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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세상보기] 세월의 변화 속 장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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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홍명 시민기자
  • 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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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임 회원의 부친 부고를 접하고 조문을 갔다. 우리 집안 경조사에 빠짐없이 참석을 했던 분이라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빈소를 찾았던 것이다.

다음 날이 발인인지라 밤 11시가 넘어 갔더니 조문객은 거의 없고, 빈소는 상주 한 명이 지키고 있었다. 다들 어디 가셨냐고 물으니 주무신단다. ‘내가 너무 늦게 왔구나’하는 생각에 얼른 조문을 하고 돌아서는 순간, 회원과 부인이 황급히 빈소에 나타났다.

“제가 너무 늦게 왔나봅니다. 볼일을 보다가 시간을 놓쳤습니다.” “아닙니다. 너무 피곤해 눈 좀 붙인다는 게 그만…. 죄송합니다”. 상주는 겸연쩍어했다.

장례식장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생수 한 병을 청하고, 잠시 고인의 평소 생활과 임종시 상황을 상세하게 들었다. 연세가 아흔이란다. 내일 발인 후 장례식이 끝나면 탈상까지 한단다. 삼우제는 형제끼리 하지 않는 걸로 결정지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황급히 자리를 떠나왔다. 너무 늦은 시간 조문이라 미안하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나의 부모님 장례식에는 어떻게 예를 다하였던가. 이미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우리네 인생살이를 여행에 곧잘 비유하곤 한다. 인생의 여정, 여로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고비를 맞이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순간과 고비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추억거리를 만든다.

프랑스 사회학자 아놀드 방 즈네프가 ‘통과의례(제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보통 관혼상제라고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여긴 의례는 상례였다.

전통상장례 속에는 중요한 정신적 특징이 들어있다. 첫째는 부모님에 대한 효의 정신이다. 불효로 말미암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상주는 불효에 따른 죄인이다. 상장례의 다양한 절차는 불효를 만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극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 속담 중에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다. 생명의 소중함을 귀히 여기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말이다. 운명을 하게 되면 3일장을 치르는 것은 소생을 바라는 기다림일 수도 있다.

‘주가제례’나 ‘사례편람’의 장례절차 속에 ‘곡진애’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사별가족과 친지들은 슬픈 마음이 일어나면 마음껏 곡을 하여 슬픔을 다 토해내라는 뜻이다. 비탄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심리적 치유를 하라는 말일 것이다.

상장례는 망자의 시신을 깔끔하게 처리해 주는 기능이 있다. 고인의 혼을 위로해 줌으로써 사람들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기능도 있다. 죽음에서 오는 충격을 완화해 주는 정신적, 물질적 도움의 기능과 사회공동체 결속 강화의 기능도 있다.

세월이 변해도 돌아가신 분들을 충분히 애도하고 기릴 일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재조정 국면을 도모하는 값진 시간이다. 장례문화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실천할 일이다.

서홍명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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