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찰스 디킨스의 비밀서재’ (바랫 낼러리 감독·2017·아일랜드·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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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6   |  발행일 2019-07-26 제42면   |  수정 2019-07-26
구두쇠 스크루지와 찰스 디킨스의 빛과 어둠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찰스 디킨스의 비밀서재’ (바랫 낼러리 감독·2017·아일랜드·캐나다)

유명인들의 숨은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영화 ‘찰스 디킨스의 비밀서재’는 셰익스피어에 비견되는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이야기다. 그가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통해 ‘구두쇠 스크루지’를 탄생시킨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창작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면의 상처와 어둠,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까지 말하고 있다.

1843년, 성공한 작가지만 세 권의 책을 연달아 실패한 찰스 디킨스는 재정난에 허덕인다. 구상 중인 새 소설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낭비벽이 있는 부모님까지 고향에서 올라와 그를 곤혹스럽게 한다. 또한 그를 괴롭히는 것은 어린 시절에 겪은 학대로 인한 상처다. 11세 때 구두약 공장에서 고통스럽게 일했던 경험은 어른이 되어서도 악몽에 시달리게 한다. 번민에 사로잡힌 그에게 상상 속의 인물이 나타나 말을 건다. 바로 구상중인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인 구두쇠 스크루지다. 그의 머릿속에서 존재하던 인물이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소설 속 스크루지는 자신의 과거·현재·미래를 보게 되면서 변화되는 인물인데, 이 영화에서는 찰스에게 자신의 과거 여행을 하게 하는 안내자가 된다. 즉 소설의 내용과 찰스 디킨스의 실제 삶을 연결시켜 흥미롭게 펼쳐놓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찰스와 아버지와의 관계다. 빚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된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강철처럼 강하게, 얼음처럼 냉정하게”란 말을 남기고 떠난다. 하지만 감수성 예민한 소년에게, 뼛속깊이 ‘강하고 냉정한’ 삶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학대 속에서 노동을 했던 구두약 공장에서의 경험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실제로 그는 “어른이 된 지금도 공장 주변을 배회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고백한다.

스크루지가 찰스에게 “나는 네 영혼의 얼룩이야”라고 말한 장면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고약한 구두쇠 스크루지는 평소에는 다정하지만 가끔씩 괴팍한 행동을 하던 찰스 디킨스 내면의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렇게 찰스 디킨스 내면의 빛과 어두움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의 상처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자전적인 소설 ‘데이빗 커퍼필드’를 통해 그 상처를 극복하고 승화시키게 된다. 이후 그는 “부러지고 깨졌지만 나는 더 멋지게 태어났다”고 당당하게 고백한다. 영화의 끝 무렵 그가 만나는 인물의 이름이 커퍼필드라는 것이 머잖아 소설 ‘데이빗 커퍼필드’를 쓸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와도 화해한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찰스 디킨스의 비밀서재’ (바랫 낼러리 감독·2017·아일랜드·캐나다)

찰스 디킨스가 내면의 분투 속에서 6주 만에 써내려 간 ‘크리스마스 캐럴’은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완판됐고, 기부금도 폭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어떤 설교보다도 사람들에게 선한 마음을 일깨웠다는 찬사를 받았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자랑이고, 찰스 디킨스는 영국의 사랑이다”라는 말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소설가 찰스 디킨스. 영화를 통해 그의 인생을 다각도로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속 인물들을 현실로 불러낸 판타지 영화라 더 좋았다.

‘미스 페티그루의 특별한 하루’를 연출했던 바랫 낼러리가 감독을 맡았고 ‘미녀와 야수’의 댄 스티븐스가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찰스 디킨스를 연기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스크루지를 맡아 무르익은 연기를 선보인다(폰 트랩 대령의 나이든 모습이 세월 무상을 느끼게 하지만 여전히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것이 아름답다). 크리스마스가 배경이지만 한여름에 보아도 매력적인 영화다. 19세기 런던의 풍경과 분위기를 맛보는 것도 충분히 흥미롭다.

화가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든 사람이 읽고 또 읽어야 할 심오한 이야기”라 말했던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영화를 보고나면 새삼 그의 소설들이 읽고 싶어질 것이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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