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무시당하는 지방, 미래는 있나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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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6   |  발행일 2019-08-06 제30면   |  수정 2019-08-06
중앙의 권력·언론 지방무시
갈수록 심화돼 부작용 심각
지방민도 자존감 낮아 큰일
차별과 불이익 이젠 당연시
비극적 종말 피할 길 찾아야
[화요진단] 무시당하는 지방, 미래는 있나

지난달 25일 상생형 구미일자리 투자협약식이 열렸다. 대기업 이탈과 투자 감소로 바짝 타들어가는 구미경제에 단비같은 희소식이었다. LG화학이 2024년까지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이차전지 양극재 공장을 짓기로 했다. 투자금액은 5천억원으로, 일자리 1천개 창출이 기대된다. 구미시와 경북도, 정부는 공장 부지(6만㎡)를 무상임대해주고 500억원 규모의 투자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구미형 일자리’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청년일자리 창출 외에도 주목할 부분이 많다. 구미시가 적지 않은 부담을 떠안긴 했지만, 해외로 빠져나가려는 대기업을 붙잡은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더구나 일본과의 경제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 미래 핵심소재 산업의 전진기지 구축은 구미를 넘어 국가적으로 절실한 사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협약식에 참석해 ‘구미형 일자리가 핵심소재의 해외의존도를 줄여야 하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면서 제조업 부흥을 이끌 것’이라는 요지의 내용을 역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구미형 일자리는 전국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다. 대구경북지역 언론만 투자협약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을 뿐, 소위 중앙언론(사실은 서울언론이지만)은 철저히 외면한 탓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전국지들은 한줄도 안 싣거나 단신으로 처리했다. 중앙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언론의 눈에 지방이 얼마나 하찮게 보였으면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조차 이 정도로 취급할까. 그들에게 지방은 대형 사건과 사고·비리가 터질때만 뉴스가치가 있다. 이런 행태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가 지방 언론사를 사실상 ‘퇴출’시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방뉴스는 하찮고 특히 돈이 안 되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방의 언로는 더욱 꽉 틀어막혔다. 지방 현안은 외면당하고 지방민의 절규는 찻잔 속의 외침에 그친다. 반면 서울 일극주의를 확대재생산하는 여론독과점 체제는 철옹성처럼 굳건해진다. 지방 언론에 대한 네이버의 횡포가 용납돼선 안되는 이유다.

중앙의 지방무시가 비단 언론분야뿐이랴. 심지어 현 정권도 다를 게 없다. 청와대는 구미형 일자리 협약식 자리에 지역기자는 단 한명도 들여보내지 않았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때에도 이러지는 않았다. 대통령 참석 행사장에 지역기자 한 두명 정도는 출입을 허용했다. 물론 구색 맞추기였을 테지만, 이제 그마저도 귀찮은 모양이다. 더구나 청와대는 행사장 밖에 마련된 지역언론 프레스센터에 행사 중계 모니터와 스피커 설치도 못하게 막았다. 지역언론의 취재를 원천봉쇄한 것이다. 현 정권이 지방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는 한 대목이다. 이런 속내를 가지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운운하고 있으니 믿음이 안가는 게 당연하다.

중앙 권력과 언론의 무시보다 더 심각한 건 지방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다. 알다시피 국민의 절반은 수도권에서 산다. 서울과 제2의 서울인 위성도시 주민이다. 대체적으로 지방에 대해 무관심하고 편견이 있다. 서울 본토박이뿐만 아니다. 대학진학, 취업 등으로 ‘인서울’에 성공한 지방출신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문제는 지방민 스스로도 자존감이 낮다는 점이다. 그래서 서울(중앙)과의 차별과 불이익을 감내하고 심지어 당연시한다. 그러면서 자식만은 어떻게든 서울로 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서울공화국’을 떠받치는 원동력이다. 지방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은 ‘삶아진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을 떠올리게 한다. 조금씩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뛰쳐나오지 않은 개구리가 결국 삶겨 죽듯이, 지방도 악화되는 현실을 외면하고 안주하다가는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 인구절벽이 불러올 지방소멸이 그것이다. 그래도 지방은 개구리보다는 훨씬 나아야 하지 않겠는가. 더 늦기 전에 비극적 종말을 피할 수 있는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물론 그 일은 중앙 정치권과 정부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 지방의 운명은 스스로의 역량에 달려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허석윤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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