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다시 되돌아간다면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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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2 07:37  |  수정 2020-09-09 14:39  |  발행일 2019-08-02 제16면
[문화산책] 다시 되돌아간다면
유재민<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

인간의 삶은 유한하며 누구도 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 모든 유한한 것은 늘 아쉬움과 미련을 동반하고 영원과 초월에 대한 동경을 품기 마련이다. 이러한 감정은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더욱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처음의 무(無)를 향해 회귀(回歸)하는 삶의 모든 과정에서 회상(回想)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자면 예술작품에 빈번히 등장하는 회귀나 회상의 형태는 작곡기법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소나타형식에서는 악장의 말미에 주제의 재현이 이루어지며 론도형식은 삽입부를 사이에 두고 주제가 여러 번 되풀이된다. 이는 아무리 다른 주제들과 함께 변형, 발전하여 내용이 확장되더라도 결국은 항상 주제를 회상하며 다시 처음으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회상을 통해 서사를 연결하는 음악적장치인 고정악상(idee fixe)이나 유도동기(Leitmotiv)도 19세기에 그 개념이 정의되었으나 이미 훨씬 이전부터 작품 속에 스며들어 사용되고 있었다.

슈만의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Frauenliebe und Leben, Op. 42)’는 한 여인이 처음 사랑에 빠지고 결혼과 출산, 그리고 남편과의 사별을 겪는 일련의 과정이 8곡의 가곡에 담긴 모노드라마다. 죽음으로 떠나보낸 남편과의 이별로 깊은 슬픔에 잠긴 마지막 곡에서는 첫 곡 ‘그 사람을 만나고부터’에서 처음 사랑을 느꼈던 기쁨과 설렘이 담긴 멜로디가 아련히 되풀이된다. 여인은 죽음이 갈라놓은 이별 후에도 처음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했던 그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음을 상기하게 된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 생겨난 감정들은 스스로의 내면을 점점 잠식하든지, 딛고 일어서 승화되든지, 아니면 무심히 흘려버리든지 간에 어떠한 형태로든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것이 추억으로 다시 상기되는 날에는 당시 겪었던 감정들과는 확연히 다른 어떤 것들이 그 자리에 존재하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 988)’은 논리적 형식과 아름다운 선율미를 모두 갖춘 장대한 길이의 작품이다. 아름답고 명상적인 아리아로 시작해 무려 30번의 변주를 거쳐 다시 처음의 아리아가 연주된다. 여러 과정을 지나 다시 시작점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분명 같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오랜 여정의 끝에 다시 집으로 되돌아왔을 때처럼 감정의 순환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주관적 경험에 의해 형성된 정서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유한한 삶의 끝에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예술은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에 공감하거나 고양되었을 때 비로소 감동을 느끼게 된다.
유재민<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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