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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핫 토픽] 풍운아 정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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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9

지난 16일 별세한 정두언 전 의원. 연합뉴스
정두언 전 의원은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왔다. 대학시절 ‘Spirit of 1999’라는 록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다. 4장의 앨범을 낸 정식 가수였으며,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공직생활 중 드라마 단역 오디션에 참여할 정도로 끼 많은 사람이었다. 반골기질도 강했다. 대학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해 장교로 복무할 수 있었지만 육군 병사로 자원 입대해 병장으로 전역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노태우 정무2장관을 보좌한 것을 시작으로 20여년 공직에 몸담았다. 국무총리실 근무 땐 김종필·박태준 총리의 공보비서관을 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권유로 2000년 정계 입문해, 2004년 17대부터 19대 총선까지 내리 3선 했다. 당내 개혁파의 구심점으로 활동했고 날카롭고 거침없는 발언으로 늘 주목 받았다.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인연 맺은 이명박(MB) 후보 선대위 기획본부장 및 전략기획 총괄팀장을 맡아 대선 승리에 크게 공헌했으며, ‘MB정부의 개국공신’ ‘MB정부의 2인자’로 불렸다.

그의 황금기는 너무 짧았다. 정권 출범 후인 2008년 6월 MB의 친형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강력히 비판하며 대척점에 섰고, ‘이상득 총선 불출마’를 요구해 MB와 멀어졌다. 모 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3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2년 법정 구속돼 10개월 수감생활을 했다. 파기환송심에선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후 MB 관련 의혹을 잇따라 폭로하는 등 MB저격수로 돌아섰다.

그는 2016년 20대 총선 낙선 뒤 우울증을 앓아 치료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그해 11월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정치를 접었다. 시사평론가로 왕성하게 활동했으며, 횟집을 열어 운영하기도 했다.

정두언 전 의원이 지난 16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과 이별했다. “더 나이 들기 전 꼭 연기자가 되고 싶다”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페이스북에서 “사적으로 교류한 분은 아니지만, 저런 분과는 같이 손잡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깔끔한 성품의 보수 선배로 느껴졌다”고 애도했다. “영어의 몸이 되지 않았으면 한번 만나려고 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고인과 애증의 관계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최측근 이재오 전 의원을 통해 추모의 뜻을 전했다.

정 전 의원의 발인은 오늘(19일) 엄수될 예정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 김기오 인터넷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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