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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정치칼럼] 유승민, 한국당 간판 서울험지 출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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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2


대구정가의 뜨거운감자 劉

탄핵책임론 벗기 어렵지만

긴장과 견제의 정치 복원과

文정부 독선 견제하기 위한

보수대통합 차원에서라면!

유승민 의원은 정계입문 16년째이던 2016년에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두 번 탈당했다. 그 해 정가를 흔들었던 양대 사건, 20대 총선 새누리당 공천파동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때였다. 유승민은 무소속 출마를 위한 1차 탈당 때는 ‘복귀’를 예고했다. “2000년 2월 입당하던 날부터 오늘까지 당은 저의 집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유일한 보수당을 사랑했기에 어느 위치에 있던 당을 위해 제 온몸을 던졌습니다…오늘 저는 헌법에 의지한 채 오래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 합니다. 제가 동지들과 함께 당으로 돌아와 보수개혁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뜨거운 지지를 부탁합니다.” 유승민은 대구 동구을에 무소속으로 다시 나가 승리했으며, 김희옥 비대위체제에서 일부의 반대를 뚫고 약속대로 복당했다.

하지만 2차 탈당 때는 ‘복귀’를 말하지 않았다. “보수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신념을 갖고 정치를 해왔습니다. 보수혁명을 통해 새로운 정치운영을 해보고자 끝까지 노력했으나 새누리당 안에서는 정치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국민들께서 다시 마음을 둘 수 있고 우리 자식들에게도 떳떳할 수 있는 보수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탈(脫)새누리, 신(新)보수’ 선언이었다. 이후 유승민은 바른정당을 만들어 한국당 밖에서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의 길을 찾아다녔다. 2017년 조기 대선에 출마해 개혁보수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 정도를 확인하기도 했다. 작년 지방선거를 앞두곤 안철수 전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과 합쳐 바른미래당을 창당했다. 이 과정에서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처음에 유승민과 뜻을 같이했던 많은 정치인들이 한계를 직감하고 한국당 울타리로 복귀했다.

아직 울타리 밖에 있는 유승민은 2016년말 2차 탈당 때 희망한 ‘국민들의 마음을 얻고 후손에게 떳떳한’ 보수의 집을 짓기는커녕 토대도 못 다지고 있다. 정치적 뿌리가 다른 영호남 출신들이 뒤섞인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대표체제에서 극심한 내부갈등에 휩싸이며 바닥을 드러냈다. 실용중도나 신보수의 가치를 논하기보다는 내년 4·15 총선 공천권을 쥐기 위한 밥그릇 싸움뿐이다. 시류 읽기에 능한 복당파는 이런 상황을 동물적으로 예감하고 적정한 위치에서 멈춰섰다. 반면, 유승민은 아직 개혁보수정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판을 읽지 못해서가 아니라 의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오너 행세하려는 전문경영인(손학규)을 내보내고 당을 다시 추스르면 총선을 통해 개혁보수정치를 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그다음엔 안철수계와의 내전을 또 치러야 한다. 총선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전개다.

개혁보수정치 의지가 그토록 강한데, 밖으로부터의 개혁이 안 된다면 친정인 보수의 본산에 다시 들어가 들쑤셔 보는 게 방법일 수 있다. 지금이 1차 탈당 때 밝힌, 동지들과 함께 당으로 돌아와 보수개혁의 뜻을 이룰 기회란 판단도 가능하다. 물론 다시 합치려면 ‘탄핵책임론’ 파동이 일겠지만 정면돌파해야 한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제시한 ‘서울출마론’이 묘수가 될 수도 있다. 동구을 유권자들에게 진심어린 양해를 구하고 서울 중에서도 당선이 어려운 험지에 출마한다면 개혁보수정치의 의지를 확인하게 된다. 국회 재입성은 그다음 문제지만,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인기가 있는 유승민의 효과로 한국당이 선전한다면 정계입문 20년이 되는 해에 보수회생의 밑거름이 될지도 모른다. 정권 차원의 주류교체 작업이 이뤄지는 시점에 한국정치의 긴장과 견제 관계 복원이 최우선 과제가 됐고, 그 길이 보수대통합이기도 하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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