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실현된 논쟁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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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2 08:20  |  수정 2020-09-09 14:37  |  발행일 2019-08-12 제22면
[문화산책] 실현된 논쟁
박인성<미술작가>

독일에서의 경험으로 글을 시작해 볼까 한다. 대략 3년 전쯤으로 기억되는데, 70명 정도로 보이는 한 무리의 시위대가 시내 한복판을 가로질러 행진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시위 행동이야 독일에서는 뜨고 지는 해처럼 매일 일어나는 일이고, 주장하는 내용이 너무 광범위해서 때로는 공감할 수 없는 일도 다분했기 때문에, 그날도 무심히 지나치려던 찰나였다. 마침 발제자가 웅변을 시작했고, 그 주제가 흥미로워 이야기를 끝까지 듣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열정적인 웅변가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당시 시위의 목적이 무분별하게 도시에 설치되는 CCTV에 반대하는 것이었는데, 웅변가는 “우리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무분별하게 감시당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그들(경찰)이 주장하는 치안의 문제는 언제든 감시의 기능으로 악용될 수 있다"라며 시종일관 진지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나에게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지 되묻기도 하였는데, 당시의 내 기억으로 한국에서는 아직 그에 관해 적당한 토론이 없었던 것 같아 즉답을 피하고, 대신 백남준의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 1984)에 관련된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당시의 최첨단 기술이 모두 동원된 이 작업은 4개국의 방송국, 30여 팀 그리고 100여명의 각기 다른 분야의 예술가가 참여하여 미술, 음악, 퍼포먼스, 패션쇼 그리고 코미디 쇼 등을 위성을 통해 서울, 뉴욕, 베를린 그리고 파리 등지에 생중계하였다. 약 2천500만명의 관객이 시청한 것으로 추산되는, 아마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관객에게 그리고 여러 곳에서 동시에 관람되었을 예술 작품일 것이다.

1949년 발표된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디스토피아(Dystopia) 소설 ‘1984’는 원거리 통신을 이용한 감시와 통제가 일상이 되어 1984년이 되면 매스 미디어가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는 비관적 예언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적 표현을 통해 오웰의 예언이 “절반만 맞았다"고 반박하며 매스 미디어의 긍정적인 면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70년 동안의 이러한 논쟁은 4차 산업혁명(ICT)의 변화에 현실적으로 맞닥뜨린 지금의 우리에게 아직까지도 중요한 논제로 작용하고 있다. 수많은 TV 채널을 비롯하여 개인 방송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자유롭게 생산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자면, 저 오랜 논쟁의 승자는 백남준인 것 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수많은 채널의 다양성 속에서도 각각의 개인에게는 여전히 매체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조지 오웰이 예견한 미래의 모습처럼 의심하는 것이 익숙해진 개인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또 우리는 자유롭게 의심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박인성<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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