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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육] 그리우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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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부기자
  •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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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장맛비가 쏟아져 운동장 가장자리 배수로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느티나무 잎사귀에 검은 혹이 또독또독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잎에는 두어 개, 어떤 잎은 열 개가 넘었다. 열 그루 남짓 되는 어린 느티나무 모두 그랬다. 5월 초에 방제했는데 이렇듯 징그러운 병이 들다니. 얼른 사진을 찍어 대구수목원에 질의를 하고, 방제업체도 보냈다. 그것은 외줄면충의 벌레혹이었다. 느티나무의 수액을 먹는 진딧물이 만든 따개비집인 셈이다. 업체 대표에게 따졌더니 그때는 발견하지 못해 일반적인 적성병, 응애단 등의 약을 살포했다는 것이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약을 쳐 달라고 했더니 지금은 벌레가 한 마리도 들어있지 않아 약을 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내년 사월 초가 적기란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이들의 생태가 놀라웠다. 느티나무 잎사귀가 연둣빛 생명력으로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바로 그 사월 초, 이파리 뒤에 붙어 엄청나게 흡즙을 한다. 수액을 빼앗긴 잎이 오목하게 말리면 표주박 모양의 혹을 만든다. 한껏 비대해진 혹 안에서 약충을 낳고 이 2세대는 네 번이나 탈피하여 마침내 날개를 단 성충이 된다. 오월 말에 이르면 ‘그렇지, 여름은 대나무지. 우후죽순이란 말이 왜 생겼겠어.’ 이들은 여름에 가장 수액을 화끈하게 끌어올리는 인근 대나무 숲으로 대대적인 이주를 하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대나무에서 태어난 약충은 무더운 여름내 대나무 밑둥치에서 맘껏 영양분을 섭취하고는 날개를 단 성충이 되어 시월 중하순에 당당하게 느티나무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제 초록이 사라진 늦가을, 이들은 교미 후 체내에 알을 품은 상태로 나무껍질에서 죽는다. 몸 자체가 비닐하우스가 되어 겨울 동안 찬바람을 막아주고는 봄바람이 불면 바스라진다. 눈부신 사월 초, 깨어난 약충은 스멀스멀 서너 번째 가지에 올라가 맘껏 다시 착즙을 시작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변화, 진화하면서 자기 자리를 확실하게 거머쥐는 이들의 생존전략을 보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를 본다. 대안학교 위탁교육을 받고 있는 현이가 기말고사를 치기 위해 학교 위클래스에 왔다. 시험 예비종이 울릴 때 오더니, 마침종 5분 일찍 나가겠다고 한다. 쏟아지는 아이들과 마주치기 싫다는 이유다. 귀여운 얼굴에 조심스러운 표정인데, 야단맞은 아기 고양이마냥 벽면에 거의 붙어서 나간다. 극도로 예민한 성격에 감정변화가 심하지만 자신의 특성이 그다지 문제되지 않은 곳에서는 밝고 예술적 감성도 발휘한다. 현재를 살아내기 위해 잠시 거처를 옮긴 것이다. 학교에 오지 않는 것은 열다섯 살이 감당하기 어려운 삶이다. 회피로만 볼 게 아니다. 외줄면충처럼 치열한 생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힘들고 남다른 경험에서 삶을 재구성하는 창조적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다. 구체적으로 학업과 여러 친구들, 가정환경, 부모님의 문제 등을 여러 대비적 관점을 동원해 분석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색채, 감각, 자연물 등 이질적인 다양한 언어의 층위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다음 합리적으로 객관화하는 단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수용해야 할 것과 의지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을 구분시킬 수만 있어도 살아가는 것이 훨씬 단순해질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편집의 차원, 시선의 높이가 중요한 시대다. 누구처럼 되는 게 아니라 나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우면 되리라. 절실함…, 그게 약자가 강자가 되는 길이다.

목백일홍 환하게 핀 교정에 서면 헤르만 헤세의 고백처럼 ‘무엇이 화려하고 과장되고 오만한 것인지, 무엇이 즐거우면서 신선하며, 창조적인지 분명하게’ 알게 된다. 하늘과 햇빛과 바람이 쏟아진다.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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