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낡은 천조각으로 꿈을 꿰매는 천사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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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6   |  발행일 2019-08-16 제39면   |  수정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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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첫 초등학생 ‘텍스타일 공모전’에서 대상(교육감상)을 수상한 김시윤의 ‘코끼리 가족의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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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교육감상) 최지후의 ‘지구촌의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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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박물관 협의회장상) 박성우의 ‘미래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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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문화원 연합회장상) 박보미의 ‘바닷속 친구들’

아이들의 손길로 자르고 붙인 헝겊으로 만든 작품들이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작품을 보는 이마다 저절로 마음의 문을 환하게 열어주는 저것은 무엇일까.

마음에 어떤 경계도 그늘도 스며들 틈을 주지 않는 아이들의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환한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다.

전국 첫 초등학생 ‘텍스타일 공모전’
자투리 천에 담아낸 아이들의 이야기
많은 사람에 옷 만들어 주고 싶은 꿈
긴 유년시절에 보낸 ‘놀이’와 ‘바느질’
무한 상상력·따뜻한 감성 미래로 연결
가족·친구와 천 잇고 마음 잇는 추억

아이들은 저렇듯 낡아서 못쓰게 된 천 조각들을 가지고도 천사의 모습을 만들어 우리를 천진스럽게 웃게 한다. 멋진 자신의 모습 같은 작품, 가족들의 다정한 모습, 말이며 공룡이야기, 학교의 일상, 그저 무작정 자투리 천을 흥에 따라 붙인 것 같은 작품들에 많은 이야기가 스며있다. 아이들이야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던 헝겊이라는 재료를 자르고 붙이느라 힘이 들었겠지만, 전국 최초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텍스타일 아트 공모전은 짧은 응모기간이었는 데도 1천여점 가까운 작품이 응모되었고, 그 가운데 선정된 작품들이 ‘박물관 수’에서 전시되었다.

응모작을 들고 낯선 산자락을 걸어와 박물관을 찾은 가족들은 다소 상기된 모습을 보인다. 접수를 하고도 쉽게 박물관 문을 나서지 못하는 가족들은 접수자에게 아이가 얼마나 재미있게 생각하고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건넨다. 행여나 접수일을 놓쳤을까 걱정했지만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모습과 상기된 얼굴에서 지난날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중·고등학생시절 해마다 우체국으로 달려가 한 묶음의 원고를 보내던 일.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신문에 커다랗게 난 신춘문예라는 것을 알고 혼자 열병을 앓았던 것이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써내려간 원고를 안고 첫새벽부터 우체국으로 향하던 발걸음에 설렘과 기대가 있었다. 그렇게 꿈을 꾸게 해주었던 것이 공모전이었다.

자신이 만든 작품을 조심스레 건네는 아이의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하면서 어느 결에 아이들의 꿈의 한 자락이 되어 주어야 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붕붕 돌아가는 에어컨은 켜두었지만 전시장 가득 펼쳐진 작품 가운데서 수상작을 선정하고 작품을 고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심사위원들은 종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작품 한 점 한 점이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었다. 혹여 정말 열심히 만들었는데 어른들의 눈으로 몰라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세계를 어른들의 눈으로 재단해서 선정한다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지 조심스러운 의문을 갖게 한다. 선정한 작품을 전시하고 당선작 시상식이 7월27일 있었다. 오전 10시 시상식에 9시부터 가족들이 도착해 작품 앞에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다 보니 어느덧 시상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시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찼다.

대상을 받은 아이는 들뜬 목소리로 소감을 말했다. “천을 자르고 붙이고 꿰매면서 재미있어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대상까지 받게 되어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단다. 원고지를 안고 콩당콩당 뛰던 가슴은 우체국에서 접수하는 이에게도 수줍은 미소를 보냈다. 대상을 받은 아이는 앞으로 아끼는 이들에게 많은 옷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6학년이어서 내년에 응모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어쩌면 대구가 낳은 디자이너 누구라고 언젠가 이 공모전을 기억할까.

초등학생들의 손에 천과 바늘을 쥐여주고 바느질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 박물관 수의 오랜 꿈이었다. 이 작은 바늘 한 끝에 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미래를 무한히 확장해 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이 쓴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에는 “크로마뇽인(호모 사피엔스)이 발명한 ‘바늘귀가 있는 바늘’은 인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이 발명품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운명을 갈랐다”로 시작된다. 어떻게 해서 바늘이 이토록 한 종의 생존과 멸망에 절대적인 원인이 되었을까.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 바늘은 아주 사소하게 생각되고 있는데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다른 모든 인류가 사라진 뒤에도 살아남은 것은 발전한 사냥무기의 사용과 강화된 인지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효율적인 의복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의복의 도움이란 바로 귀 있는 바늘의 발견으로 빙하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의복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복을 만들지 못하고 그냥 걸치고 있었던 네안데르탈인은 늘 동상과 저체온증에 시달려 멸종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은 “호모사피엔스에게는 긴 유년기의 ‘놀이’와 ‘바느질’이 있었다. 놀이와 바느질이야말로 인류의 최첨단 기술인 셈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아이들에게 놀 시간을 주지 않고 바느질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러다가 네안데르탈인의 길을 따르지 말란 법도 없다.” 이 말이 깊은 울림과 공감을 준다.

공모전이란 하나의 열정의 씨앗을 여는 동기가 된다. 귀 있는 바늘 하나와 자르고 붙인 천 조각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따뜻한 감성은 아이들의 미래를 현재와 이어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은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무엇보다도 바느질과 따뜻한 천의 물성을 통해서 가족과 친구들과 천을 잇고, 마음을 잇고 추억을 이어가는 ‘행복한 기억’ 만들기를 했을 것이다. 어린시절의 이런 기억이 생애주기별로 보면 노년으로 이어지고 결국 노년의 행복을 준비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또한 작은 천 조각 하나라도 성심으로 대했던 옛 어머니들의 조각보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공경의 철학도 이해하고, 사소해 보이는 한 올의 실의 연결과 결합은 얼마나 멋진 창조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바느질하는 순간의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는 아이의 말처럼 몰입은 정서적으로 맑은 헹굼의 시간이 되는 것을 스스로 경험했을 것이다.

이처럼 바느질의 과정을 통해 더 많은 것은 스스로 이해할지도 모른다. 한 오라기의 실과 같은 신념이라도 있다면 조각난 많은 것들을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 너머에 있는 멋진 세상이다. 하루에 하루를 이어가는 시간의 과정을 바느질은 한 땀 한 땀 명확하게 보여준다. 혹여 상처 난 마음이 있다면 새로운 천 조각으로 스스로 꿰매고 보듬을 줄 아는 멋진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때로는 친구의 가슴까지도 말이다. 박물관 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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