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집에 가야 할 국회의원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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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3   |  발행일 2019-07-23 제30면   |  수정 2019-07-23
막말·갑질 몰염치 국회의원
정쟁만 몰두 의정엔 무관심
세비는 꼬박꼬박 챙겨받아
내년 총선 앞두고 가슴답답
민의 외면 의원은 불출마를
[화요진단] 집에 가야 할 국회의원
이창호 편집국 부국장

난센스 퀴즈다. ‘바빠 죽겠다고 하는데 매일 노는 것 같고, 말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되고, 내가 선택했지만 후회하고 있다’. 누구를 일컬을까. 대충 짐작할 것이다. 정답은 ‘국회의원’. 주변에 답을 일러주니 모두 박장대소, 공감백배했다. ‘국회의원’ 너란 사람, 어쩌다 이런 B급 유머의 주인공으로까지 전락했을까.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보좌관’ 시즌1에서 그 답이 나왔다. ‘몰염치(沒廉恥)’다. 극중 철면피(鐵面皮) 국회의원 송희섭(김갑수 분)은 “나는 국회의원이 되면서 버린 게 있다. 바로 수치심”이라고 했다. 대중 앞에선 ‘친서민 코스프레’를 하다 사무실만 들어오면 정치적 술수·음모를 기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계산된 시나리오로 상대를 자극해 자신이 폭행당하도록 쇼까지 벌인다. 수족과 같은 자기 보좌관도 정치적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 싶으니 가차없이 버리기까지 한다. 부끄러운 줄 모른 채 오로지 권력만을 좇는 ‘못난’ 국회의원의 전형이다.

현실로 돌아오자.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의 민낯은 어떤가. ‘송희섭’도 울고 갈 이가 부지기수다. 막말맨·싸움꾼·갑질맨이다. 막말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국회의원의 막말은 소영웅주의 심리의 산물이다. 자신을 부각하려는 요긴한 수단으로 여긴다. 왜 그럴까.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지는 걸 가장 두려워해서다. ‘국회 밥’을 먹은 적 있는 일부 전직 의원도 뒤지지 않는다. 절박한 ‘물망초(勿忘草)’의 심정이리라. 특히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막말이다. 성큼 다가온 내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어떻게든 튀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역 국회의원은 어떤 막말을 쏟아내도 신분을 지킬 수 있다. 제재를 받더라도 대부분 ‘솜방망이’다. 매일 언론 스포트라이트까지 받으니 시쳇말로 ‘개이득’이다. 이지적인 학자도 국회의원이 되고 나면 독설가·싸움꾼이 돼야 한다. 법안 발굴 잘하는 의원은 과소평가되기 십상이다. 당론과 다른 ‘소신 발언’ 땐 당 주류세력에 바로 찍힌다. 오로지 상대 당과의 양보없는 대결에서 승리를 가져다 줄, 호전적(好戰的)·전투적(戰鬪的) 의원만이 인정을 받는 게 현실이다.

제20대 국회의원의 성적표는 어떤가. 개원 3년 차인 올핸 시쳇말로 ‘폭망’이다. 이렇다 하게 해놓은 게 없다. 상반기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안건이 고작 445건이다. 지난 10년 사이 같은 기간 평균(2천564건)의 17%에 불과하다.법안 발의 100건 이상, 상임위·본회의 출석 90% 이상인 의원은 30명도 안 된다. 역대급 ‘식물 국회의원’이란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게다. ‘먹고 논다’는 국민적 비난에도 상반기 국회의원에게 지급된 총급여는 188억6천900여만원에 이른다. 여야 대치로 국회가 개점휴업을 해도 의원·보좌진 월급, 의원실 운영비에 알토란 같은 혈세는 계속 투입됐다. 웃기는 게 법안 발의·심사를 안 해도 입법활동비가 주어졌다. 수감 중인 의원에게도 수당이 지급됐다. 이러는 사이 ‘포항지진 특별법’ 등 하루가 급한 주요 법 제정은 하세월이 됐다. 이러니 국회의원들이 욕을 안 먹을 수가 있나.

대놓고 무례하고(막말·갑질) 대놓고 농땡이를 치는(손 놓은 입법 활동) 국회의원들, 언제까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하나.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이런 작태에 염증을 느낀 일부 의원이 잇따라 ‘정계 은퇴’를 준비 중이다. 주로 초선의원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금배지를 달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고뇌하다 ‘용퇴(勇退)’를 결한 것이다. 잘한 결정이다. 멀쩡한 사람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 국회다. 어떤 이는 마약과도 같다고 했다. 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빨리 끊고 본업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 사실 이들 말고 집에 가야 할 의원이 따로 있다. 게을러 빠진 다선 의원들이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법안 대표발의를 단 한 건도 하지 않은 이도 있다. 그에게 혈세로 세비를 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하다. 이런 자부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라.
이창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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