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아서, 13년째 눈 내리는 밤 풍경만을 그립니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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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6   |  발행일 2019-07-16 제24면   |  수정 20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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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홍제동’, 작은 사진은 김종언 작가.

그 겨울밤, 무슨 일이 있었던가. 더러 개 짖는 소리만이 한밤의 고요를 깨우는 시간, 아마도 눈이 내린 모양이다. 밤새 눈은 머리를 맞댄 지붕 위에, 꼬불한 골목길에, 차가운 아스팔트와 장독대와 나목의 가지 위에 차곡차곡 쌓인다. 느리고 조용하게.

눈 내리는 밤 풍경만을 그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김종언 작가는 쌓이는 눈처럼 느리고 조용하게 대답한다. “그냥 눈이 좋아서요.”

김종언, 22번째 개인전 ‘밤새’
눈 예보 뜨면 카메라 챙겨 이동
화분·전주 등 실경으로 담아내
“겨울밤, 춥긴하지만 환해 좋아”


‘그냥 좋아’ 눈 오는 밤을 그린 지 벌써 13년째. 매년 겨울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뜨면 그는 카메라를 챙겨 집을 떠난다. 매번 같은 곳이다. 광주와 목포. 같은 곳이지만 같지 않다. 매년 내리는 눈이 같은 눈이 아니듯.

작가의 작품은 있는 그대로의 ‘실경’이다. 전주의 전선 하나, 주인이 문 밖에 무심하게 내놓은 화분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작가는 그렇게 하찮은 것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세월이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눈 내리는 밤의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눈을 그리기 전까지 그의 주된 소재는 전원이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전원의 풍경을 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모두 안개 낀 숲과 비 내리는 들판 또는 흐린 날의 새벽이었다. 그 숲과 언덕이 집과 골목으로 바뀌었지만 그의 그림에선 여전히 바람이 불고 안개가 피어오르며 눈이 내리고 있다.

이중희 영남미술학회장은 그의 작품을 이렇게 평한다. “김종언의 화풍은 자연시(自然詩)다. 자연의 체취에 녹아들어 그 오묘한 심리적 융합의 세계에 도달해야만 가능하다. 작가는 그런 감성의 소유자이자 심안(心眼)의 경지 속에 있다. 김종언의 예술이 현란한 현대에서도 진가를 발하게 되는 이유다.”

“눈이 오는 밤은 춥지만 환하여서 좋고, 그 추위는 따뜻함을 생각하게 하여서 좋습니다. 많은 생각과 기억을 만들어주는 그러한 시간들이 참 좋습니다. 훗날 그 곳의 눈처럼 나의 그림에도 많은 이야기가 쌓이면 좋겠습니다.”

노란 가로등만이 내리는 눈을 밤새 지켜보고 있는 그림들을 뒤로 하고 갤러리를 나선다. 저 문을 열면 함박눈이 내리는 밤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잠시 빠진다.

‘밤새’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김 씨의 스물두번째 개인전에는 눈 내린 야경을 그린 30여점의 최근작이 전시되고 있다. 8월31일까지. 갤러리 더키움. (053)561-7571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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