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법대로 하면 된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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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3   |  발행일 2019-08-13 제30면   |  수정 2019-08-13
대법원 판결 거부는
대한민국 사법권 부정하고
속내는 불법 강점 인정 못해
국가란 무엇인가
이제는 답을 해야 한다
[화요진단] 법대로 하면 된다
이은경 문화부장

고승생씨의 고향은 경주다. 1943년 결혼을 했다. 결혼식을 올린 바로 그날 밤, 초야도 치르지 못한 신혼방으로 일본군들이 들이닥쳤다. 열여덟 신부 윤임순씨는 끌려가는 남편의 얼굴도 못봤다. 날이 밝자 시부모님이 남편의 사진 한 장을 주었다. 처음으로 찬찬히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로부터 1년.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윤씨는 사진을 가슴에 품고 무작정 사할린으로 갔다. 남편은 샥조르스크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하고 있었다. 채탄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못 올라오게 했기 때문에 하루 10~12시간, 때로는 15시간도 일해야 했다. 노무자들은 함바라 불리는 합숙소에서 통제된 생활을 강요당했고 반항을 하거나 도망을 치다가는 문어방으로 불리는 ‘타코베야’라는 형벌방에 갇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2명이 들어가면 1명은 죽어서 나온다는 곳이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배태권씨의 집으로 영장이 날아왔다. 징용 대상자는 그의 형 배용권씨였다. “당시 나는 결혼한 지 1년이 채 안되어 자식이 없었소. 형님한테는 자식이 있었고. 그래서 집안에서 의논해서 내가 형 이름으로 징용을 왔소.” 그날 이후 그는 ‘배용권’이 되었다. ‘2년이면 돌아온다’고 갓 결혼한 아내와 굳게 약속하고 떠났다. 그의 나이 스물넷이었다.

9개월쯤 일했는데 전쟁이 끝났다.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며 너도나도 항구가 있는 코르사코프로 갔다. 먹고 살기 위해 일터로 나갔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배를 놓칠까 서둘러 항구로 달려갔다. 모인 사람들끼리 배를 타는 순번을 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기다리다 ‘누군가는 굶어 죽고 누군가는 얼어죽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미쳐 죽어’ 무덤이 언덕을 메웠다. 사람들은 그곳을 ‘망향의 언덕’이라 불렀다.

날벼락처럼 잡혀가던 날, 광복이 되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는 오지 않던 날, 그리고 2019년 오늘, 그들의 물음은 한결같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러한 강제 동원에 대해 2018년 10월의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 협정과 관련이 없고, 청구권 협정에 따라 한국 정부가 받은 무상 3억달러와도 관련 없다고 말하고 있다.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은 물론 한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한국인 개인과 일본 기업이라는 사적 주체들 사이의 개별 분쟁에 대한 판단이다. 패소한 일본기업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배상을 하면 된다.

그런데도 미쓰비시 중공업과 일본제철은 대형 로펌을 동원해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상대로 10여년의 긴 시간 재판을 끌었을 뿐 아니라 판결이 선고되었는데도 따를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이런 기업들을 앞세워 아베 정부는 무리한 통상 공격을 마다않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 한국경제 성장에 대한 위기감 등 해석이 분분하지만 문제는 “불법강점에 따른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영토의 분리에 따른 문제 해결’, ‘구 조선 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라는 표현을 에둘러 써가며 합법성과 자발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은 “스스로 찾아와서 일을 했고 임금도 지급했으며 또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 됐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었을 때 고령의 원고 9명 중 8명은 이미 사망했다. 판결 선고를 지켜본 것은 94세의 원고 이춘식씨 한 명뿐이었다. 결혼식 양복을 입은 채 그대로 끌려갔던 고승생씨도, 형 대신 끌려갔던 배태권씨도 사망했다. 그들이 살아낸 세월은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들의 물음에 이제 답을 해야 한다.
이은경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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