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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시간이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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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부기자
  • 2019-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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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민<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
크리스티안 짐머만, 그 이름만으로도 전 세계의 음악팬들을 설레게 하는 현존 최정상의 피아니스트이다.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 ‘건반 위의 완벽주의자’ 등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찬사는 내 마음속 그것과도 다르지 않았다. 피아노를 전공하던 시절 미완성의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당시의 나에게 그는 가장 이상적인 완성형이었다. 그의 음반과 영상을 수없이 반복해 감상하며 많은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고유한 개성과 탁월함을 지닌 피아니스트는 많지만 누구도 그처럼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지는 못했다. 20대 언저리의 내 작은 세상에서 그는 그런 존재였다.

많은 시간이 흘러 그를 직접 만나게 되는 순간이 실제로 내게 찾아왔다. 지난 3월 필자가 근무하는 수성아트피아에서 지역 최초로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공연장의 직원으로서 그를 마주하게 되었지만 설렘과 함께 찾아온 부담감은 예전 동경해 마지않았던 그가 지금의 내게도 여전히 그러한 존재인지를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곧 올 것이라는 어떤 예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공연장에 도착한 그는 스스로를 먼저 크리스티안이라 소개하며 미소와 함께 내게 악수를 청했다. 이미 여러 일화를 남기고 있는 그의 완벽주의적인 기벽은 나를 다소 긴장하게 했지만 직접 만나본 그는 온화하고 소탈했으며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젊은 날의 빛나던 금발은 기품 있는 백발로 바뀌었고 예리한 영감이 번뜩이던 눈빛은 부드럽고 깊어졌다. 그와 처음 눈이 마주치던 순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감정들이 솟아났으나 나는 단지 우리 공연장에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을 뿐이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역할은 그가 불편함 없이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당연히 모든 잠재적 방해요소를 차단하는 일도 포함됐다. 그와 공연을 준비하며 일정을 함께했지만 나의 사적인 감정은 모두 마음속에 묻고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같은 시공간에 있으면서도 한발자국 더 그와 멀어지기로 했다.

공연을 무대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그의 여러 면모들이 음악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있음을 느꼈다. 무던히도 단단했던 완벽함과 서슬 퍼런 예리함이 지나간 곳에는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와 여유로운 품격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황리에 공연이 마무리되고 공연장을 떠날 준비를 마친 그와 작별인사를 나눌 때도 나는 결국 말하지 못했다. 당신은 20대의 내가 늘 동경했던 대상이자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어쩌면 나는 그때 과거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를 만난 것일지도 모르겠다.유재민<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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