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시행 앞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혼란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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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0 07:05  |  수정 2019-07-10 10:40  |  발행일 2019-07-10 제2면
괴롭힘의 범위 주관적·애매모호
매뉴얼 적용 당분간 경직 불가피
법적 조치보다 조직문화 개선 강조
20190710

“이제 점심 먹으러 같이 가자는 말도 함부로 못할 것 같습니다.” 대구상공회의소 한 간부의 하소연이다. 오는 16일부터 시행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직장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어 걱정이 태산이다. 대구상의는 9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대구상의 한 간부는 “괴롭힘의 정의가 너무 주관적이고 애매모호하다”고 말했다.

법에서 내린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너무 포괄적이다. 고용노동부는 ‘여러 직원들 앞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 ‘의사와 상관 없이 음주·흡연·회식 참여 강요’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을 퍼뜨림’ ‘특정 근로자가 일하거나 휴식하는 모습만을 지나치게 감시’ 등을 예시로 제시했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을 적용하더라도 당분간 현장에선 혼란이 불가피하다.

대구지역 한 기업 간부는 “괴롭힘 금지법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법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감정이 우선이다. 어떤 직원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느낀다면 법을 위반하는 꼴이 된다”고 걱정했다. 그는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말할 때도 강요로 비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또 깜빡하고 한 직원에게 말을 하지 않고 나머지 직원들끼리 밥을 먹으러 나가도 문제다. ‘왕따’를 당했다고 신고하면 결국 법 위반”이라고 했다.

실제 국내 기업의 절반 정도가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하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300개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법 시행에 따른 애로사항에 대해 ‘괴롭힘 행위에 대한 모호한 정의’라는 응답이 45.5%로 가장 많았다.

직장 내 혼란으로 ‘조직 문화’가 경직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말을 잘못해 자칫 징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직 내 소통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구의 또다른 기업 간부는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업무로만 얘기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조직 활성화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해선 법적인 조치보다 조직 문화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구상의 관계자는 “법을 위반했다고 신고하는 순간 조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직장 내 구성원들이 법보다 사회통념을 염두에 두고 좋은 기업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조진범기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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