립 150㏄ 1인분 추출

12년전 일본서 만난 또 한명의 고수
전자현미경 이용 커피세포 관점 파악
알려지지 않은 것 포함 2천여종 성분


◆120여 차례 일본 커피여행

이병규 대표의 핸드드립 손길은 정밀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이병규 대표의 배합비율로 만들어낸 유기농 와플.
2019년 입찰용 게이샤 샘플 박스.

만개한 게이샤 커피꽃의 신비스러운 자태. 이병규 대표는 이 꽃을 차로 만들어 단골과 나누는 걸 즐거움으로 알고 살아간다.
1995년부터 로스터의 삶을 시작하기 전. 그는 많이 보고 느끼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커피인프라가 포진된 일본 전역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자기만의 커피여행을 두껍게 쌓아 나간다. 지금까지 얼추 120번 정도 일본을 다녀왔다.

그 와중에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일본 3대 커피 명인 중 한 명인 ‘세키구치 이치로’(1914년~)를 만나게 된다. 그 장인은 올해로 105세. 아직도 총각으로 도쿄 긴자의 뒷골목에 있는 ‘카페 드 란브르’를 71년째 지키고 있다. 란브르는 그만의 커피성지인 셈. 그는 한국의 커피문화에 정체불명의 감정적 억측과 비약적 주장이 난무하는 걸 무척 안타깝게 여긴다. 커피를 하나의 문화로 두리뭉실하게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커피가 바로 과학의 산물’이란 걸 가능한 많은 이와 공유하고 싶어한다.

그의 사부나 다름없는 세키구치가 30세 되던 1940년대 어느 날, 그가 도쿄의 커피고수들 앞에서 충격적 주장을 하게 된다. ‘미국은 보스턴 차 사건 이후 홍차 대용으로 커피를 마시기 때문에 커피가 진하지 않다. 이제부터 우리 스스로 커피를 볶지 않으면 뒤처질 것이다. 내가 볶은 커피는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단맛이 살아있어 맛있게 마실 수 있다’고.

하지만 당시 일본 커피는 저급했다. 설탕 없이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쓴맛 일색이었다. 원두커피가 보편화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커피사상 처음으로 인스턴트 커피문화 차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핸드드립 스페셜티의 신지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상당수 한국 커피맨들은 당시 일본과 비슷한 강배전 된 탄 커피맛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동네 주민들에겐 그의 커피클럽은 낯설고 좀 불량스럽다. 그 역시 ‘이방인’ 같은 존재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는 왜 달동네 같은 후미진 언저리에 하이엔드 커피클럽을 차렸을까. “아직 공부 중이라 감히 커피 관련 책 한 권 출간 못 한다”는 괴짜 같은 이 사내의 커피를 만나기 위해 지난주 두 번 그의 클럽을 노크했다.

◆남산동 뒷골목에 닻을 내린 커피 이방인

그는 아주 유쾌하고 패셔너블했다. 가끔 쏟아내는 미소는 무척 청량감 넘쳐 보인다. 배려 깊은 매너까지 겸비했다. 그래서 그의 자신감과 낙천주의는 더욱 매력적이다. 빨간 커피잔이 수놓인 헌팅캡, 로마 남성들의 일상복인 토가 스타일의 박스형 라운드 셔츠. 넥타이처럼 목을 휘감고 있는 폭이 좁은 머플러…. 하체라인을 그대로 드러내는 스키니진은 발가락이 훤히 드러나는 샌들 때문에 더욱 육감적이다. 커피의 절정감을 선사하려는 그만의 패션전략처럼 보였다.

그는 틈만 나면 유튜브 뮤직투어를 즐긴다. 스페셜한 뮤직이 있으면 즉시 파일업시켜 놓는다. 단골의 취향을 저격한다. 실황모드로 감상할 수 있게 대형 벽걸이 모니터도 부착해 놓았다. 테이블 한 쪽엔 커피콩을 투박하게 갈 수 있는 맷돌이 놓여 있다. 주물로 만든 자그마한 쇠절구도 보인다. 커피를 다양한 형태로 분쇄해보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머그잔이 딱인 아메리카노족에겐 다소 생소한 공간이다. 한·중·일·러, 그리고 다수의 유럽형 찻잔을 보유하고 있다. 그날 분위기에 맞는 찻잔을 골라 단골에게 내민다. 기자에겐 암청색 아리타 커피잔이 주어졌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했던가. 주인이 실력과 내공을 겸비하면 고수급 단골은 저절로 형성된다. 지역의 1세대 건축가 중 한 사람인 박재봉도 틈만 나면 들른다. 이 대표가 건축사 출신이라서 더 큰 공감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척 낯을 가리는 이성복 시인도 제자의 소개로 여기에 왔다. 그의 커피에 느낀 바가 있어 직접 사인한 책을 주고 갔다.

기자가 찾은 날 제주도에 사는 한 명상인이 두 명의 도반과 함께 2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다 떠났다. 그 단골은 이 대표가 냉동고에 넣어 둔 시골빵을 어떻게 알았던지 자기한테 달라고 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넘겨주었다. 단골은 조만간 맛있는 제주감자 한 박스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덧붙여 그도 잼을 만들고 싶으니 괜찮은 감귤이 생기면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정도면 손님이 아니라 ‘가족’ 같다.

여기선 가격을 따지지 않는 게 불문율. 메뉴판도 없다. 커피 한 잔 가격이 2만원. 기분 좋으면 10만원도 준다. 정해진 수순이 없다. 그냥 주인의 생각대로 돌아간다. 뜨내기 손님은 솔직히 좌불안석. 그래서 그런지 손님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골수파 단골은 ‘윤년(閏年)’처럼 찾아 든다. 한 사람도 오지 않는 날도 있다. 그는 그때마다 세월하고 장난치며 혼자 논다.

그의 현재 몸 상태는 그다지 안녕하지 못하다. 요양 차원에서 절해고도 같은 커피공방에 스스로를 가둬 둔 것이다. 돈을 목적으로 한 가게가 아닌 것 같다. 일종의 커피를 매개로 한 ‘성소(聖所)’ 같다고 할까. 매일 일정한 양의 커피를 로스팅하는 걸 운명으로 안다. 건축사 자격증이 있어 1년에 한 채 정도는 자신이 개입해 집을 짓는다. 돈이 돌면 옥션에 참여해 메이저급 콩을 산다.

그는 오직 ‘게이샤’만 판다. 게이샤. 일본 기생 이름이 아니다. 원산지인 에티오피아 서남쪽 카파의 숲인 ‘겟차(Gecha)’ 영어식 발음이 게이샤다. 케냐 탄자니아와 코스타리카를 거쳐 ‘파나마 게이샤’란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세계 3대 커피라 불리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안 코나, 예멘 모카를 제치고 2008년쯤 국내 마니아 사이에 세계 최고 커피라는 명예를 얻었다. 한 잔 제대로 먹으려면 2만~3만원을 각오해야 된다.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선 그런 원칙을 지키지 못한다. 올해도 게이샤를 선매했다. 올해 15개 게이샤 샘플을 다 커핑해 봤다. 괜찮다 싶은 ‘ES-W-4’ 품종을 선택했다. 해마다 물성이 달라지니 구매할 커피도 달라진다. 올해는 50파운드짜리 3박스를 선매했다. 통관세·운송료 등을 합치면 얼추 1㎏에 50만원선이다.

게이샤는 2008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1인분에 맞는 10g의 콩, 그걸 갈고 드립해 150㏄를 추출한다. 커피가 과학이니 정밀한 측정은 필수. 그가 160년 된 투박한 미제 수동 저울을 보여준다. 전자저울보다 더 정확하단다. 0.001g부터 100g짜리 분동 세트가 있는 박스를 보여준다. 그걸 저울질해서 맞는 양을 골라낸다. 그동안 로스팅 일지를 노트에 적어왔다. 15년 전부터는 컴퓨터를 이용해 자동기록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서 태어나 전북 전주에서 성장했다. 대학에선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주택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그때 대구 남구 대명동 외인아파트 건축 등에 관여했다. 그리고 부산 남천동 삼익주택, 이어 1982~83년 포항제철에 스카우트된다. 세계 각처로 출장 다니면서 다양한 커피문화를 접하게 된다. 95년 포항 죽도동에 설계사무소를 개소한다. 사무실 한 쪽에 후지로얄 머신을 설치했다. 직원이 퇴근하고 나면 콩을 볶았다. 커피근육이 생기던 17년 전, 포항시청 근처에서 핸드드립 전문 ‘커피 아뜨리에’를 오픈한다. 다방커피시대 때 원두커피를 내밀었다. 포스텍 교수, 의사 등이 단골이었다. 당시 한 잔 5천~6천원의 블루마운틴을 팔았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커피의 화학적 물성을 알지 못했다.

◆커피의 물성 탐구

12년 전 일본에서 또 한 명의 고수를 만나게 된다. 일본 가나자와대의 히로세 유키오 교수였다. 그는 계산 역학을 전공한 공학박사로 커피 마니아였다. 세키구치에 이어 두 번째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인물이다.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미시적 관점에서 커피를 바라본 히로세 교수의 발상이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커피를 세포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비가시적인 관념에 머물러 있던 커피의 맛과 향기가 가시적 대상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히로세 교수의 연구방법을 참고해서 전문가용 고배율 현미경을 구입한다.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현미경 속에 나타난 커피세포의 이미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세포구조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세포 덩어리가 아니었다. 커피는 세포벽으로 둘러싸인 ‘허니콤(Honeycomb)’ 구조 속에 들어있는 세포물질이었다. 허니컴 구조의 크기는 대략 0.02~0.09㎜. 이 속에 숨어 있는 커피물질의 주요성분은 단백질·카페인·지질·당질·셀루로스·섬유질·클로로겐산 등으로, 이제까지 밝혀진 종류만 해도 800여종 이상이다. 그런데 커피학자들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성분이 더 있어서 2천여종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질이 추출과정을 거쳐서 커피가 된다. 안다고 하지만 더 모르는 게 커피의 세상이다. 고수란 항상 모름을 전제로 앎의 영역으로 긴 여행을 하는 자이다. 그는 커피로 돈을 번 사람과 기업들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당신들이 양심이 있고 우리의 커피문화를 사랑한다면 이처럼 좋아진 사회적 인프라를 그냥 돈벌이로 이용하지만 말라고. 대구 중구 남산로 3길 46. 010-3534-5334

글·사진=이춘호 음식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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