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민한 성악가 컨디션

  • 이은경
  • |
  • 입력 2019-08-15 07:37  |  수정 2020-09-09 14:36  |  발행일 2019-08-15 제17면
[문화산책] 예민한 성악가 컨디션

큰 극장이 많고 오페라가 자주 공연되는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연주자(성악가)와 연출자들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아주 엄격하다. 연주를 잘한 연주자에게 보내는 환호소리, 그러지 못한 연주자나 연출자에게 퍼붓는 야유 소리와 비난은 잔인하게도 공연 후 커튼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마지막까지 열심히 한 연주자들에게 수고했다고 응원해 주는 환호와 박수로 공연이 마무리되는 것 같다. 연주자의 입장에선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05년 4월.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 ‘투란도트’가 공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참 전부터 표를 사놓고 그날을 기다렸다. 바리톤 같은 테너, 음반으로만 듣던 버터 발린 목소리의 소유자인 대가 자코미니의 목소리를 실제로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며칠을 설렜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하지만 첫부분을 내뱉은 그의 소리는 내가 음반에서 들어오던 그것이 아니었다. 급기야는 아리아 도중 프레이즈 사이의 숨 쉬는 부분마다 뒤로 돌아서서 입 안으로 스프레이를 연신 뿌려대었다. 약인 것 같았다. 그가 너무 안쓰러워 울고 있는 내 주위로 앉은 관중은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야유를 퍼부었다. 결과를 예견했다는 듯 준비해 온 무언가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에겐 비싼 돈 주고 산 표값을 하지 못한 주인공 자코미니에게 불만 가득했던, 본전 생각이 났던 오페라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나에겐 테너를 남편으로 둔 사람으로서, 또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테너 자코미니에게 측은지심이 넘쳐나는 저녁이었다.

물론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얘기는 한 연주자가 그날 공연을 망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성악은 다른 악기와는 달리 활로 켜거나 손으로 누르는 대로 절대적인 음을 낼 수 있는 예술이 아니다. 몸이 악기이다 보니 아침에 내는 ‘도’와 목이 풀리는 저녁에 내는 ‘도’가 다르고, 기분에 따라서도 소리가 달라진다. 사람에 따라 고음이나 저음은 그야말로 ‘뚫는다’는 표현을 하는데, 어떤 노래를 부르기 위해 끊임없는 연습으로 고난의 시간을 견디며 그 음을 만들어 내야 하는 직업이다. 이렇듯 쉽지 않은 과정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한 작품, 한 작품에 임한다. 입만 떼면 어렵지 않게 멋진 노래를 술술 불러낼 것 같지만, 연습에 연습을 되풀이하며 오류를 내지 않으려 해도 간밤에 설친 잠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예민한 성악가.

물론 공연 중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악가들에게 비난을 퍼붓고 싶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한 가수의 진정성이 느껴졌다면 넓은 아량을 베풀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백민아 (성악가)

기자 이미지

이은경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