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희한한 전시회 오픈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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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4   |  발행일 2019-07-24 제30면   |  수정 2019-07-24
오랜만에 걸려온 지인 전화로
희한한 전시회 오픈 자리 참석
오래 기억될 좋은 시간 가져
쓸모없는 것의 쓸모에 관해서
생각할 줄 알아야 삶은 더 풍요
[동대구로에서] 희한한 전시회 오픈

살다보면 아주 가끔 ‘멋지다’고 생각되는, 의외의 일을 경험할 때가 있다.

지난 9일 대구 미술계 지인으로부터 정말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 왔다. 대구의 한 갤러리(아소 갤러리)에서 그림 몇 점을 걸어놓고 감상하며 차 한 잔 하는 자리가 마련됐는데, 얼굴도 볼 겸 거기서 보자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성품을 아는데다 보고 싶기도 하여,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고 선뜻 가겠다고 했다.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해 봉산문화거리 동원화랑에서 만나 같이 가자고 했다. 퇴근 후 그곳으로 갔다. 마침 화랑에는 김창태 화가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 작품이어서, 오랜만에 그의 최근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잠시 후 동원화랑 손동환 대표 등과 함께 갤러리로 갔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니 몇 사람이 와 있었다. 잇따라 몇 사람이 더 왔다. 큰 주택의 일부 공간을 멋진 전시공간으로 만든 갤러리다. 갤러리 주인 부부를 포함해 모두 15명 정도 모였다. 원로화가 최병소·이명미 선생을 비롯한 화가와 미술애호가들이었다. 포도주와 빵, 야채 샐러드, 토마토 삶은 것, 고등어 초밥, 튀김 닭, 자두와 무화과 등 음식도 차려져 있었다.

전시된 작품은 네 점.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이 독특한 전시공간의 사방 벽에 한 작품씩 걸려 있었다. 호수 표면과 산 등을 소재로 한 유화 그림으로, 색감이나 내용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오기로 한 사람들이 다 오자 나를 초청한 지인이 전시회에 대해 설명했다. 지인의 친구인 이날 전시회 주인공은 참석하지 않았다. 주인공 없는 전시회 개막 자리였다. 작가(신용호)는 프랑스에 있다고 했다. 이 작가는 하는 일이 걷고, 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주위 할머니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다가가서 도와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살고 있는 그는 그림과는 관계없는 불문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나이는 60대 중반. 얼마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길래 적절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인연이 닿은 이 갤러리에 그림을 걸게 되었다고 했다.

느긋하게 음식을 즐기며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림을 그린 작가가 없는 덕분에 음식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어 더 편하고 좋은 전시회 오픈이라는 이야기도 오고갔다. 음식도 맛이 좋아 전시회 오픈에서 이날처럼 맛있게 많이 먹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지인이 들려주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 대한 궁금증을 더 일으키는, 비현실적 이야기로 다가왔다. 보기 드문 성격의 작가와 그 친구가 탄생시킨 독특한 전시회 개막 자리였다.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 움직인 순수한 마음들이 마련한 듯한 이날 모임은 황당하면서도 좋은 여운을 남겼다. 예술작품이나 예술가는 통상적인 잣대로, 드러나는 성과나 효율로만 평가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예술가의 기운이 아니라면 이런 자리도 만들어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인이 이날 낭독한 작가의 글 ‘호수의 눈’ 일부를 소개한다.

‘꿈은 자연의 본질입니다/ 자연은 꿈을 좇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자연을 ‘절로 그러함’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자연은 꿈을 좇습니다/ 꿈을 좇으며 자연은 비로소 자연 그것이 되어가고/ 또 그렇게 오고 있습니다/ 꿈을 좇는 자연/ 그것을 이름 하여 우리는 풍경이라 합니다/ 꿈을 좇는 자연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것이 있으니/ 호수가 그것입니다/ 호수는 꿈을 좇는 자연을 비추어 주는 자연의 거울입니다 ~’

예술가들이 없으면 인간사회가 어떻게 될까. 영혼이 풍요로울 수 있을까. ‘사람은 모두 쓸모 있는 것의 쓸모만 알고, 쓸모없는 것의 쓸모는 알지 못한다.’

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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