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페기 구겐하임:아트 애딕트 (리사 아모르디노 브릴랜드 감독·2015년·미국)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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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6   |  발행일 2019-08-16 제42면   |  수정 2020-09-08
현대 미술사의 가장 매혹적인 컬렉터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페기 구겐하임:아트 애딕트 (리사 아모르디노 브릴랜드 감독·2015년·미국)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페기 구겐하임:아트 애딕트 (리사 아모르디노 브릴랜드 감독·2015년·미국)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전혀 몰랐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페기 구겐하임: 아트 애딕트’는 평소 접하기 힘든 미술 컬렉터의 세계를 낱낱이 보여준다. 주인공은 전설적인 거물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이다. 부유한 광산업자의 딸이자, 대부호 구겐하임의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서점에서 일하면서 당대의 지식인들과 교류하게 된다. 예술에 눈을 뜬 그녀는 미국에서 파리로 건너오게 되고, 그 후 남편의 지인이던 마르셀 뒤샹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미술의 개념을 바꾸어 놓은 뒤샹(소변기를 작품으로 내놓아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녀의 수완은 빛을 발하게 된다. 화가들은 작품을 팔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녀는 수많은 미술품을 헐값에 사들이는가 하면, 사비를 들여 예술가들의 미국 망명을 도와주기도 한다. 또한 그림들을 짐 속에 숨겨 미국으로 옮겼다. 유대인이지만, 나치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담력과 기지는 놀라운 것이었다. 결국 유럽 중심이던 미술을 미국으로 옮겨왔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는 전기 작가와 페기의 인터뷰로 시작되며, 다양한 인물이 그녀에 대한 추억, 또는 평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인터뷰가 눈길을 끈다. 화가였던 부모님이 페기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연 적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또한 그녀가 교류했던 당대 명사들을 언급한다. 뒤샹을 비롯해 몬드리안, 모딜리아니, 자코메티, 살바도르 달리 등 전설적인 화가의 이름이 등장한다. 특히 그녀가 교제했던 남성들의 명단이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그녀가 교류했던 화가 중 주목을 끄는 것은 미국 현대 미술의 대표주자 잭슨 폴록이다. 몬드리안의 조언으로 페기는 이 무명의 화가를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생활비를 주고, 시골에 집을 마련하여 그림만 그릴 수 있도록 돕는다. 잭슨 폴록을 거물로 키운 것은 그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미술계에서는 이렇듯 거물로 대접받지만, 그녀의 인생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몇 번의 결혼 실패, 화가였던 딸의 자살 등이 겹쳐 불행하고 외로운 삶이었다. 그토록 수많은 명사와 관계(그녀의 섹스 집착은 유명하다)를 가진 것도 지독한 외로움 탓으로 보인다. 영화는 그녀의 열등감에도 주목한다. 강하게 보이지만 의외로 내성적이며, 외모에 대한 열등감도 심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아트 애딕트(Art addict)’ 즉 예술 중독이라 할 만큼 미술품 수집에 몰두하게 했던 것이다. 그 외로움의 근간에는 어린 시절, 사랑했던 아버지의 이른 죽음(저 유명한 타이태닉호의 침몰로), 가정교사에게서 교육받았기에 친구가 없었던 것, 친척들의 정신질환 및 자살 등 다양한 원인이 있는 것 같다. 1960년에 펴낸 회고록에서 자신의 삶, 특히 남성편력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밝힌 것이 그녀에 대한 논란을 더욱 분분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삶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유럽 중심이던 미술을 미국으로 옮기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기에 미술사가 존 리처드슨은 “페기 구겐하임은 미국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예술 운동의 완벽한 지휘자였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전설적인 컬렉션은 사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숙부인 솔로몬 구겐하임이 설립)에 기증되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생애를 보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저택은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개조되어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20세기 현대 미술사의 가장 매혹적인 컬렉터’라 불리는 페기 구겐하임. 영화를 통해 외롭고 불행했던 삶을 예술에 대한 사랑(수집)으로 대치했던 한 거물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평범함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았던 시간이었다. 전설적인 거물의 이면을 보며, 아무래도 재물이나 업적이 곧 행복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새삼 생각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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