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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역사 청송 문화재 여행 .2] 대전사 명부전 지장삼존·시왕상·지장탱화, 주왕암 나한전후불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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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관영기자
  • 20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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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미 뛰어난 불상·화려하고 섬세한 후불탱화 ‘중생구제 염원’

대전사 명부전에는 본존인 지장보살과 협시불인 도명존자, 무독귀왕 등 지장삼존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삼존을 중심으로 시왕상이 자리해 있다. 조선시대 보기 드문 석조상으로 2004년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69호로 지정됐다.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69호로 지정된 대전사 명부전 지장삼존 뒤에는 화려하고 선명한 탱화가 걸려 있다. 명부전 지장탱화는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68호로 지정됐다.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70호로 지정된 대전사 주왕암 나한전후불탱화. 정조 24년인 1800년에 제작된 탱화로 우리나라 불화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사찰의 전각에는 제각각 사람을 위한 신들이 산다. 어두운 전각 안으로 새벽의 첫 빛이 들면, 한가운데 높이 앉은 신이 얼굴을 드러낸다. 그들 뒤로는 화려하고 섬세한 탱화가 신들을 장엄(莊嚴)하며 펼쳐져 있다. 그 신들은 누가 빚었는가. 그 미소는 누구의 것인가. 선하고 자비로우면서도 엄격한 그 얼굴은 아마 시대가 원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명부전 불상은 1703년 수연이 봉안
본존불 지장보살·도명존자 등 배치
내구성 뛰어나고 조형적 가치 높아
조선 불교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

장엄한 지장탱화 1806년 제작 기록
입은 가사 문양 화려하고 필선 세련
주왕암 나한전 탱화는 1800년 조성
사자·코끼리 탄 문수·보현 해학적

#1.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69호 대전사 명부전 지장삼존과 시왕상

청송 대전사 보광전의 오른쪽 뒤편에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대전사는 조선 현종 때 중수되어 18세기 말까지 거찰의 모습을 유지했지만 19세기 말엽에는 이미 쇠락해 두 개의 불당만이 남아 있었다. 그 두 불당 중 하나가 본전인 보광전,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명부전으로 추측된다. 명부전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해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이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하는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곳이라 ‘지장전’이라고도 하고, 지옥의 심판관인 시왕을 모신 곳이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전각이어서 ‘쌍세전(雙世殿)’이라고도 한다.

대전사 명부전에는 본존불인 지장보살을 비롯해 협시불인 도명존자(道明尊子)와 무독귀왕(無毒鬼王) 등 지장삼존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삼존을 중심으로 시왕상(十王像) 10구(軀), 판관(判官) 2구, 장군(將軍) 1구,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 2구 등이 봉안돼 있다. 이는 지옥세계의 격식을 완전하게 갖춘 형태다.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숙종 29년인 1703년 수연(守衍)이 조성해 대전사 명부전에 봉안했다. 수연은 17세기의 대표적 조각승인 승호(勝湖)의 제자다. 이 불상들은 연대가 확실한 조선 후기 대표적인 명부세계의 불상이며 수연이 제작한 작품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조선시대 불교조각 연구에 귀중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본존불인 지장보살은 앳된 얼굴을 조금 숙이고 앉아있다. 전체 크기는 높이 75㎝, 머리 높이는 26㎝, 무릎 너비는 57㎝ 정도로 어깨와 무릎 폭이 좁아 동자와 같은 인체미를 보인다. 이마는 반듯하고 눈은 가늘고 길며 눈꼬리는 살짝 위로 올라갔다. 코는 짧고 뭉뚝하며 입은 작고 가볍게 다물고 있다. 오른손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 손등을 위로 해 밑으로 내리고 있고, 왼손은 손등을 왼 무릎 위에 올렸다.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은 지장보살의 양쪽에 서 있다.

도명존자는 우연히 사후세계를 경험한 뒤 자신이 저승에서 본 바를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크기는 높이 76㎝, 폭 34㎝이다. 넓은 이마가 시원스러운 느낌을 준다. 눈은 가늘고 길며, 코는 짧고 뭉뚝하고, 입은 가볍게 다물고 있으며, 귓불이 유난히 두텁고 손은 합장을 하고 있다. 무독귀왕은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준다는 귀신 왕이다. 크기는 높이 84㎝, 폭 36㎝ 정도이며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다.

지장삼존의 좌우에 저승 시왕(十王)이 의자에 앉아 있다. 시왕은 진광왕(秦廣王), 초강왕(初江王), 송제왕(宋帝王), 오관왕(五官王), 염라왕(閻羅王), 변성왕(變成王), 태산왕(泰山王), 평등왕(平等王), 도시왕(都市王), 전륜왕(轉輪王) 등으로 사후세계에서 인간들의 죄의 경중(輕重)을 가리는 열 명의 심판관이다. 높이는 88㎝이고 수염의 모습과 표정이 조금 다를 뿐 전반적으로 같은 양식을 갖추고 있다.

불교에서 중생은 사후에 육신을 벗어나서 자신의 전생업보(前生業報)를 심판받게 된다고 보고 있다. 이 시왕신앙은 교리적 엄밀성을 수반하지는 않지만 우리 민족의 고유한 내세관과 조화를 이루면서 매우 설득력 있는 민간신앙으로서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한 면을 이루어 왔다. 불교의 지옥관이 다른 지옥 사상과 크게 다른 점은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자비심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대전사 명부전의 지장삼존 및 시왕상은 내구성이 뛰어나고 조형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조선시대 보기 드문 석조상으로 2004년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69호로 지정되었다.

#2.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68호 대전사 명부전 지장탱화

명부전 지장삼존 뒤에는 화려하고 선명한 탱화가 걸려 있다. 명부전 지장탱화다. 불상을 모신 상단(上壇) 뒤에 걸어 둔 후불탱화는 본존불의 신앙적 성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불상을 장엄(莊嚴)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 탱화의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삼국시대부터 존재해 왔다. 조선시대 불화에서는 보살상이나 불제자상이 주존을 둘러싸며 배열되어 있다. 이는 조선시대 불교가 여러 보살 신앙을 발전·전개시킨 데에서 연유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귀족 불교에서 대중 불교로 전개된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명부전 지장탱화에는 ‘가경십일년병인사월육일청송대둔산대전사명부전후불정화조성(嘉慶十一年丙寅四月六日靑松大遯山大典寺冥府殿後佛幀畵造成)’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순조 6년인 1806년에 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지장탱화의 크기는 가로 206㎝, 세로 166㎝ 정도다. 좌우대칭구도로 높은 단 위에 있는 본존인 지장보살을 화면 중앙에 안치하고 하단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배치했다. 이 외 지장보살 양쪽으로 각 5명의 보살이 표현되어 있는데 6대보살 등 천동, 천녀라 한다. 모두 신체적 비례미가 8등신으로서 균형을 갖추고 있다.

지장보살의 얼굴은 갸름하고 단아한 외형을 갖추었으며 투명한 두건을 쓰고 있다. 머리에는 원형의 두광(頭光), 몸에는 신광(身光)이 둘러져 있다.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들었는데 두 손 모두 둘째와 셋째 손가락을 댄 모양으로 설법 교화의 수인(手印)이라 한다. 전체적으로 붉은색과 녹색이 주류를 이루며 명도가 높은 코발트빛 청색이 더해져 있다. 지장보살과 여러 보살이 입은 가사 문양이 화려하고 필선이 세련되었으며 제작기법이 뛰어난 편이다. 특히 채색이 짙어지고 물감이 두껍게 칠해지는 등 19세기로 넘어가는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명부전 지장탱화는 2004년 10월14일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68호로 지정됐다.

#3.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70호 대전사 주왕암 나한전후불탱화

대전사에서 용추폭포로 가는 계곡을 따라가다 자하교를 건너 조금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암자가 나온다. 주왕암이다. 당나라 말기 후주(後周)의 왕이라고 자처하던 주왕(周王)이 당과의 싸움에 패해 이곳으로 도망쳐와 숨어 지냈다는 주왕굴 아래에 조성된 암자다. 정문격인 중층의 가학루(駕鶴樓)를 지나면 왼쪽의 석축 위에 나한전(羅漢殿)이 자리한다. 나한전에는 주불인 석가모니불을 비롯해 협시불인 보현보살(普賢菩薩)과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봉안되어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좌우에 16나한상과 동자상 2구, 기타 1구의 불상이 있다.

나한(羅漢)은 일체번뇌를 끊고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로 석가에게서 불법을 지키고 대중을 구제하라는 임무를 받은 자를 말한다. 부처가 열반한 뒤 제자 가섭이 부처의 설법을 정리하기 위해 소집한 회의 때 모였던 제자 500명을 ‘500나한’이라고 하며, 불가의 불제자 가운데 부처의 경지에 오른 16명의 뛰어난 제자를 ‘16나한’이라고 한다. 나한은 인간의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고 여겼기 때문에 신앙의 대상이 됐다. 조선시대에 나한은 복을 주는 ‘복전(福田)’의 의미로 여겨 서민들과 가장 친숙한 존재였다.

석가모니삼존불 뒤에는 삼베에 그려진 탱화가 걸려 있다. 나한전 후불탱화다. ‘가경오년경신오월십구일기시육월초길일필공봉안우대둔산주왕암(嘉慶伍年庚申五月十九日起始六月初吉日畢功奉安于大遯山周王庵)’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정조 24년인 1800년에 제작된 것이다. 대전사 명부전의 지장탱화보다 몇 년 이르다.

탱화의 폭은 가로 297㎝, 세로 205㎝다. 중앙에 본존인 석가모니불을 배치하고 좌우에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 등 석가모니의 8대 보살과 가섭(迦葉), 아난(阿難) 두 제자만 배치했다. 이는 영축산에서 석가모니가 설법을 하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간단하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본존 좌우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데 그 표정이 해학적이다. 영산회상도가 가장 발전했던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이 시기의 불화는 19세기 불화연구의 중요한 자료로서 그 가치가 있다. 대전사 주왕암의 나한전후불탱화는 2004년 10월14일에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470호로 지정됐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청송군지. 주왕산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홈페이지

공동기획지원 :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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