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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도서관서 ‘1만7천778일 미용사 외길’ 들으며 인생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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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임이 시민기자
  • 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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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성가족재단‘사람책’행사

신매동 미용실 운영 정원심씨 강의

청중“어른들 삶 이해하는 데 도움”

지난 2일 대구여성가족재단에서 열린 정원심 미용사의 사람책 강의를 참석자들이 듣고 있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은 올해 7명의 사람책을 선정해 매달 첫째 주 화요일 재단 내 ‘돋움’도서관에서 사람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 책은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베겔이 2000년 덴마크에서 선보인 이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육성으로 들려주어 사람과 책, 구독자를 연결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것처럼 사람책을 빌려 여러 명의 구독자가 함께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지난 2일 ‘돋움’도서관에서는 수성구 신매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정원심 미용사(여·73)의 가슴 따뜻한 사람책 강의가 열렸다.

정씨는 1946년 전라도 장흥읍에서 태어나 17세에 한복 바느질과 양재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19세가 되었을 때 부모님이 결혼시키려 하자 미싱을 들고 나와 그 길로 미용기술을 배웠다.

“그 당시에 쌀 한 가마니가 8천원이었지예. 미싱 한 대는 6만5천원이었고요. 미싱을 팔아서 그걸로 방세 내고 미용학원도 속성으로 배웠지예”라며 그 계기로 미용의 길로 들어가게 됐다.

기술을 배우고 1년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간 정씨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탄광촌으로 갔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2년만 살고 대구로 왔다.

정씨는 벽돌공장에 취업해 5년을 고생하고 1973년에 미용실을 차렸다.

“미용실 이름은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김머리방’으로 지었지예. 옛날에는 전화번호부라는 책이 있었는데 거기 보면 김씨, 이씨, 박씨 성이 제일 많았거든요. 차 타고 가다 보면 간판에 내 성씨가 보이면 기분이 좋잖아요. 그래서 남편 성씨를 붙여 지은 거라예”라며 장사가 최고로 잘되라고 그렇게 지었다고 정씨는 전했다.

명절이 되면 독한 파마 약 때문에 뼈가 드러나는 손가락을 고무줄로 감아 신경을 죽여 가며 명절음식까지 준비해야 했다.

막내아들이 1985년에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나자, 아들을 화장하고 나오면서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을 살까 생각하다 “봉사를 하자”라는 마음을 먹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용실에 오는 어른들 머리 커트는 공짜로 하고 있다. 파마 값도 2만원 남짓 정도로 저렴하다.

나옥흠씨(여·63)는 “파란만장한 인생살이에서 나누고 베푸는 삶에 감동을 받았다”며 “1만7천778일 동안 미용사의 한길을 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선애씨(여·50)는 “우리 엄마 인생을 듣는 것 같았다. 그 시대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와 마음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며 “인생 선배 이야기에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용실이 인생 학교 같아예. 손님들과 감자도 삶아 먹으며 이런 저런 삶의 이야기도 나누니 말입니다. 수영도 배우고 취미로 고전무용도 25년 동안 했네요. 사람들 만나는 게 그저 즐겁지예.”

정씨는 “미용실을 그만둘까봐 제일 무섭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글·사진=채임이 시민기자 chaeime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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