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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 토크] ‘봉오동 전투’ 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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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용섭기자
  • 2019-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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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에 대항, 마적단 출신 전설적 독립군…통쾌하고 후련한 승리의 전율

“큰 바위 같고, 단단한 돌멩이 같다.” 1920년 6월 독립군의 첫 승리를 다룬 ‘봉오동 전투’ 시나리오를 접한 유해진의 첫 느낌은 그랬다. 늘 끌리는 대로 작품을 선택해 왔던 그는 역사가 주는 의미까지 더해진 이 작품에 단번에 매료됐다. “시나리오가 재밌으면서도 묵직하고 단단해서 바위 같은 느낌이 있었다. 또 역사책에는 짤막하게만 설명된 봉오동 전투의 결과뿐 아니라 과정이 그려졌다는 점도 좋았다.”

유해진은 마적단 출신의 전설적인 독립군 황해철을 연기했다. 최근 근현대사의 굴곡을 그린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전달해왔던 그다. 특유의 친근한 매력과 설득력 있는 연기로 독립군의 삶과 투쟁 정신을 대변한 유해진의 존재감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실없는 농담을 하다가도 일본군과의 전투가 시작되면 결기 어린 눈빛으로 항일대도를 거침없이 휘두르는 극 중 황해철은 특히나 유해진의 섬세하고 노련한 표현력을 만나 입체적으로 완성됐다. 연출을 맡은 원신연 감독으로부터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황해철이 눈앞에 딱 서 있었다”는 극찬까지 유도했을 정도다. 극의 무게중심으로서 캐릭터와 혼연일체 된 그의 연기는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하게 감동과 통쾌함을 전한다.

▶최근 ‘말모이’ ‘택시운전사’ ‘1987’에 이어 ‘봉오동 전투’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에 꾸준히 출연했는데.

“그냥 끌렸을 뿐 어떤 엄청난 사명감을 갖고 선택한 건 아니다. 사실 시대극 말고도 비슷한 시기에 ‘완벽한 타인’ ‘레슬러’ 같은 영화에도 출연하지 않았나. 다만, 나이를 먹다보니 배우로서의 책임감이나 이왕이면 메시지가 있는 영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 맥락에서 ‘봉오동 전투’는 의미있지만 재밌는 작품이었고, 그래서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봉오동 전투에 대해 평소 얼마나 알고 있었나.

“만주 봉오동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전투라는 것 정도다. 사실 역사책에 몇 줄밖에 설명돼 있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전작 ‘말모이’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하면서 더 많이 알아가는 것 같다. 봉오동 전투는 모두가 승리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미 잘 알려진 영웅들과 달리 역사책에도 기록되지 않고 숫자로만 남아있는 황해철 같은 민초들의 희생과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이 좋았다.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 독립군이 될 수 있다’는 극 중 대사처럼 일본군을 계곡으로 유인하고 전투 중에 목숨을 바쳤던 그 분들의 이야기라서 정말 좋았다. 올해가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인데 그 의미에도 딱 맞는 좋은 기획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독립군 황해철은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지만 당시에는 분명 있을 법한 캐릭터다. 그 인물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 게 있다면.

“고심한 건 없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이미 시나리오에 충분히 설명돼 있다. 굳이 고민을 한 부분이라면 작품 속에서도 한 무리를 이끌어 가지만, 촬영현장에서도 내가 중심이 돼 밸런스를 잘 잡아야 한다는 맏형으로서의 책임감이다. 두 범주안에서 긴장감과 느슨함, 웃음이 적당히 조율되야 하기 때문에 어떤 레벨로 나를 맞추면서 갈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사실 그 부분이 더 필요했던 현장이었다. 늘 좋은 선배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때로는 민감하고 예민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지만 좋은 사람, 좋은 선배가 되는 게 결코 쉽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황해철은 참 괜찮은 인물인 것 같다.”


만주 봉오동에서 日에 첫 승리한 전투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민초들의 희생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딱 맞는 영화
긴장감·느슨함·웃음 조율하는데 고심
생존위해 칼 휘두르는 장면 만족감

험준한 산·골짜기 뛰는 신 쉽지 않아
의도치 않았지만 韓日 냉각시기 개봉
타이밍 좋다고 해도 완성도 평가 중요
실제 비슷한 지형 찾아내 풍광 압권
절대 놓칠 수 없는 영화로 남은 작품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해철의 무기는 항일대도다. 큰 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 대역을 정두홍 무술감독님이 해주셨다. 그 분은 화려한 기교나 테크닉보다는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깔끔한 액션을 구사한다. 그건 살고자 하는 몸부림에 가까운 우리의 액션과도 잘 부합한다. 투박하게 베어버리고 투박하게 막아내고, 생존을 위해서 칼을 휘두르는 전투여야 했는데, 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정두홍 감독님이었다. 덕분에 후반부 롱테이크로 촬영한 ‘쾌도난마’ 장면이 되게 만족스럽게 나올 수 있었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셀프캠’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는데.

“쾌도난마 신을 다 찍고 나서 ‘보디캠’ 장면을 찍어야 했다. 커다란 복대를 차고 거기에 카메라가 달린 막대기를 부착해 액션 장면을 찍는 건데 움직이는 게 너무 불편하고 효과도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들고 찍으면 더 자유롭고 역동적으로 담겨질 것 같아서 감독에게 제안했다. 한손엔 칼을, 또 다른 손엔 카메라를 들고 찍는 거지. 결과물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았고 이를 응용하면 다양한 연출도 가능해 보였다. 아무튼 뿌듯하고 재밌는 작업이었다.”

▶평소 머리가 짧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에 소원을 풀었겠다. 사실 황해철은 다른 여느 작품 속 이미지보다 잘 어울렸다.

“그렇다. 좋은 작품에서 머리를 아주 짧게 깎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번에 소원을 풀었다.(웃음) 분장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그 이미지에 맞게 여러벌의 의상을 구해왔다. 당시 독립군 사진에 나오는 의상들인데 여러번의 테스트를 거친 후 지금의 코트로 결정했다. 개인적으로 외적인 이미지는 물론 유일하게 칼이 무기라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영화의 무대가 지형이 험한 산과 골짜기다. 워낙 산을 좋아하니 다른 사람들보다는 부담감이 덜했을 것도 같은데.

“평소 산을 좋아하고 등산 경험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현장이었다. 가슴이 터지도록 뛰고 또 뛰고, ‘컷’ 하면 다시 돌아가서 뛰고. 진짜 해뜨고 질 때까지 무지하게 뛰어다녔다. 사실 산에서 뛴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아래를 보고 뛰어야 하는데 촬영 중에는 아래만 볼 수가 없다. 자칫 잘못하면 다치게 되니까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적을 유인하거나 적에게 쫓기는 상황인데 꼼수를 부리면 안 되지 않나.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으로 뛰었다.”

▶류준열, 조우진과의 호흡은 어땠나.

“너무 좋았다. 두 사람 모두 대세가 될 만하다. 일단 똑똑하고 감각이 좋다. 게다가 남을 챙길 줄 안다. 사람들이 상대방을 그냥 인정해주진 않는다. 단순히 연기만 잘한다고 생각하면 ‘연기는 잘한다’고 말하지만, ‘그 친구 참 괜찮다’고 말하는 건 연기는 물론이고 인성도 좋다는 의미다. 두 사람은 참 괜찮은 사람이다.”

▶공교롭게도 한일관계가 냉각기에 들어가는 시점에 영화를 개봉하게 됐다.

“5~6년 전에 기획한 영화로 알고 있다. 때문에 이를 예상하고 의도적으로 만든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시국이 됨으로써 그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영화는 온전히 영화의 힘으로만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국이 이러니 너희는 타이밍이 좋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래서 우리 영화를 선택했더라도 영화가 별로라면 절대 보진 않겠지. 그런 영화 외적인 것보다 실제로 와서 보니 완성도는 물론이고 후련함도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평가가 중요하다. 그게 올바른 방향이기도 하고.”

▶연기력은 물론이고 이제 흥행배우의 대열에도 우뚝 섰다. 그만큼 책임감과 부담감이 클 듯 하다.

“어떤 배우라도 흥행에 대한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즘 천만영화들이 자주 등장하다보니 천만 스코어에 익숙해진 것 같은데, 사실 200만~300만명을 넘는 것도 정말 힘들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버짓(예산)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300만명을 가장 이상적인 스코어로 생각한다. 그런 중박 영화가 꾸준히 나와줘야 다양성에서도, 결과적으로도 한국영화 발전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런 영화들이 차츰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적은 예산의 영화라도 좋은 작품이면 기꺼이 출연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 영화에서 아름다운 풍광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실제 봉오동의 지형과 유사한 곳을 찾기 위해 로케이션에만 15개월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다고 들었다. 실제로 촬영해 본 소감은 어떤가.

“가장 먼저 놀란 건 옥수수밭이다. 되게 근사한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거의 만 평에 가까운 넓은 땅에 미술팀이 4개월동안 상주하면서 씨를 뿌리고 경작했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노력과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발품을 팔아 찾아낸 장소들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늘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 정상까지 올라가 보곤 했는데 어떻게 이런 곳들을 찾아냈는지 볼 때마다 신기했고, 촬영할 때와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영화로 보니 더 멋졌다. 드론을 이용해 전경을 와이드하게 찍은 장면도 그렇고, 자연 풍광을 배경 삼아 역동적으로 담긴 전투신도 정말 그럴싸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좋았던 건 뭔가.

“내 필모에서 평생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무사’(2001)다. 너무 좋아하는 영화지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다시는 그런 영화를 못할 줄 알았다. 사막에서 시작해 바닷물이 어는 곳에서 끝났을 만큼 촬영과정이 정말 혹독했다. 사막에서 버티기 위한 훈련의 일환으로 미리 한여름 땡볕 더위를 택해 연습을 했음에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 때는 나이라도 젊으니 견딜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담도 잘 오는 나이가 아닌가.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민폐만 끼치는 건 아닐까’ 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절대 놓칠 수는 없었다. ‘봉오동 전투’는 그런 의미로 다가온 작품이다.”

▶차기 작품이 SF물 ‘승리호’다.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데.

“작정하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야지 하는 건 없다. 앞서 언급했듯 늘 끌리는 작품을 선택해왔는데 어떤 장르이든 ‘이야기가 참 좋네’ 이거면 된다. 요즘은 그런 구분이 없을 때도 있고, 선택이 애매할 때도 있을 만큼 점점 결정하는 게 쉽지 않다. 다만 특정한 연기보다는 ‘유해진이 나오는 영화는 늘 볼 만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신중해질 필요는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분에 넘칠 정도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 기대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늘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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