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미중 무역갈등과 한일 경제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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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0   |  발행일 2019-07-20 제23면   |  수정 2019-07-20
[토요단상] 미중 무역갈등과 한일 경제전쟁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작년 7월6일 미국이 먼저 2천500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매겼다. ‘선전포고’였다. 중국도 곧바로 미국산 수입품 1천100억달러어치에 5~25%의 보복관세로 맞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불공정 무역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새삼스럽진 않다. 국가 보조금 지급, 기술 탈취, 막무가내형 경제보복 등 중국의 부정 경제행위는 횟수도 많고 노골적이다.

그럼에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자유무역이란 더 큰 가치를 존중했다. 트럼프는 달랐다. 미국 우선주의다. ‘질서유지자’ 미국이란 국격으로 보면 트럼프가 틀렸다.

한국과 일본 사이엔 일제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가 발등의 불이 됐다. 한국 대법원이 작년 10월 일본의 배상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라며 한국 경제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렸다. 소재(素材) 산업의 취약함을 파고든 것이다. ‘자유무역’의 관점에서 아베 총리의 경제보복은 국제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

연원을 따져 들면 다르다. 일본측 주장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이미 징용 배상은 해결됐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는 물론 노무현정부도 2005년 같은 결론을 냈다. 당시 민관합동위는 청구권이 남아있는 대상을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한인, 조선인 원폭 피해자로 한정했다. 노무현정부는 특별입법을 통해 유족과 부상자에 보상을 해줬다. 객관적 사실이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문재인정부는 “법원 판결에 간섭할 수 없다”고 했다. 일본이 화를 낸 대목이 이 지점이다. 그래서 보복의 칼을 뽑았다. 한국은 화전 양면 전략을 쓰는 듯하다. 문제는 한일관계의 특수성이다. 이성보다 감성이 지배하는 영역이 많다. 화(和)와 전(戰)을 반반씩 나눠 써도 전(戰)이 훨씬 커 보인다. 양국 언론 중에서도 부추기는 곳이 많다. 그만큼 미묘하다. 해결은 점점 꼬이게 마련이다.

무기를 동원한 전쟁의 승패는 무기 규모, 전략에 따라 결정된다. 경제전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은행 발표를 보자. 작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조4천941억달러다. 중국은 13조6천82억달러. 미국이 1.5배쯤 된다. 1년 이상을 끌고 있는 미중 협상의 속을 들여다보면 대등하지 않다. 중국이 끌려가는 양상이다. 양국 경제규모가 엇비슷하고, 트럼프의 공세가 자유무역 질서를 흔들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과 일본은 어떤가. 일본의 작년 GDP(4조9천709억달러)는 한국(1조6천194억달러)의 3배쯤이다. 게다가 일본의 경제보복은 명분이 없지만, 발단을 따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미중 갈등에서 중국이 처한 위치보다 한국이 힘겹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그럼 굴복하란 말이냐”고 한다. 일본의 부당함에 손을 들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다. 이런 국민 정서를 경제의 영역에 그대로 적용할 순 없다. 경제전쟁에서 완승이나 완패는 없다. 서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 언저리에 바로 외교의 영역이 있다. 때론 본질을 직접 건드리기도 하지만, 피해가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 국가로서 수천년간 다양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걸 항일이냐, 굴복이냐의 이분법으로만 본다면 역사를 처음부터 고쳐 써야 한다. 물론 한국과 일본 한 구석에 아직도 극단적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다수의 국민, 특히 미래 세대는 정치적 관계보다 경제, 문화적 유대에 주목하고 있다. “이제 제발 정치가 경제를 좀 붙들어줄 것은 붙들고 놓아줄 것은 놓아주어야 할 때 아닙니까?”라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외침이 경제의 영역에선 전범(典範)이다.

1998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내세우며 일본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를 새겨보자. 그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아픔을 몰랐기 때문일까. 과거를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는 걸 손놓고 있거나 부추겨선 지도자로서 낙제점이다.

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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