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영화감독 - ② 박찬욱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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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6   |  발행일 2019-08-16 제43면   |  수정 2020-09-08
영화감독 데뷔후 차기작까지 쓴맛…하마터면 평론가로 남을 뻔한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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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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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박찬욱 감독은 영화감독보다 평론가로 불렸다. 데뷔작과 차기작을 모두 실패하고 지금은 폐간된 ‘스크린’ 같은 잡지에 기고하거나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며 얻은 이름이었다. 이 무렵 쓴 글들을 묶어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비디오드롬’ 같은 책을 내기도 했다. 평론가로 데뷔해 영화감독이 된 게 아니라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후 평론가가 된 희귀한 케이스. 하마터면 우리는 이 탁월한 영화광 감독을 잃을 뻔했다.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은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으로 가수 이승철, ‘난타’ 기획자로 유명한 배우 송승환, 지금은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나현희가 주연을 맡았다. 영화광 출신에 스스로 B급 영화 정신에 충실코자 했던 느와르물로,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젊은 감독 사이에서 “저예산이지만 나름 스타일 있게 찍은 영화”란 격려를 받았다고.

‘3인조’(1997)는 데뷔작의 실패 이후 절치부심 끝에 만든 작품이었다. 배우 이경영, 김민종, 정선경이 출연했다. 전작을 복기하며 대중이 좋아할 만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압박감이 반영된 이 영화는 어정쩡한 결과물로 나와 다시 한 번 실패를 맛보지만 일부 영화광에게 지지를 받았다. “거친 질감에 눈치 안 보고 무지막지하게 달려가는 영화”라는 최초 의도대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감독 된후 평론가 된 흔치않은 케이스
두작품 실패후 어렵게 얻은 연출 기회
‘공동경비구역 JSA’589만명 첫 흥행
자신의 취향 드러낸 ‘복수는 나의것’
‘올드보이’‘친절한 금자씨’ 복수 3부작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거장 반열
인간본질 고민‘박쥐’ 또한번 칸 석권

할리우드서 처음 만든 작품 ‘스토커’
깜짝놀랄 만한 여러 단편에도 참여
제작자 나선‘설국열차’韓 영화 쾌거




‘공동경비구역 JSA’(2000)는 두 편의 작품을 실패한 박찬욱이 어렵게 얻은 연출 기회였다. 박상연 작가의 장편소설 DMZ를 원작으로 명필름에서 제작한 영화다.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으며 개봉 당시 관객수 589만명을 모으며 첫 흥행의 기쁨을 맞았다.

‘복수는 나의 것’(2002)은 ‘웰메이드 상업 영화’였던 전작을 철저하게 배신하고 자신의 취향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었다. 배우 송강호, 신하균과 함께 배두나가 참여했다. 실제 영화 도입부에서 배우의 입을 빌려 혈액형 이야기를 하며 관객들에게 “A가 아니라 B야, B!”라며 자신은 A급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B급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선언한다. 평론가들의 호평과 일부 관객의 열광적 지지가 이어졌지만 흥행에는 다시 실패한다. 그러나 이것이 ‘복수 3부작’의 시작이었다.

‘올드보이’(2003)는 얼음처럼 차가웠던 ‘복수는 나의 것’과 달리 불처럼 뜨거웠다. 배우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과 함께 작업했는데, 데뷔작부터 이 작품까지 늘 박찬욱의 영화는 남2, 여1의 구도인 것도 흥미롭다.

개봉 당시 326만명을, 10년 만에 재개봉해 무려 30만명을 동원한다. 2004년 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친절한 금자씨’(2005)는 박찬욱 감독이 운영하는 모호필름의 첫 작품이었다. ‘…JSA’에서 함께했던 배우 이영애를 전면에 내세우고 지난 ‘복수 영화’들에 나왔던 주역들이 모두 나온다. ‘복수는 나의 것’이 복수의 파멸을, ‘올드보이’가 복수의 완성,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를 통한 구원이랄까. 이로써 ‘복수 3부작’이 마무리됐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는 3부작을 마친 박찬욱에게 소품격인 작품으로 전작들과 달리 12세 관람가를 받았다. 가수 비와 임수정이 함께했다. 흥행에도 실패하고 작품에 대한 평가도 갈리지만 임수정이 보여준 연기만은 높이 평가받았다. 박찬욱 스스로도 부담 없이 휴가 가는 기분으로 만들었다고.

‘박쥐’(2009)는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을 원작으로 뱀파이어가 된 신부의 치정극을 그렸다. 배우 송강호, 김옥빈이 나온다. ‘복수 3부작’에서 다뤄온 복수와 구원의 세계에서 박찬욱이 빠져나갔음을 보여주는 한편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한층 깊어졌음을 알려준다. 2009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스토커’(2013)는 박찬욱이 할리우드에서 처음 만든 작품이었다. 시나리오도 박찬욱이 아니라 ‘프리즌 브레이크’로 유명한 웬트워스 밀러가 썼다. 할리우드라는 거대하고 낯선 환경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지켜낸 것은 대단한 일이다. ‘올드보이’ 때부터 함께한 정정훈 촬영감독이 참여했다.

‘아가씨’(2016)는 7년 만에 국내로 돌아온 박찬욱의 복귀작이었다.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배우 김민희, 하정우, 조진웅과 함께 신예 김태리가 합류했다. 1860년대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원작의 설정을 1930년대 일제강점기 한국과 일본으로 옮겨와 매 장면 흥미로운 영화적 체험을 안긴다.

이밖에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사이에 이무영 감독과 함께 ‘박리다매’란 이름의 공동 각본가로도 활동해 만든 작품이나 설치미술가인 동생 박찬경과 협업한 일련의 작품들도 흥미롭다. 두 장편의 실패를 맛보고 만든 ‘심판’이나 국가인권위원회와 작업한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동아시아 3국의 프로젝트 ‘CUT’ 같은 단편들도 깜짝 놀랄 만하다. 연출자가 아닌 제작자로 참여한 ‘설국열차’(봉준호 연출), ‘미쓰 홍당무’(이경미 연출)도 한국영화의 쾌거라 하겠다. 지난해 존 르 카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연출한 BBC 6부작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도 ‘박찬욱 월드’를 공고히 했다.

어느 지면에서 읽은 것처럼 박찬욱은 ‘언제나 기대하게 하고, 어느 정도는 그 기대를 저버리고, 한편으론 기대를 넘어선 쾌감’을 한국영화 관객들에게 안겨주었다. 항상 제자리에 머물지 않으려는 작가로서의 고뇌가 깊었을 것이다. 감독이 고통스러울수록 관객은 즐거워지는 이 역설, 이로써 한국영화계는 박찬욱이라는 개성 강한 작가를 얻었다.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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