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공급자 입맛대로’ 정책은 이제 그만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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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5   |  발행일 2019-07-15 제31면   |  수정 2019-07-15
[월요칼럼] ‘공급자 입맛대로’ 정책은 이제 그만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유니폼엔 선수 이름이 없다. 1929년부터 줄곧 홈·원정 경기를 가리지 않고 이름 없는 유니폼을 고수하고 있다. ‘원 팀’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게 구단 측의 설명이다. LA다저스는 2005~2006년 잠시 이름 없는 유니폼을 입었다. 국내 프로야구에선 SK 와이번스가 한때 이름 없는 유니폼을 입었고, 올핸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이름 없는 유니폼을 착용했다.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외견상 깔끔하고 세련돼 보일진 몰라도 관객이나 시청자를 배려한 조치는 아닌 듯하다. 필자는 프로야구를 자주 본다. 웬만한 선수들이야 꿰고 있지만 후보군(群)까지 섭렵하진 못한다. 그러니 때론 이름 없는 유니폼에 짜증이 난다. 프로구단이라면 ‘팀 퍼스트’가 아닌 ‘팬 퍼스트’가 돼야 한다.

대비되는 사례도 있다. 소주가 국민 술로 우뚝 선 비결은 뭘까. 바로 저도주다. 1924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소주가 생산될 땐 35도의 독주였다. 증류식에서 희석식으로 제조법이 바뀐 1965년엔 30도였고, 1973년 25도로 낮아졌다. 그러다 2006년 20도 소주가 일반화되면서 저도주 시대가 열렸다. 이제 17도짜리가 소주의 주종이다. 도수가 낮아지니 일인당 소비량이 늘어나고 여성들까지 소주를 선호한다. 게다가 저도주는 주정이 적게 들어 생산원가가 절감되니 소주제조업체로선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다. 끊임없이 수요자 기호(嗜好)에 부합하려 노력한 결과다.

풍운의 정치인 김종필은 “역사에 가정법은 없다”고 했지만, ‘만약에~’란 가정(假定)의 유혹을 쉽게 떨칠 순 없다.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더라면~’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았다면~’ ‘소현세자가 독살되지 않았다면~’ ‘이승만이 친일세력 척결을 제대로 했더라면~’, 그랬다면 대한민국의 궤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문재인정부의 가장 뼈아픈 실책은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이다. 만약 16.4%, 10.9%가 아닌 5~7% 인상했다면 어땠을까. 시장이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을 테고 자영업자들의 위기도 저소득층 일자리 파괴도 없었을 터다. 막대한 일자리 예산도 절감할 수 있었고 분배지표도 훨씬 나아졌을 게 분명하다. 아마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5~10%포인트는 너끈히 벌었지 싶다. 우린 자영업자의 나라다. 전체 고용에서 자영업 비중이 25.1%나 된다. 6.3%의 미국, 10.3% 일본을 압도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폭탄을 던졌으니 파편을 맞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수요자 현실에 최적화하지 못한 정책 헛발질의 부메랑이다.

강사법도 마찬가지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417개 대학의 올해 1학기 강의 수가 지난해보다 6천655개 감소했다고 한다. 8월부터 강사법이 시행됨에 따라 대학이 강의 구조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위한 강사법이 외려 강사 학살을 촉발하고 있으니 아이러니 아닌가.

신공항 현안 역시 수요자를 외면한 결정이 화근이었다. 1천300만 영남지역 주민의 편의와 경제적 이익을 우선 고려했다면 영남권 신공항 입지는 밀양으로 낙점하는 게 순리였다. 2016년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 평가에서 밀양은 가덕도를 넉넉하게 따돌렸지만 박근혜정부의 정치적 야합은 김해공항 확장이란 미봉책을 선택했다. 수요자 권익이 배제된 그 미봉(彌縫)의 뒤끝은 어떤가. 생뚱맞게도 가덕도 신공항이 다시 추진되고 지역여론은 갈가리 찢기고 있지 않나.

클래식 전문채널에선 음악을 내보내면서 작곡가의 작품 번호만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청취자를 배려한다면 ‘피아노 협주곡 몇 번’ 식으로 소개하는 게 맞다. 프로야구를 중계할 때 캐처 앞에 가상 보드를 설정하는 건 시청자를 위한 서비스다. 정부 정책도 수요자의 홍심(紅心)을 파고들어야 한다. ‘공급자 입맛대로’ 정책은 더 이상 곤란하다. 소주회사에 배워라. 주 52시간제, 탈원전 정책도 수요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수요층끼리 이해가 상충하면 다수 수요자를 우선 배려해야 한다. 수요자 중심의 신박한 정책을 펼치면 지지율이 화답할 것이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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