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불편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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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08   |  발행일 2019-07-08 제30면   |  수정 2019-07-08
한국처럼 비정규직이 많고
차별이 심각한 나라는 없어
노동시장의 공정성 측면과
효율적 인력활용의 시각서
완전하게 새로운 판을 짜야
[아침을 열며] 불편해도 괜찮아요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지난주 사흘간 학교 비정규직 파업 때문에 학교 급식이 중단되는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5만 노동자의 집회가 열렸다. 학교 급식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보수 언론은 혼란, 차질을 강조한 반면 진보 언론은 “불편해도 괜찮아요”라는 파업 지지 움직임을 부각했다. 학교 급식 파업은 분명 처음 보는 대사건이지만 심각한 학교 비정규직 차별에 항의하는 파업에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어린이와 어른들의 행동 역시 우리나라에서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다.

특히 초등학교 학생들이 파업하는 급식 노동자에게 쥐어준 응원 쪽지는 파업 노동자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며,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우리의 시민의식도 어느새 상당히 성숙해서 이제 선진국이 돼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파업 노동자에 대해 시민들이 당장 불편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당신과 같은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대해준 것은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 표현이다.

문재인정부는 국정 철학을 ‘사람 중심의 경제’로 정했고 대통령의 취임 후 첫 행선지는 인천공항이었다. 대통령이 비정규직의 온상 인천공항을 첫 방문지로 삼은 것은 비정규직 해소를 1호 국정과제로 삼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 뒤 85만명의 비정규직을 가진 각종 공공기관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나섰고, 현재 계약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거나 직접 고용하는 등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뒤 민간 부문인 파리바게뜨 회사에서 대규모 비정규직 문제가 터졌고, 몇 달간의 줄다리기 끝에 대체로 비정규직을 특수목적 자회사 채용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 해법은 비정규직을 어느 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신분을 바꾸기 때문에 일단 비정규직 감소이긴 하나 여전히 본회사 소속이 아니고, 정체불명의 타회사 소속이므로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잘해야 절반의 성공이라고나 할까.

비정규직 확산은 세계적 추세임에 틀림없으나 우리나라만큼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나라는 없다. 한국의 비정규직은 방대성, 악성, 차별성이란 특징을 갖는다. 즉 한국만큼 비정규직이 많은 나라가 없고, 한국만큼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나라가 없으며, 한국만큼 비정규직의 성격 자체가 악성인 나라도 없다. 다른 나라의 비정규직은 파트 타임 등 노사가 함께 원하는 양성의 비정규직이 많으므로 크게 문제될 게 없다. 그에 반해 한국의 비정규직은 상당 부분 당연히 정규직이 돼야 하는데, 이런 저런 명목의 비정규직으로 규정해서 임금, 사회보험, 신분 등에서 온갖 차별을 가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남용으로 회사는 인건비 절약이란 이득을 얻지만 그 바람에 나라가 두 조각 나버렸다. 비정규직 남용이 도를 넘어 사람을 성냥개비처럼 쓰고 버린다. 비정규직은 이 직장 저 직장 떠돌아다니는 부평초다. 비정규직은 부평초이므로 곧 떠날 회사의 기술을 배울 이유가 없고, 그래서 비정규직은 노동자 숙련형성에 결정적 장애가 된다. 인건비 절감이란 매력은 숙련형성 방해라는 부작용으로 상쇄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공정경제도 소득주도성장도 불가능하다. 문재인정부가 ‘사람 중심 경제’를 목표로 내건 것은 지극히 옳은 방향이다. 문제는 속도와 방법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너무 속도가 느리고, 무기계약직 전환이라는 형식적 개선에 그친 경우가 많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학교 비정규직 파업을 정규직 교사들이 강건너 불보듯 하는 것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나라를 좀먹는 비정규직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와 정면승부를 벌여야 한다. 노동시장의 공정성 측면에서, 그리고 국가경쟁력을 살릴 효율적 인력 활용이란 관점에서 완전히 새 판을 짜야 한다. 이 문제를 놓고 한시 빨리 사회적 대타협을 도출하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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