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현수막정치

  • 마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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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5   |  발행일 2019-08-15 제27면   |  수정 2019-08-15

포항을 찾은 외지인들이 크게 놀라는 것이 있다. 바로 시가지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 때문이다. 현수막 제작업체들이 엄청난 호황을 누렸을 정도라고 비아냥거릴 만큼 많다. 대부분의 현수막은 포항지진과 관련된 내용이다. ‘포항지진특별법 발의’ ‘포항지진특별법 국회 산자위 상정’ ‘포항지진특별법 조속제정 촉구’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주류를 이룬다. 형산·우현네거리와 오광장 등 시내 곳곳이 정당·국회의원 등이 내건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 3월 포항지진 정부조사단이 포항지진을 촉발지진이라고 규정한 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현재 포항시가지 전역에 내걸린 현수막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현역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현수막을 한 곳에 2~3개씩 내걸어 ‘현수막 정치’를 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포항지진’을 이용한 정치인들의 ‘현수막 정치’가 도를 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특정사안(포항지진)에 대해 알리는 현수막을 게시하는 것은 선거법 등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당과 야당 측에서 내건 현수막이 아래위로 붙어있거나 마주보고 있어 너무 경쟁적이다. 이에 상당수 시민이 “내년 총선을 겨냥해 자신들을 알리려는 방편으로 포항지진을 이용하는 느낌이 든다”며 “지역 정치인들이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고 할 만큼 모양새가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 정치인들이 현수막 정치에 적극 나서는 것은 내년 4월 총선 전까지는 포항촉발지진 책임론과 피해 배상 문제 등이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총선 이슈를 선점하고 자신을 알리는 데 현수막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 즉각 중단하라’ ‘추경예산 1천743억원 확보’라는 현수막까지 내걸려 포항은 그야말로 현수막 천국이다.

이러한 현수막들은 지정게시대에 걸려 합법적인 것도 있지만 상당수가 불법이다. 그렇지만 포항시는 행정력을 동원해 철거하지 않고 있다. 특히 나무와 나무를 연결해 내건 현수막은 나무의 성장을 막고 있을 뿐 아니라 도심미관을 크게 해치고 있는 데도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않고 있다. 시가 불법인줄 알지만 포항지진과 관련된 내용들이어서 정치인과 시민 눈치를 보며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마냥 지정게시대를 벗어난 불법 현수막들을 내버려 둬서는 안될 것이다. 지방정부가 불법과 무질서를 장기간 방치할 수는 없다.

마창성 동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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